[the300][2014 근로자 리포트-⑤휴일]

# 중국 전자부품을 한국 대기업에 판매하는 중국 기업의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정모(32)씨. 입사한지 3년째지만 아직 회사내 '막내'다. 3년간 고시공부를 하다 늦깎이로 취업을 선택했다. 늦은 취업에다 워낙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성격이라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중국어와 영어에도 능통하다.
그러나 회사는 정씨의 쉴 권리를 '알아서 챙겨주지' 않았다. 정씨는 대한민국의 모든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에 따라 2년차부터 매년 15일 이상 연차를 쓸 수 있는지 여부도 제대로 고지받지 못했다. 회사는 그저 연말에 연차를 쓰라고만 했을 뿐 제대로 연차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했고, 연차를 쓰는데도 눈치를 봐야했다.
한달 전에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 하루만이라도 연차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이때도 연찰를 쓰지 못했다. "감기 몸살이 나서 끙끙대면서도 연차는 못내겠더라구요. 약국에서 약 사먹으면서 버텼죠."
이런 지경이니 아프지 않는 날 연차를 내는 것은 언감생심. "연차를 내지 말라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회사 전반에 연차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고 그걸 깨기가…" 정씨의 하소연이다. 결국 정씨는 여름에 다녀온 3박4일 휴가를 빼면 단 한번도 연차를 써본 적이 없다.
# 김모(31)씨는 2012년 한 사설 외국어능력 평가원에 근무하다 정직원 자리를 6개월 만에 스스로 그만뒀다. '취준생'(취업 준비생)의 꿈인 정규직. 김씨는 왜 정규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회사를 다닌지 1년이 안됐어도 연차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쓸 때마다 욕을 먹었어요. 하루는 상사가 '아직도 쓸 휴가가 있냐'고 그래서 근로기준법을 제시하면서 싸웠어요."
김씨는 "내가 워낙 강경히 말해서 상사가 연차를 못쓰게 하진 않았지만 엄청 탐탁지 않아 했다"면서 "다른 부서와 조정해서 회사에 딱히 피해가 가지 않는 날에 쉬었는데도 그냥 쉬는 걸 싫어하더라"고 말했다.
# 국내 통신 대기업에서 영업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30)씨는 연차를 쓰려면 두달 전부터 '눈치 작전'에 들어가야 한다. 연차를 쓰지 않는 분위기 탓이다. 평상시 일 강도가 낮은 것도 아니다. 저녁 9시30분 퇴근이 보통이고, 주말에도 하루는 출근한다. 아이폰 출시 때는 주말도 없이 매일 매일 밤 12시까지 일했다.
회사에서는 김씨에게 팔 수 없을 만큼 많은 판매 할당량을 준다. 그래서 시간 외 근무는 필수다. 관리하는 휴대폰 영업점에 매일 들러 매장 정리도 해주고 재고 정리도 해준다. 그러면 퇴근 시간은 또 밤 10시를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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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연차는 권리라고 하지만 나만 그런게 아니라 주변 동료들도 휴가를 제대로 쉬는 사람은 없다"며 "휴가를 쓰면 회사에서 일을 안하는 사람이라고 낙인 찍힐까봐 우려해서 쉬지를 못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연말만 되면 회사에서 연차를 쓰라고 독려하는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진다.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눈에 선하니 기분도 별로다.

'연차가 없는 삶'. 대한민국 근로자들 얘기다. 근로기준법에 보장돼 있는 근로자들의 '연차권리'는 생각보다 꽤 강력하다. 이 법 제60조에 따르면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는 15일의 유급휴가를 받는다. 1년이 지나면 매 2년마다 유급휴가 하루가 더해진다. 입사 2~3년차 근로자는 15일, 4년차는 16일의 연차가 있는 셈이다.
1년 근무 미만 근로자의 경우 한 달을 근무하면 1일의 휴가가 발생한다. 하지만 2년차 때 받는 15일 연차 중 1년차 때 쓴 연차는 제외한다. 즉, 1년차때 7일을 쉰 근무자는 2년차때 받는 15일 중 8일만 연차만 쓸 수 있는 셈이다. 대신 3년차 때는 15일의 연차를 온전히 받게 된다.
근로자가 15일의 연차를 다 쓰지 못하면 회사는 이를 보상해야 한다. 보상을 하지 않으려면 꽤 '귀찮은' 연차 쓰기 독려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같은 법 제61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매년 연차가 소멸되기 6개월 전 기준으로 10일 이내에 근로자별로 사용하지 않은 휴가 일수를 알려주고, 근로자가 휴가 사용 시기를 정해 통보하도록 서면으로도 촉구해야 한다. 이 촉구 의무를 다해야 근로자가 연차를 다 사용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사용자의 연차수당 지급 의무가 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를 지키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서울의 한 중견 미디어업체에 근무하는 김모씨(34)는 과도한 업무로 입사 후 지난 7년간 연차를 다 써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렇다고 남은 연차에 대한 수당을 받은 것도 아니다. 김씨는 "회사로부터 미사용 연차에 대해 공문으로 통지를 받은 적은 없었다. 부장님이 휴가를 다 쓰라고 메신저를 보낸 것밖엔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글로벌 온라인여행사 익스피디아가 세계 24개국 직장인 78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의 실제 연차 휴가 일수는 8.6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직장 상사가 탐탁지 않게 생각할까 봐'라는 응답이 19%였다. 이는 24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직장인의 꿈인 공휴일은 어떨까. 공휴일에 대한 규정은 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고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공휴일과 대체휴일이 규정돼 있다. 전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공휴일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서 공휴일과 대체휴일을 지키지 않더라도 이를 막기 어렵다.
그나마 대기업이나 공무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중소영세기업에서는 여건이 훨씬 열악하다.
대체휴일제가 지난해 11월 도입돼 올해 추석 연휴에 처음 시행됐을 때는 쉬지 못하고 일한 근로자들이 많아 휴식권 차별 논란까지 일었다. 실제로 올해 추석을 앞둔 지난 9월24일 중소기업중앙회가 902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추석휴무 계획에 따르면 대체휴일을 적용해 5일 이상 쉰다고 답한 기업은 14.1%에 불과했다.
임직원 40여명 규모의 경기도 A 의류제조 업체 대표는 "납품 계약 납기일을 맞추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도 일부 직원을 제외하곤 정상 근무를 했다"며 "귀향길 발걸음이 무거워진 직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표에겐 곤욕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국회에서 '반쪽짜리' 대체 휴일제 논란을 없애기 위해 공휴일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공휴일에 대체휴일을 포함하는 내용의 법률안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9월12일 현재 관공서 공휴일에 관해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있는 공휴일과 대체휴일을 법률로 지정하는 내용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전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공휴일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같은날 한정애 새정치연합 의원은 공휴일과 대체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에 유급휴일을 주도록 하며, 서비스업 등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 근로가 불가피한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에게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이 아닌 날에 유급휴일을 줄 수 있도록 명시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도 지난 9월15일 공휴일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단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엔 공휴일을 대신해 특정한 근로일에 근로자에게 유급휴일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인 노동시간은 2136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2번째로 길다. 이는 1950년대 미국인 보다도 길다. 반면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평균의 80%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김모씨는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노동시간이 많지만 노동생산성이 OECD 국가 평균의 80%에 불과한 것은 제대로 쉬고 재충전 할 수 있는 근로 문화가 만들어져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일은 많이 하는데 적절히 쉴 수 없다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