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메르스 사태, 지도자의 덕목을 묻다

1951년 초 존 에프 케네디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듬해 치러질 주지사 선거와 상원의원 선거 중 어디에 출마할 지 선택해야 했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대통령을 꿈꾸는 이 야심찬 젊은 정치인은 보좌관에게 자신의 결심을 이렇게 알렸다. "주지사 사무실에 앉아 하수관 공사 계약이나 다루고 싶진 않아"라고.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당선된 케네디는 그의 판단대로 1961년 35대 대통령이 됐지만 현직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된 것은 29대 워런 하딩 이후 케네디가 겨우 두 번째였다. 케네디 이후에도 47년만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단 한 사람이었던 데 비해 주지사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건 9명이다.
숫자 상으로는 전직이 부통령(13명)인 경우가 더 많지만 전임 대통령의 사망이나 하야에 따른 승계를 제외하면(4명) 주지사에 미치지 못한다. '하수관 공사 지휘'가 대통령 당선에 꽤 유리한 경력이 된 셈이다.
미국 정치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역대 미 대선 후보의 지위에 따른 선거 영향을 분석한 결과 대선에서 주지사의 이점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무엇보다 주정부에서 쌓은 행정 경험이 연방정부의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직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줄 수 있다. 막대한 인력과 예산으로 선거캠프를 꾸리고 끊임없이 대중에 노출되는 대선 과정도 주지사에 더 익숙한 일이다.
상원의원보다 주지사가 대통령직에 적합한 경력이라고 보는 유권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1987년 대통령에 준비된 정치인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상원의원을 꼽은 응답이 주지사의 세 배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비등해졌다.
내년 대선을 치르는 미 정가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상원의원 출신인 힐러리 클린턴이 유력한 상태다. 이에 공화당은 주지자 출신을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는 모양이다. (물론 클린턴은 상원의원 외에도 국무장관을 역임했고 영부인이란 독특한 경력을 지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공화당에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이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가운데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 스캇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등 현직 주지자들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조지 W.부시의 동생 젭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했다.

미국의 상황이 겹쳐보였던 때문인지, 최근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질환) 사태를 수습하겠다며 일제히 '직접 진두지휘'에 나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마치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중앙정부, 특히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를 틈타 지도자는 바로 여기 있다고 외치는 듯했다.
독자들의 PICK!
그리고 지방정부의 수장이란 위치는 이를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지자체장들이 중앙정부를 '들이받은' 지점이다. 그동안 대규모 토목공사로 '대선 바벨탑'을 쌓는 것이 지자체장의 유일한 길이었다면 메르스 사태에서는 대통령 대신 대통령 같이 행동하는 모습만으로 여론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단숨에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회복한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가시적으로 성과를 얻은 지자체장도 있지만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도 지도자 이미지를 상당히 각인시켰다. 지도자로서의 책임감, 행동력, 돌파력, 조정 능력 등을 꼽을 수 있지만 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이들을 비판했듯 이른바 '최고통치자 행세'가 이들의 최대 강점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여의도에서 존재감을 고민해야 하는 신세다. 김무성·문재인 여야 당대표의 '메르스 현장 행보'는 박원순 시장의 '한밤 기습 브리핑'에 밀렸고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세계보건기구(WHO) 합동조사단의 기자회견장에도 들어가지 못해 비웃음을 당했다. 국회란 이렇게 무력한 존잰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하다.
네이트 실버는 "의회 자체가 본질적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기관이며 지도부가 아닌 이상 책임과 임무가 명확하지 않다"면서 의원 출신 대선주자가 불리한 이유를 들었다. 달리 말하면 의회에서는 대통령과 같은 집중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란 의미도 된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미국 상원의원보다 더 불리한 상황이다. 지도부마저도 지도자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당 지도부는 대통령에 굽히거나 쫓겨나거나 둘 중 하나고 야당 지도부는 계파 간 다툼에 치여 당직 인사 하나 마음껏 하지 못한다.
국회의 기능인 입법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거부하면 '하수관 공사 계약'에 관한 법안 하나도 처리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러운 이런 국회에서 대통령을 꿈꾸고, 대통령에 걸맞는 리더십을 갖춘 정치인이 나올 수 있을까. 국회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다음 대선, 그 다음 대선도 시선은 자꾸 여의도 국회 밖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