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손실혐오' '책임감 분산' '문턱에 발 들여놓기' 효과의 '함정'

2004년 미국 켄터키주의 한 평화로운 마을.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매장의 여성 매니저에게 "절도범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남성은 매장 직원 중 '금발'이 있는지 물었다. 마침 매장엔 금발의 18세 소녀 '베키'가 일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남성의 명령에 따라 베키를 작은 창고로 데려갔다. 남성은 베키의 옷을 수색하라고 지시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경찰의 명령이기에 두 사람은 따랐다.
이후 남성은 서서히 요구 수준을 높여갔다. "베키의 옷을 하나씩 벗기며 몸을 수색하라". 산드라가 머뭇거리자 남성은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베키를 체포해 유치장에 가둔 채로 조사하겠다"고 위협했다. 끝내 베키는 알몸이 됐지만 절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 남성은 주변의 남자를 데려오라고 요구했다. 위협에 굴복한 매니저는 결국 자신의 약혼자를 불렀다. 매니저가 나가고, 약혼자와 베키 둘만 남겨진 뒤부터 끔찍한 '성적 학대'가 시작됐다. 남성은 알몸의 베키에게 팔 벌려 뛰기를 시키라고 했다. 또 베키의 몸을 직접 수색하고 심지어 둔부를 때리라는 요구까지 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 지시를 모두 따랐다.
약혼자가 주저할 때마다 남성은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약 4시간에 걸친 이 '지옥' 같은 시간은 결국 성폭행이라는 충격적인 결말로 이어졌다.
2012년 개봉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보이스 성폭력' 사건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에서만 무려 70개 음식점에 이와 비슷한 전화가 걸려왔고, 대부분의 매니저와 피해자들이 '가짜' 경찰의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심리학적으로 크게 3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손실혐오'(Loss Aversion) 경향이다. 사람은 확정적인 피해를 비이성적일 정도로 회피하려고 한다. 가해자는 이를 이용해 "지시를 거부하면 유치장에 가두겠다"고 위협했다.
독자들의 PICK!
둘째, '책임감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효과다. 가해자는 수시로 "책임은 내가 진다"며 상대방을 안심시켰다.
끝으로 '문턱에 발 들여놓기'(foot-in-the-door) 효과다. 가해자는 상대방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약한 요구부터 시작해 협조를 끌어낸 뒤 서서히 요구 수위를 높여갔다.
최근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린 '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의 미스터리도 이 3가지로 설명된다.
살인 용의자 팽모씨 입장에서는 서울시의원 김형식씨의 '살인 청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김씨에게 빌렸던 7000만원을 갚아야 한다는 게 큰 압박이었다. 또 김씨는 팽씨에게 범행과 도주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도구를 챙겨주고 가족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김씨는 오랜시간에 걸쳐 서서히 팽씨를 꾀어냈다. 팽씨가 피해자를 비난하는 김씨의 말을 듣고 "죽어도 싼 X이네"라고 맞장구쳤을 때 그는 이미 지옥에 '발'을 들인 셈이다.
아무리 넘기 쉬운 낮은 '문턱'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문턱'을 넘는 순간 '비극'은 잉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