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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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 켄터키주의 한 평화로운 마을.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매장의 여성 매니저에게 "절도범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남성은 매장 직원 중 '금발'이 있는지 물었다. 마침 매장엔 금발의 18세 소녀 '베키'가 일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남성의 명령에 따라 베키를 작은 창고로 데려갔다. 남성은 베키의 옷을 수색하라고 지시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경찰의 명령이기에 두 사람은 따랐다. 이후 남성은 서서히 요구 수준을 높여갔다. "베키의 옷을 하나씩 벗기며 몸을 수색하라". 산드라가 머뭇거리자 남성은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베키를 체포해 유치장에 가둔 채로 조사하겠다"고 위협했다. 끝내 베키는 알몸이 됐지만 절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 남성은 주변의 남자를 데려오라고 요구했다. 위협에 굴복한 매니저는 결국 자신의 약혼자를 불렀다. 매니저가 나가고, 약혼자와 베키 둘만 남겨진 뒤부터 끔찍한 '성적 학대'가 시작됐다.
"쾅! 쿠쿠쿵!" 1995년 4월19일 오전 9시5분, 미국 중부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의 도심 한복판. 마약단속국 등 연방기관들이 입주해 있던 9층짜리 건물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이 폭발로 갓 출근한 공무원과 탁아소의 어린이 등 168명이 목숨을 잃고 600여명이 다쳤다. 건물은 완전히 파괴됐고 폭발 지점에는 폭 10m, 깊이 2.5m의 큰 구덩이가 파였다. 사건 발생 90분 뒤 100km 떨어진 지점에서 26세 백인 남성 티모시 맥베이가 경찰의 과속 단속에 걸려 검문을 받았다. 과속 혐의로 구금된 맥베이는 갇혀 있는 동안 경찰의 수사로 결국 테러 혐의가 확인됐다. '걸프전'에 참전해 무공훈장까지 받았던 맥베이는 전역 후 '극우 민병대'에 가담하기 위해 캔사스, 애리조나주 등을 전전했다. 테러 1년 전까지는 애리조나주에서 20대 초반의 여자친구와 갓난 딸을 데리고 트레일러에서 생활했다. 테러 혐의로 기소된 뒤 맥베이는 "연방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한 권력
퀴즈 하나. 아인슈타인, 에디슨, 프로이드, 마르크스, 로스차일드, 록펠러, 소로스, 스필버그···.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유태인'이라는 점이다. 역사상 최고의 '천재' '억만장자' '영화감독'으로 불리는 이들이 모두 유태인 가운데 배출됐다. 뿐만 아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22%, 명문 아이비리그 학생의 23%가 유태인이다. 전세계 억만장자 가운데 20% 이상이 유태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단순히 유태인의 수가 많아서일까? 전세계 유태인 인구는 약 1700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에 그친다. 전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0.24%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불가사의'의 비밀이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유태인 성공의 비결을 물으면 많은 이들이 △탈무드의 '지혜' △오랜 유랑생활로 얻은 '근성' △고도의 '상술' 등을 꼽는다. 그러나 진짜 비밀은 '아빠'에 있다. 아빠의 '주말'과 '저녁'이 유태인들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수천년 전부터 유태인 아빠들은 어떤 일이 있
#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당나라 태종. 그에게는 아끼는 준마 한필이 있었다. 얼마나 아꼈던지 항상 궁궐 안에 두고 길렀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이 죽었다. 평소 아무런 병도 없었던 말이었다. 태종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그 말을 기르던 사육사를 처형하려고 했다. 그때 황후가 나서서 태종에게 간언했다. "옛날 제나라 경공도 말이 죽자 책임을 물어 사육사를 처형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사육사가 자신의 죄를 스스로 열거하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을 기르다 죽였으니 이것이 저의 첫번째 죄입니다. 말이 죽었다는 이유로 군주가 저를 처형한다면 백성들이 이를 듣고 군주에게 원한을 품을 것이니 이것이 두번째 죄입니다. 또 말이 죽었다고 사육사를 처형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제후들이 우리나라를 하찮게 볼 것이니 이것이 저의 세번째 죄입니다'". '통치술의 바이블'로 통하는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내용이다. '해경'이 해체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론'
뉴욕경찰청(NYPD) 청장에 윌리엄 브래튼이 부임한 것은 1994년. 당시 뉴욕시는 세계 최악의 '범죄도시'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1993년 한해 동안 뉴욕에서 발생한 살인사건만 1946건에 달했다. 매년 우리나라 인구와 비슷한 4000만∼50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세계 최고의 관광 도시였지만 시민 뿐 아니라 관광객들까지 강력범죄의 위험에 언제든 노출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브래튼이 부임한지 3년 뒤인 1997년 뉴욕시의 살인사건 건수는 770건으로 4년 만에 무려 60%나 줄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브래튼이 부임했을 당시만 해도 뉴욕시는 '경찰력이 먹혀들지 않는 곳'이었다. '배트맨'의 배경이 된 '고담시티'가 바로 뉴욕시의 모습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경찰 간부들은 현장 상황을 모른 채 주먹구구식으로 인력과 장비를 배분했다. 갱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에 경찰 2명만 투입시키고, 안전한 지역은 10명이 지키는 식이었다. 또 경찰들은 낮은 처우에 사기가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히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것이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말이다. 버핏이 약 50년 동안 꾸준히 시장 평균을 웃도는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좀처럼 '자기 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핏은 자신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들에게 매년 보내는 서한을 통해 종종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올초 "천연가스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투자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오판을 한 것 같다"고 인정한 것이 그 예다. 버핏이 주주들의 신뢰와 시장의 존경을 받는 이유다. 반면 대부분들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아 헤맬 뿐 자신의 신념을 반박하는 정보는 무시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심리학에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소
# 1997년 8월6일 새벽 1시42분, 괌 아가나 국제공항에 곧 착륙할 예정이던 김포공항 발 대한항공 801편. 부기장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안 보이잖아?" 비가 오고 있었고 괌의 활주로는 보이지 않았다. 고도는 고작 500피트(152m). 기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어!" 기장이 놀라며 입을 뗀 것은 3초가 지나서였다. 1시42분 19초. 부기장이 다시 말했다. "착륙을 포기합시다". 그러나 기장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1시42분 22초. 부기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안 보이죠? 착륙 포기!". 1시42분 23초. 그제야 기장이 대답했다. "고 어라운드"(Go around: 착륙포기).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1시42분 26초. 대한항공 801편은 언덕을 들이받고 추락했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탑승자 254명 가운데 228명이 숨졌다. 대한항공의 보잉 747기 괌 추락 사고 당시 조종석에서 이뤄진 일이다. 당시 기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다. 기장이
1852년 2월27일 630여명을 태운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Birkenhead)호는 남아프리카를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 잠에 빠져 있던 오전 2시, '쾅'하는 굉음과 함께 암초에 부딪힌 배는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선체 앞부분은 빠르게 바닷속으로 빠져들었고 탑승자들은 선체 뒷쪽으로 우선 피신했다. 위치는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에서 약 65km 가량 떨어진 해상. 당시 배에는 함장인 시드니 세튼(Sydney Seton) 대령 휘하의 젊은 장교와 신병 등 약 500명과 그들의 가족인 아이와 부녀자 등 약 130명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구명정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180명 뿐이었다. 세튼 함장은 즉시 병사들을 갑판 위로 집결시켜 사열했다. 그리고 배 양쪽 구명정을 풀어 부녀자들을 하선시켰다. 구명정들이 배를 완전히 떠날 때까지 장교와 병사들은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구명정이 충분히 멀어지자 세튼 함장은 명령을 내렸다. "물에 뜰 만한 모든 물건을 바다에 집어던져라"
# 산요전기의 창업자인 이우에 도시오가 산요전기의 모체인 산요덴키제작소를 세운 것은 1947년이었다. 당시 갓전등과 같은 기본적인 전기 제품을 만들던 산요는 창업 1년째 자금 회전이 원활하지 않아 도산 위기까지 맞았다. 어렵사리 자금을 조달해 도산 위기를 넘긴 이우에는 야심차게 갓전등 신제품을 준비해 신문에 전면 광고까지 냈다. 그런데 신제품 출시 직전 제품을 검사하다가 전등 하나의 지지대가 부러진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우에가 제품을 모조리 검사해본 결과, 출시를 앞둔 신제품 가운데 절반 이상의 지지대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생산된 제품은 무려 1만개로 약 2개월치 생산분이었다. 가까스로 도산 위기를 갓 넘긴 터에 신제품에서 치명적인 하자가 발견되자 이우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신제품을 출시한다고 대대적인 광고까지 한 상태인데, 출시를 미루면 체면이 말이 아닐 터였다. 또 자금 회전이 여전히 불안한데 2개월치 생산분을 다시 만들면 현금 사정
# 1973년 옛 소련은 세계 최대 제트여객기 공장을 건설하겠다며 미국, 영국, 동독 등에 3억달러(32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제안했다. 냉전시대였지만 군사용이 아닌 여객용이라는 점에서 미국, 영국도 자국 기업의 사업 참여를 허용했다. 미국에서는 보잉, 맥도널드 더글라스, 록히드가 입찰에 뛰어들었다. 소련은 이 가운데 보잉을 우선 협상자로 선정하고 먼저 보잉의 여객기 공장에 대한 현장 실사를 요구했다. 보잉이 수락하자 소련은 20명의 항공 전문가를 보잉의 시애틀 공장으로 보내 1만장이 넘는 사진을 찍는 등 현장 실사를 벌였다. 그러나 실사단이 돌아간 뒤 몇년이 지나도록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급기야 소련이 보잉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대형 제트수송기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보잉은 소련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을 그제야 깨달았지만 한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실사 당시에도 보잉은 소련 실사단에게 합금 소재에 대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소련은 대형 제
"탐내서는 안 되는 땅이 있다"(地有所不爭). 손자병법 '구변'(九變)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손자는 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절대 탐내서는 안 되는 땅들이 있다고 했다. 첫째 '이익이 크지 않은 땅', 둘째 '지키기 어려운 땅', 셋째 '도움이 되지 않는 땅', 넷째 '적이 점령하고 있는 땅'이다. 이는 현대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손자가 말한 '탐내서는 안 되는 땅' 4가지를 경영에 대입해 보면 첫째 '이익이 크지 않은 땅'은 인수 또는 시장 진출을 통해 추가로 얻을 수 있는 현금흐름이 작은 분야다. 둘째 '지키기 어려운 땅'은 인수 또는 진출 이후 유상증자 등으로 추가 투입해야 할 비용이 큰 경우를 말한다. 셋째 '도움이 되지 않는 땅'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크지 않은 경우 등 전략적 가치가 작을 때에 해당한다. 넷째 '적이 점령하고 있는 땅'은 기존에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기업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이 4가지 가운데 한가지에만
# 1988년 4월27일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을 이륙한 아폴로항공의 보잉737 여객기가 큰 폭발음에 휩싸였다. 이륙 직후 발생한 폭발로 동체 앞부분에 직경 6미터 정도의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이 구멍으로 스튜어디스 한명이 빨려나가 숨졌다. 사고 직후 조종사는 침착하게 기수를 돌려 가까운 공항에 착륙했다. 놀랍게도 공중 폭발사고에도 불구하고 사망자는 스튜어디스 1명 뿐으로 나머지 승객 89명과 승무원들은 모두 무사했다. 경찰과 소방당국, 항공사, 보험사, 그리고 제조사인 보잉사 등이 현장에 출동해 사고 원인 파악에 나섰다. 조사 결과, 사고 항공기는 기령이 20년에 달하고 이미 9만차례나 이착륙한 기체로, 규정상 이미 운행을 중단했어야 했다. 원인이 어쨌든 항공기에서 공중 폭발사고가 나고 승무원이 사망한 이상 제조사인 보잉사 역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보잉사는 이례적으로 언론에 사고 발생 사실과 사고 원인 등을 빠르고 적극적으로 알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