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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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대국은 우리 사회에 수많은 숙제와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에 근간한 지능정보사회에 걸맞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게 시급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메이커(Maker) 문화가 보다 확산 돼야 합니다. ”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메이커 문화로 ‘창직·창업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가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스스로 뭔가를 만들고 공유하는 메이커 운동은 김 이사장이 2014년 10월 부임한 뒤 가장 공을 들인 문화·교육사업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앞서 17~18일 양일 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16 메이커 페스티벌’를 개최했다. 재단에 따르면 이 기간 총 1만 5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총 1274건의 거래에서 1500만원대의 매출이 발생했다. 김 이사장은 “이번 행사는 개막식 의전도 없었고, 단체 참여를 요청하는 공문도 없이 오로지 20개의 민간 기관이 협력해 주도한 것”이라며 “메이커에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최근 ‘암흑물질과 공룡’의 저자 리사 랜들 하바드대 교수와의 공개 대담 자리에서 ‘지적긴장’이란 말을 자주 썼다. 그가 운영하는 페이스북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단어다. 평소 호기심이 많은 데다 도전적인 김 이사장의 스타일을 면면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다. 그의 성향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사업에서도 고스란히 뭍어있다. 그는 3차원(D) 프린터 등의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물건이나 제품을 만드는 ‘무한상상실’ 등 메이커 스페이스(창작공간)를 전국 170여 곳에 2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웠다. 새로운 과학문화 대중화 사업을 망설임 없이 펼치는 김 이사장은 어떤 과제를 누가, 언제까지 진행할 지도 꼼꼼히 챙긴다. 2014년 10월 부임한 후로 지금까지 그가 추진한 사업 대부분이 정상궤도에 올라 있다. 김 이사장은 뼛속까지 물리학자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1981년)한 뒤 198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코넬대 응
국내 1위 식자재유통기업인 CJ프레시웨이가 중국에 이어 인도차이나반도 공략에 본격 나선다. 베트남을 거점으로 삼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으로 진출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지 식자재 유통업체를 인수해 1~2년내에 직접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강신호 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55·사진)는 "안전하고 품질좋은 제품을 통해 국내 식자재 유통산업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해외사업을 확대하겠다"며 "2020년까지 전체 매출의 35%를 해외에서 올릴 수 있도록 사업 구조를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인도차이나반도 국가의 경우 해변가는 해산물, 내륙은 농작물 식재료 품질이 좋아 물류시스템만 갖춰지면 현지 유통은 물론 제3국 무역에도 유리하다"며 "이들 지역에 CJ의 유통로드가 완성되면 수입 식자재 매입이 더 수월해져 이익률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를 지난 10일 서울 중구 쌍림동 CJ프레시웨이 본사에서 만났다. 불경기에도 지난해 매출이 15% 이상 성장하며
강신호 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55·사진)는 직원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CEO(최고경영자)로 통한다. 매년 사업계획이나 목표를 세울 때 실현 불가능한 주문을 하는 법이 없다. 1년 동안 집중할 사업목표 3개만 선택해 밀어 붙인다. 연간 사업 과제를 10개 이상 만들고 달성하기 어려운 실적 목표를 세우느라 애를 먹던 보고서 작업도 강 대표 부임 이후 사라졌다. 대신 강 대표는 어떤 과제를 누가, 언제까지 진행할 지 꼼꼼히 챙긴다. 3개월 뒤에는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반드시 중간점검하고 문제점을 보완·개선하는 방식으로 업무에 속도를 낸다. 회사 실적이 좋아지면서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진작됐다. CJ프레시웨이 매출은 2013년 1조8769억원에서 지난해 2조724억원으로 10.4% 늘었다. 영업이익은 85억원에서 315억원으로 270% 성장했다. 100억원을 밑돌던 영업이익이 2년만에 300억원을 넘어서면서 지난해 CJ프레시웨이 직원들은 수년만에 연말 성과급을 받았다. 강 대표는 취임 초기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9개 금융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한 직후 숨돌릴 틈도 없이 전 금융권의 성과연봉제 확산을 주문하고 나섰다. 금융당국이 붙인 '금융개혁'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없더라도 성과연봉제는 국내 은행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게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대표해 성과연봉제 협상 테이블에서 금융노조를 설득하는 무거운 책임을 졌다. 은행권 CEO들은 성과연봉제 협상에 하 회장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보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금융 전문가'이자 '직업이 은행장'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은행장으로서 느끼는 은행권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 회장은 1981년 28살의 나이로 씨티은행에 입사해 씨티은행 아시아·라틴아메리카지역 본부 임원, 씨티은행 한국소비자금융 대표 등을 지냈다. 2001년에 한미은행 은행장으로 취임해 2004년 씨티그룹에 인수된 후에도 계속 은행장으로 14년간 재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수익성을 추구하는 상업은행들은 진작에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했어야 했습니다. 최근 금융공공기관이 상업은행보다 먼저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는데 사실 앞뒤가 뒤바뀐거죠."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9개 금융공공기관이 지난달까지 모두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한데 대해 "민간 은행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이미 늦었다"고 잘라 말했다. 또 "국내 은행의 수익성은 전세계에서 100위권"이라며 "한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은행의 경쟁력은 극히 낮은 수준으로 호봉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호봉제는 전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며 "영어에는 아예 호봉제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어 '호봉'이라고 말하고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고도 지적했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회장으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과 산별교섭을 벌이고 있는 하 회장을 지난 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1984년 행시 27기로 공직에 입문에 30여년 간 해양·항만 분야에 집중해 온 전문가다.박근혜정부 초기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실 해양수산비서관으로 일하다 해수부 차관을 거쳐 장관직을 맡았다. 해수부 내부출신이 장관이 된 것은 1996년 부처 출범 이후 이항규, 최낙정, 강무현 장관 이후 네번째다. MB정부 때 해수부가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분리됐다 박근혜정부때 부활한 이후로는 첫 내부출신 장관이다. 해양·항만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현안 대처능력이 우수하며 조직융화를 위한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와 경북대(행정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해양수산부 감사관과 홍보관리관, 해양정책국장, 부산지방해양항만청장 등을 요직을 거쳤고, 2011년엔 ‘2012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사무차장과 국제관장을 맡아 여수엑스포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했다. △충남 아산(59년생) △행시27
2012년 박근혜정부 탄생과 함께 부활한 해양수산부는 지난 3년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세월호를 비롯해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은 탓에 비난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학계·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장관직을 맡았지만 자질논란으로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그런 까닭에 추진하려던 정책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 장관 취임 후 해수부는 달라졌다. 30여년간 해수부에 몸 담았던 경험을 토대로 현실적인 대안을 하나둘씩 꺼내 들고 있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던 정치인 출신의 장관들과 달리 장기적 관점에서 해수부가 해야 할 일의 밑그림을 차근차근 그려 나가고 있다. 올해는 특히 김 장관에게 특별한 해다. 해수부 출범 20주년, 부활 3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를 ‘해양르네상스’ 원년으로 정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해양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고 해양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 그가 과장 시절부터 그리던 꿈 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 해양개발과장 시절 ‘4
김군호(에프앤가이드 대표) 회장은 코넥스협회 회원사들에게 '든든한 맏형'으로 불린다. 온화한 성격으로 신뢰가 두텁고, 회원사들이 고심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코넥스 기업들은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김 회장이 제시해주는 해법을 따르면 꼬인 실타래가 쉽게 풀린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사실 김 회장은 증권업계에서 애널리스트와 매니저를 역임한 잘 나가는 투자 전문가였다. 회사를 나간다는 소식에 주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이내 에프앤가이드 창업소식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2000년 7월 설립된 에프앤가이드는 산재해있는 국내외 다양한 금융데이터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주는 회사다. 개인 뿐 아니라 기관투자자들도 쉽고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투자정보 도서관'인 셈이다. 2003년에는 기업실적 추정치와 투자의견에 대한 컨센서스를 국내 최초로 발표해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업의
올해로 4년차를 맞은 코넥스는 현재 코스피와 코스닥에 이은 '제3의 주식시장'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장기업은 120개에 달하고 출범 당시 5000억원에 불과했던 코넥스 시가총액은 지난달 말 기준 4조7000억원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일평균 거래금액은 3억9000만원에서 27억7000만원, 일평균 거래량은 6만1000주에서 18만8000주로 늘어났다. 코넥스 출범 이후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한 기업도 총 17곳이 넘었다. 코넥스가 중소기업이 코스닥으로 이동하기 위한 가교역할도 톡톡히 한 셈이다. 코넥스의 달라진 위상은 투자자들에게서 반영된다. 이달 3~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코넥스기업 공동 IR(기업설명회) 행사장에는 벤처캐피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 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도 다수 참여했다. 하우동천과 메디쎄이 등 55곳 상장사 부스 앞에는 십여명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풍경도 펼쳐졌다. 이 기간 한국을 방문했던 말레이시아 거래소 관계자들도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근·현대 미술과 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우수한 미술작품들을 소장, 전시하는 국내 유일의 국립 미술관이다. 지난해 12월까지 1년여간 공석이었는데, 개방형 공모 적용으로 선출방식이 바뀐 후 선임된 인물이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관장이다. 19대 마리 관장은 37년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이다. 그는 2008~2015년 3월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하는 동안 스페인 경제 상황에서도 관람객 수와 입장 수익 증가시켜 미술관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부터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CIMAM) 회장을 지냈고, 제 51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스페인관 큐레이터 등 다양한 국제전 기획 경험을 지녔다. 마리 관장은 미술뿐 아니라 시, 음악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조예가 깊다. 대학 때 철학 및 교육학을 전공하면서도 로큰롤 음악에 빠진 후 현대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그의 삶이 그대로 보여준다. "미술에 열중했는데 철학 전공으로
외국인으로 처음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게 된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관장의 대학 전공은 ‘철학’이다. 철학이라는 단어 앞에 멈춘 건 전적으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철학전공자가 미술관장을? 하지만 그는 전문가 맞다. “학창 시절 미술에 심취했다는 얘기”보다 객관적인 것은 그의 이력이다.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관장을 지내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2014년부터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CIMAM) 회장을 역임했고, 베니스 비엔날레 스페인관 큐레이터(2005년), 네덜란드 비톄 데 비트(현대미술센터) 예술감독(1996~2001) 등을 맡는 등 다양한 경험을 지녔다. 첫 직장 ‘화랑’ 얘기를 물으니, 단 3개월 근무했다고 짧게 말한다. 혹시 미술을 직접 할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느냐 물었다. 이번엔 아예 두 손으로 엑스자 표시를 지으며 단호하게 “노우”(No)를 외친다. 미술에 대한 인연은 어떻게 맺어진 걸까. “미술에 열중했는데 철학 전공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