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 대선 경합주 '노스캐롤라이나' 지원 유세 현장

"헬로, 타르 힐(Tar Heels)!"
2일(현지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소도시 채플힐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UNC) 야외 경기장 후커 필즈(Hooker Fields). 흰색 셔츠 차림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단에 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타르 힐'은 미국 독립전쟁 때부터 불렸다고 알려진 노스캐롤라이나 사람의 애칭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지원 연설은 그렇게 친근한 인사와 환호 속에서 시작됐다.
◇ 대통령 방문에 1킬로미터 넘게 줄 선 대학생들
행사는 낮 12시30분에 시작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UNC 채플힐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연수 중인 기자도 현직 미국 대통령을 직접 보기 위해 행사 시작 2시간 전 집을 나섰다. 하지만 캠퍼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행사장에서 시작된 줄이 학교 건물들 사이로 1킬로미터 정도 이어져 있었다. 기자가 합류하자 금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이 더 길어졌다. UNC 학생과 교직원들이 많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지역 주민들, '블루 데빌' 이라는 인근 듀크대학 상징 문구가 새겨진 옷을 입은 학생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한국의 정치 행사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광버스'는 없었다. 기자는 1시간 반 정도 기다린 끝에 검문을 받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행사는 인파가 너무 몰려서인지 1시간30분 정도 늦춰진 오후 2시에 시작됐다. 민주당 소속의 하원의원, 상원의원, 주지사 후보의 연설에 이어 'Carolina In My Mind'라는 노래로 유명한 컨트리 가수 제임스 테일러의 공연까지 끝났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올 차례였지만, 연단은 조용했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기온이 섭씨 27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였다. 쓰러지는 사람까지 나와 곳곳에서 의료진을 찾는 '메딕(Medic)' 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불평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대통령을 기다렸다.
30분쯤 지났을까, UNC 학생이 나와 짧은 소개 말을 마치자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국의 미래가 노스캐롤라이나의 손에 달려 있다"며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민주당 후보들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렇다고 압력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No pressure)". 위트 있는 연설에 웃음도 자주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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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투표해라" 지원 나선 대통령
노스캐롤라이나는 플로리다와 함께 대표적인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다. 특정 정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얘기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2008년 대선 때는 오바마가, 2012년 대선 때는 공화당 후보 미트 롬니가 더 많이 득표했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각 후보 진영에서 이곳 유권자의 부동표를 흡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2일에 이어 오는 4일 노스캐롤라이나 샬럿과 파예트빌에서 클린턴 후보 지지 유세를 벌일 예정이고, 클린턴 후보는 3일 노스캐롤라이나의 주도 랄리를 찾는다. 특히 대학도시 채플힐은 학생 유권자가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 주소를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지도가 높은 클린턴 후보 쪽에서는 이들이 조기 투표를 통해 각자의 고향에서 한 표를 행사할 것을 독려한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도 아직 투표하지 않은 이들에게 조기 투표 방법을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볼 것을 권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자기가 속한 당의 후보에 대한 지지 투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높은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UNC 언어학과 학생 다나 샐먼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그 이유로 의료보험 개혁과 오사마 빈 라덴 처단,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들었다. 다른 학생은 대통령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10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고 했다. 행사 도중에도 '아이 러브 오바마!'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들렸다.
◇ "너희 대통령, 하야할 것 같은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젊은이들에게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다는 건 우리에게 낯설다. 알다시피 한국은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만 되면 '레임덕'을 피할 수 없고, 소속 당에서도 탈당 압력을 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이날 오전 8시부터 줄을 섰다는 UNC 채플힐 사회학과 학생 루시 볼드윈 러셀은 한국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졌고,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이라고 하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사실이냐?"라고 되물었다.

이미 한국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이도 만나볼 수 있었다. 데이브 제이콥슨 UNC 캐넌 플래글러(Kenan–Flagler)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아내, 자녀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기자가 한국의 저널리스트라고 하니 대뜸 "당신의 대통령이 하야(resign)할 것 같은가"라고 물어왔다. 대답하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미국 언론은 뉴스를 선정적으로(sexy and juicy) 보도한다"며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보도도 실제보다 더 선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민에게 박수를 받는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제이콥슨 교수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은 기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