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 의원님, 그런 법안은 민망해요

[뷰300] 의원님, 그런 법안은 민망해요

이현수 기자
2015.05.28 09:59

[the300]

해봐서 안다. 실적을 위해 뭐라도 만들어내려는 마음을. 일을 하기위해 일을 만드는 상황을. 기자도 때로는 면피성 기사를 쓴다.

국회의원(혹은 그의 보좌관)도 실적을 위해 이따금 무리한다는 사실은 국회 출입 후에야 알았다. 기자에게 기사가 그런 것이라면 의원에게 실적은 곧 발의 법안이다.

우수 의원은 평소 법안으로 승부하지만, 벼락치기 의원들은 다소 흥미로운 방식으로 실적 몰아치기에 돌입한다. 총선이 1년 남았고, 국감이 시작되기 전이고, 한해의 반을 보낸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많이 나오는 유형 2가지를 짚어봤다.

◇유형1. 자구수정

자구수정 법안은 대표적인 '실적 법안'이다. 법안의 실질적 내용이 바뀌지 않는 범위에서 특정 표현만 수정하는 것. 법안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벼락치기엔 그만이다. 동료의원의 서명을 받기도 수월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모 의원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 20일 하루 무려 13개의 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행정사법 △소방기본법 △재해구호법 △인감증명법 △위험물안전관리법 △유선 및 도선 사업법 △자연재해대책법 △선박평형수 관리법 △자격기본법 △항만운송사업법 △수상레저안전법 △공증인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법 개정안이다.

개정내용은 판에 박은듯 다음과 같다. '민법이 개정됨에 따라 금치산자 및 한정치산자를 피성년후견인 및 피한정후견인으로 개정하려는 것임.' 무려 2013년 7월 시행된 민법 개정에 따른 자구 수정안이다. 13개로는 부족했는지 해당 의원은 이튿날 같은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추가했다.

실적 쌓기엔 선수(選數)가 따로 없다. 4선의 모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도로교통 안전'이란 문구를 '교통수단의 안전과 이용자의 통행안전'이라는 문구로 수정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 표현이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유형2.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한자어로

자구수정보다 더 쉽고 빠른 방식이다.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한자어로 고치는 것. 이런 방식이라면 100개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껴두기 차원에서인지 조금씩만 제출됐다. 기사를 본 당사자들의 '창고대방출'을 기대한다.

가장 최근엔 모 야당 의원의 법안이 두드러졌다. 그의 법 개정 취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법 문장은 용어 등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음.'

이런 내용으로 22일 하루 줄줄이 제출된 법안은 5개다. △자유무역지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법 △관세법 △의무소방대설치법 △우편법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다.

각각 장치(藏置)를 보관(保管)으로, 환부(還付) 를 반환(返還) 또는 환급(還給)으로, 가도(假道)를 임시도로(臨時道路)로 수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외에도 지난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 된 법안을 재발의한 의원들이 있다. 그것이 자구 수정 법안일 경우엔, 특정 이익단체를 대변하는 법안이나 정부의 청부 법안이 차라리 나아보일 정도다.

양으로 승부하는 전략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의안처리 부담을 가중시킨다. 한 관계자는 "실적 쌓기 법안에 몸살을 앓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의원 법안 발의건수는 지난 16대 1912건에서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으로 급격한 증가추세다. 19대 국회 5월28일 현재는 9810건의 의원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실적용 법안들을 기자들이 몰라서 안 쓰는 줄 안다면 오산이다. 얘기가 안 되니 그냥 두는 것일 뿐. 민망한 법안들을 자꾸 내면 다음번엔 이것을 주제로 대 기획을 해보겠다. 면피 기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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