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가 이 정도인데 다른 국회 상임위원회는 어떻겠어요?"
지난해 10월 환노위 국정감사장에서 만난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태블릿PC를 손에 쥔 채 회의장 안팎 곳곳에 쌓인 서류 더미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종이 없는 국감'을 치르겠다고 선언했지만 예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당시 국회 복도는 '멀티탭의 지옥'이었다. 몇 없는 벽면 콘센트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멀티탭의 끝에 연결된 것은 프린터였다. 피감기관들이 답변 자료를 현장에서 출력할 수 있게 프린트들을 챙겨서 온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의원과 보좌진들은 출력물을 잘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자문서를 확인하는 것이 보편화돼서다. 태블릿PC 등을 들고 다니며 자료를 확인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진 상황에서 피감기관들은 여전히 '출력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 종이 소비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전무하다. 국회와 피감기관 등이 각자의 예산으로 종이를 구입하다 보니 정확한 파악이 불가하다. 국회는 지난해 국감에서 16개 상임위 배부자료 22만7781페이지와 요구자료 답변서 2147만7830페이지를 전자문서로 대체해 절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자문서를 따로 출력·배포하는 관행이 여전한 만큼 실제로 이 만큼 절약됐다고 확신하긴 어렵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피감기관의 국감 종이 사용량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2379만장에 달하는 종이가 소모됐다. 당시 물가 기준으로 약 45억원 어치에 달한다. 국감을 한 번 치를 때마다 30년생 나무 2338그루가 사라지는 셈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7일 국회 탄소중립 선언식에서 2035년까지 탄소중립 국회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환영할 일이다. 우 의장은 여러 방안을 발표했지만, 아쉽게도 낭비되는 종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A4 용지 한 장을 덜 쓰면 생산·인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25g을 줄일 수 있다. 물론 발전 또는 제조업 분야에서 배출되는 탄소에 비하면 미미하다. 그러나 국회가 앞장서 탄소중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 피감기관인 정부와 에너지 공기업 등 산업계에 보내는 메시지는 작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