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 현장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물의 앞면 보다는 뒷면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기에 기자수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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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첫 양자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내놓은 정부가 2028년까지 '완전 국산' 양자컴퓨터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100% 국내산 부품으로 채운 양자컴퓨터다. 그런데 이 계획의 최대 수혜자인 듯한 업계에서 외려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국산 100%요? 왜요?"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의 기본원리인 '양자얽힘'과 '양자중첩'을 활용해 계산속도를 크게 높인 컴퓨터다. 우리나라에도 양자컴퓨터 기술을 내세운 스타트업이 여럿 있지만 아직 미국 IBM이나 아이온큐처럼 '풀스택' 양자컴퓨터를 수출하는 곳은 없다. 국내 연구실에서 가동 중인 양자컴퓨터는 대부분 미국, 스위스, 핀란드 등 해외에서 비싼 값을 주고 부품을 들여온 형태다. 그러나 정부가 '2년'이라는 짧은 목표를 제시한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원천기술이 국내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냉동기·측정장치 등 핵심 부품을 자체설계해 수출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연구기관 주도로 개발 중인 초전도 양자컴퓨터에는 국내 대학이 설계한 QPU(양자처리장치)가 들어간다.
14번. 국내 대형 게임사인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아이온2' 출시 이후 현재까지 진행한 개발진 라이브 방송 횟수다. 과거 불통의 대명사였던 게임 업계가 최근 사소한 잘못에도 이용자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등 소통 행보를 강화해 주목된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돈 벌 궁리만 한다며 욕을 먹어 온 엔씨소프트의 라이브 방송 14번은 큰 변화다. 패키지 상품 오류와 어뷰징 플레이 대응 방안 등을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사과하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 내부에서는 "과거에는 잘못의 정도가 10이 되면 사과했는데 지금은 1~2만 되도 사과하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크리스마스에는 특집 방송으로 시청자 참여형 이벤트도 진행했다. 업계에서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메이플 키우기' 확률 오류에 대한 넥슨의 대응이다. 기술적 오류가 아닌 휴먼 에러였음에도 넥슨은 이례적으로 전액 환불 결정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강대헌·김정욱 공동대표 명의로 사과문을 게시하고 담당자를 문책했다. 넥슨 내부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는 반응이다.
이창호의 묵직한 중앙 장악, 이세돌의 날카로운 전투, 조훈현의 두터운 세력싸움. 한 세대를 풍미한 바둑기사들은 저마다 뚜렷한 색깔 '기풍'이 있었다. 요즘 바둑판에서는 '기풍'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프로기사들의 대국은 묘하게 비슷하다. 포석 패턴도, 행마의 리듬도, 실수하는 지점까지 닮아간다. 알파고 이후의 풍경이다. AI가 제시한 '최선'을 따르다 보니 개성이 희석된 것이다. 대국장에는 실시간 승률그래프가 뜬다. 관전자도 해설자도 바둑기사도 그 숫자를 본다. AI가 가리킨 길에서 벗어나면 창의가 아닌 실수가 된다. 바둑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을 쓸 때도, 전략을 짤 때도, 창작할 때도 AI에 묻는다. AI는 항상 확신에 찬 답을 내놓는다. 리스크가 적은, '평균적 최선'이다. 경쟁자도 AI를 쓴다. 같은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은 같은 패턴을 추천한다. 차별화는 사라지고 누가 먼저 AI 답안을 실행에 옮기느냐의 속도 경쟁만 남는다. 바둑에서 기풍이 사라진 것처럼 비즈니스에서는 전략의 다양성이, 콘텐츠에서는 독창성이 희미해진다.
"'명픽'(이재명 대통령의 선택)은 ○○○이잖아. " 요즘 여의도에서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관련해 얘기를 나눌 때 자주 들리는 말이다. 이 대통령이 마음에 둔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경선에서 유리하다는 정치적 해석이 이어진다. 이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은 없다. 당장 선거 개입 논란이 불 보듯 뻔한데 그럴 리 만무하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그런 것 같다"는 추측만 넘쳐난다. 대통령의 의중과 관련한 낭설이 넘치고 그럴 듯 해 보이기도 하지만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관전자들의 평가는 자유다. 말 많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선거철 대통령의 '의중'을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선거에 나선 '선수'들이 이른바 '명심'(이 대통령의 의중)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당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인지는 몰라도 너도나도 대통령과의 친분을 앞세우고 '명심'이 내게 있다고 홍보한다. 선거를 120일 앞둔 지난 3일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공부 열심히 해서 로스쿨 가서 김앤장 1억원 초봉 받는 것보다 아버지 잘 만나서 10억원 받아 투자하는 게 더 돈 잘 버는 시대다. " 대학 교단에 서는 A교수는 최근 제자들에게 이같은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근로소득으로 부를 축적하기보다 자산 가격이 올라 부를 축적하기 쉬운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꿈의 코스피 5000피 달성에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저평가돼 있던 한국기업의 가치가 정상화되는 건 환영할 일이다. 기업의 주가가 올라 자금 조달이 쉬워지면 신기술 투자 등 생산적 금융으로 돈이 흐르고, 고용 확대로 가계 소비가 증진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다만 지난해 코스피지수 상승률이 75%에 달하는 반면 실물경제 성장률은 1%에 머문 '괴리'는 선순환에 의문을 품게 한다. K자형 양극화 심화도 그 중 하나다. 10년 전(2016년 1월) 은행 정기예금에 100만원을 넣었을 경우 현재 115만~12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는 반면, SK하이닉스 주식을 샀을 경우 2000만원이 넘는 액수를 손에 넣는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통신) 전시회인 'CES 2026' 전시장에 등장한 한 로봇이 인형을 집었다가 연거푸 떨어뜨렸다. 집어 든 인형도 정확한 위치에 옮기지 못했다. 옆에 있던 관계자는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LG전자가 공개한 가정용 홈 로봇 '클로이드'는 단순해 보이는 빨래 개기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썼다. 다양한 로봇의 '실수'는 결함보다는 진화의 신호에 가깝다. 정해진 시나리오를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달라지는 환경에서 센서와 AI(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다음 행동을 선택해서다. 반복되는 실패는 오류가 아니라 학습의 과정이다. 과거 산업용 로봇은 정확성이 핵심이었다. 입력된 값(명령)을 오차 없이 출력(행동)하는 기계였다. 하지만 지금의 로봇은 다르다. 시각과 촉각으로 환경을 인식하고, AI가 맥락을 해석해 행동을 결정한다. 정답을 외우는 단계에서 벗어나 판단하고 선택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수하는 로봇'이야말로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 " 지난달 열린 한국화학산업협회 신년회엔 비장한 공기가 감돌았다. 한자리에 모인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 수장들은 수차례 '위기'를 언급하며 올해 역시 녹록지 않을 것이란데 뜻을 같이했다. 현장에선 "수십 년 업계에 몸담았지만 이런 장기 불황은 처음"이란 토로까지 나왔다.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는 유독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정부 주도의 구조재편이 본격화되며 각 기업이 설비 감축과 인력 구조조정까지 사업에 '메스'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재편안 초안이라도 제출하기 위해 물밑에선 몇개월간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1호 사업재편안인 충남 대산 산단 이후 좀처럼 '2호'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호안엔 롯데케미칼 대산 공장을 물적분할해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고, 중복 설비를 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로 전남 여수와 울산 산단 모두 정부에 초안을 제출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모두 뚜렷한 진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부의 대산 산단 최종 금융지원 방안마저 늦춰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보이는 서학개미의 해외 레버리지 투자 수요를 국내로 돌리기 위한 조치다. 정부가 환율 상승의 한 축으로 지목한 해외투자 수요를 줄이고 국내 증시 상승세도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주목 해야 할 것은 서학개미가 테슬라·팔란티어라는 '종목'에 투자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개별 종목 레버리지라는 '수단'에 끌리는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말 기준 국내 투자자의 해외 레버리지 상품 보유액은 19조원을 넘어섰다. 또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해외 레버리지 상품 순매수도 8500억원을 넘었다. 해당 자금 대부분이 테슬라와 팔란티어,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 레버리지 상품에 몰려있다. 홍콩에 상장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AUM(순자산총액)은 약 2조원이다. 이 중 국내 투자자 자금은 약 1400억원으로 약 7%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곧 망할 것 같다. " 미국 대학 교단에 서는 한 외국인 교원이 농반진반 내뱉은 말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된 이후 법과 제도가 너무 빨리 바뀌어 혼란스러울 지경이라고 했다. 실제 '트럼프 관세'와 전쟁이 국제 뉴스를 장식한 지난 1년 미국 교육계도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을 중시하는 캠퍼스 문화를 지적하며 보조금을 무기삼아 대학들을 굴복시켰다. 전례없는 행동에 캠퍼스는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의 한 교육 전문지를 통해 공개된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영국, 호주 대학 교직원들이 미국 대학 교직원들에게 트럼프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모든 응답자들이 익명 처리를 요구했다. 감시당할지 모른다며 특정 메신저 사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연구를 진행한 교직원들은 출판을 거부 당하자 언론을 통해 연구 경과를 공개했는데, 후환이 두렵다며 실명을 숨겼다. 대학의 최고 가치이자 대학을 보호하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제안 후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시 전문을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당 안팎의 비판에 대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결단을 꺾지 않고 합당 추진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한 건 정 대표가 피우려는 꽃이 민주당의 정체성과 가치를 흔들었다는 지적들이다. 합당 제안은 내용 이전에 절차와 방식에서 민주당이 내세우는 '당원 주권주의'와 정면 충돌했다. 정 대표는 지난 22일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당에 전격 합당을 제안했다. 당 지도부는 회견 20분 전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사실상 통보받았다고 한다. 당내 대다수 의원도 언론 보도로 소식을 접했다. 합당 제안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일부 최고위원들은 정 대표의 독단을 공개적으로 규탄했다. 반발이 커지자 정 대표는 "제안을 한 것일 뿐 결정은 전 당원 투표로 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다시 방향을 틀었다. 엔화 급등 속에 달러 매도 물량이 늘며 20원 넘게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언에 즉각 반응했다. '달러 불패 신화'의 균열도 잠시, 시장 분위기는 다시 달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는 환율이 경제 펀더멘털만으로 설명되는 숫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단기적으로는 '엔화 강세'와 '관세' 같은 이벤트가 환율을 크게 흔들지만, 충격이 증폭되는 배경엔 구조적인 '달러 수급 불균형'도 깔려 있다. 경상수지 흑자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민간은 달러를 '장기 축적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선 국내 주식시장의 성과가 높은데도 해외 투자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자산을 상대적으로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동안 정부는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통화스와프 연장이나 세제 인센티브 같은 수급 대책을 쏟아냈지만 시장은 이를 달러를 싸게 사는 '저점 매수 기회'로 학습했다. 외환당국의 정책 발표든, 미국 재무부의 구두개입이든 환율 안정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배터리 산업이 저물어가는 국면이라면 모르겠는데 지금 상황이 그렇지는 않잖아요.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달 초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임원을 만나 "3사 체제가 존속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이후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김 장관의 소집 자체가 배터리 기업들의 연쇄 계약 취소에 따른 '긴급 점검' 성격이 짙었던 만큼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신호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후 김 장관 쪽에서는 "다양한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지만 배터리업계는 "석유화학에 이어 배터리업계에도 칼을 들이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쳤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LG·삼성·SK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그룹의 주축으로 삼은 사업인데 쉽게 접을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분위기다. 배터리 3사 체제 개편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다는 얘기다. 실제로 호황기였던 2022년 한해에만 3사 합산 약 2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