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총 194 건
은영(가명·20)씨가 사라진 건 지난 10일 밤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밤 9시쯤 집을 나선 은영씨는 새벽이 가까워진 자정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의 불안감이 쌓여가던 그때, 무거운 공기 틈으로 은영씨 언니의 휴대전화 알림이 공허하게 울렸다. "다 끝내고 싶어". 발신자는 은영씨였다. 자정을 넘긴 11일 오전 0시30분. 경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에 '딸이 없어졌다'는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은영씨의 어머니였다. 야간 근무 중이던 김호연 순경(29)을 포함한 지구대원 4명은 사라진 은영씨의 행방을 쫓았다. 다행히 몇 차례 시도 끝에 은영씨에게 연락이 닿았다. 김 순경과 대원들은 은영씨 휴대전화 기지국 신호를 기준으로 서현역 인근 모텔 20여개를 뒤지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수색에 등줄기가 땀으로 젖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1시간30분간의 수색이 이어졌고 오전 2시쯤 끝내 은영씨를 찾아낸 김 순경은 은영씨를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지난해 9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50대 후반 남성이 자택 문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그의 목에는 방어흔 없아 치명상 하나뿐. 자칫하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오인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3팀 장권호 경위(48)를 비롯해 그의 팀원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감지했다. 기나긴 현장 감식에 들어간 이들은 끝내 자택 내부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하마터면 묻힐 뻔한 사건의 실상은 이렇게 밝혀졌다. 피해자 회사 직원이었던 30대 남성이 퇴직금 지급 문제를 두고 피해자와 갈등을 벌이다 살해한 것. 2006년부터 과학수사 업무를 시작해 15년 차에 접어든 장 경위는 전국 최다 출동 기록을 보유한 그는 잔뼈 굵은 베테랑이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총 141건의 변사사건에 출동했다. ━변사·살인·강도 '다 나간다'…끔찍한 살인 현장에서도 '단서' 하나 안 놓쳐━장 경위와 같은 과학수사요원은 하루 평균 적게는 3건에서 많게는 7건가량 현장에
"현행범이라 상상하고 저를 공격해보세요." 민새롬 중앙경찰학교 무술교관(경위)이 방어 자세를 취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곧바로 오른팔을 뻗었지만 민 경위가 가볍게 쳐냈다. 기자의 자세가 흐트러지자 민 경위는 잽싸게 뒤쪽으로 파고들더니 무릎으로 기자를 들어 올렸다.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내리 앉았다. 민 경위는 그대로 기자 팔을 몸 뒤로 꺾고 수갑을 채웠다. 합기도와 유도, 태권도, 특공무술 등 합계 '15단' 유단자인 민 경위가 직접 개발한 체포술이다. 현행범이 공격하거나 만취자를 부축하는 등 다양한 상황에 따른 대처법이 마련돼 있다. 민 경위는 경찰특화 체력교육 훈련 체계와 실전체포술 개발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해말 특별 승진했다. 5년째 경찰학교에서 체포술을 가르치고 있는 민 경위를 지난 27일 충북 충주에 있는 중앙경찰학교 초심관(체육시설)에서 만났다. ━8년전 경찰 공격하는 만취 난동꾼 제압...맨손 체포술 중요성 느껴━ 민 경위를 경찰의 길로 이끈 건 남다른 체격과 신체 능
"삑 삐익 삐익" 지난해 11월12일 오후 4시30분쯤 20평 남짓한 충청남도 아산경찰서의 112종합상황실에서 경보가 귀청이 떨어질 듯 울렸다. 경찰의 신고 분류 등급 중 두번째로 높은 코드원 신고였다.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등 위급한 상황에 코드원이 적용된다. 하루에 20~30건씩 들어오지만 상황실에 9년간 근무한 이종석 경위는 무언가 다른 점을 느꼈다. 접수한 신고는 줄글로 약 20줄 분량이었다. 보통 코드원 신고는 2~3줄 분량으로 짧다. 신고 내용을 들여다봤다. 충남 공주시에 사는 한 70대 노부부가 '아들을 감금하고 있으니 돈을 보내라'는 말에 속아 보이스피싱 수금책에 4000만원을 전했다. 노부부는 수금책이 탄 택시를 뒤쫓아 차량 번호를 받아적고 경찰서로 향했다. 충남 공주경찰서는 차량 번호를 조회해 택시 회사를 찾았고, 운전기사의 휴대폰 번호까지 알아냈다. 택시의 목적지는 KTX가 다니는 천안아산역이었다. 택시는 아산경찰서의 관할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이 경
"평생 모은 딸 결혼식 자금을 전화 한 통에 털렸어요." 울산 지역에서 거주하는 A씨(70대)는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에 속아 딸의 결혼식 자금 6000만원을 모두 잃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옷을 입혀 좋은 식장에서 해주려다 '대출을 저금리로 해주겠다'는 말에 속은 것이 화근이었다. A씨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악성 앱은 전화 한 통에 A씨가 평생 모았던 돈을 빼갔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수사관 정태영 울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경위(48)는 이 사건을 맡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다. A씨에게 전화를 건 휴대전화가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 경위는 동료들과 함께 1달 넘도록 밤을 꼬박 새워 수백대가 넘는 CCTV를 들여다보며 이 사건에 매달렸다. 결국 정 경위는 피해 금액만 최대 수천억원대로 추정되는 '대포폰(등록자와 사용자 명의가 다른 휴대전화) 일당'의 덜미를 잡았다. 이들은 지적 장애인·노숙자들의 명의를 이용해 대포폰을 만들고 '유령 법
#지난 4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나가시티. 코리안데스크 장성수 경감과 필리핀 현지 경찰·이민청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던 한국인을 덮쳤다. 그는 체념한 목소리로 "담배 한 대만 태우고 가겠다"며 "체포에 협조할 테니 수갑은 차 안에서 채우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 중년 남성이 보이스피싱 총책으로 활동하며 수백억원을 가로챈 이른바 '김미영 팀장'이다. 2011년부터 보이스피싱 행각을 벌여 온 '1세대'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우두머리) 박모씨(50)가 8년간의 도피생활 끝에 필리핀에서 붙잡혔다. 박씨는 보이스피싱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김미영 팀장'을 사칭해 거액의 현금을 편취했으며 조직의 일제 검거를 피해 해외로 도피생활을 이어 왔다. 경찰관 출신의 '전문가' 솜씨에 당한 피해액만 수백억원에 달한다. '김미영 팀장'을 붙잡는 데에는 경찰청이 필리핀 현지에서 시행 중인 '코리안데스크' 장성수 경감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현지 강력 사건 수사 공조와 한국인 범죄자
경찰청이 올해 처음 개최한 사이버범죄 추적기법 경진대회 '폴-사이버 챌린지'에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수사관들이 우승자로 꼽혔다. 대회에는 전국 경찰서에서 51개팀(91명)이 참여했다. 이승현 서울 중부경찰서 경제범죄수사과 경위(27)와 김영웅 경북 구미경찰서 경비과 경위(24)는 가상의 랜섬웨어 사건에서 수많은 이메일 중 악성 메일이 뭔지, 랜섬웨어가 컴퓨터에서 무슨 정보를 빼내는지, 암호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등 문제를 해결해 만점을 받았다. 만점을 받은 팀은 사실 두 팀 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최단 시간인 3시간 만에 과제를 해결한 점을 인정받아 우승을 거머쥐었다. 놀라운 건 이들은 아직 수사 현장에 투입된 적 없는 '원석'이란 점이다. 이 경위는 2017년, 김 경위는 지난해 경찰대학을 졸업했다. 경력이 짧다 보니 대회가 열린 금요일에 연차를 써야 하는 줄 알고 팀 이름도 '금요일 연차'라 지었다. 이들은 "사이버 수사관이란 목표에 한 걸음 다가
서울 도심 속 좁은 골목에서 사람 500명과 차량 50대가 모이는 시위가 '안전하게' 열릴 수 있을까. 2019년 서울 중구에 있는 한 대기업 본사 건물 앞에서 개인사업자 신분이던 직원들이 새로 노조를 조직해 집회를 예고하면서 남대문경찰서 소속 권은진 경위(43)는 이같은 고민에 빠졌다. 노조원들이 예고한 집회 현장은 본사 건물을 둘러싼 좁은 골목. 또 이들이 예고한 인원대로 집회가 열리면 교통 체증은 물론 자칫하면 인명사고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권 경위를 비롯한 대화경찰들은 노조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집회 당일에는 차량 25대만 참여했고, 집회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노조·탈북자·어르신 "다 만난다"…'대화경찰'을 아시나요━한국형 대화경찰은 스웨덴의 '대화경찰(Dialogue Police)'에서 시작된 제도로 우리나라에선 2018년 8월부터 도입·시행됐다. 권 경위와 같은 대화경찰은 각종 집회·시위 현장에서 인근 주민이나 집회 참여자 등과 소통해 갈
지난달 26일 밤 11시30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앞. 40대 남성이 식은땀을 흘린 채 몸을 떨면서 길가에 누워 있었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던 시민을 살린 건 다름 아닌 초코우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동작경찰서 교통안전계 소속 최덕영 경위(59)는 저혈당 쇼크임을 직감하고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했다. 최 경위가 인근 편의점으로 달려가 사온 초코우유를 사온 덕분에 시민은 10분 후 의식을 회복하고 안전히 귀가할 수 있었다. ━"숱한 현장 경험으로 저혈당 쇼크 인지" ━ 최 경위가 쇼크에 빠진 시민을 살릴 수 있었던 건 숙련된 경험 덕분이었다. 지난해 10월 올림픽대로에서 112신고를 접수받고 출동했을 때 비슷한 증상의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은 뒤 즉시 당분을 보충하면 15분 안에 회복이 가능하지만 오래 방치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최 경위는 "당시 차량 한 대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갓길에 정차해 있었는데, 운전사가 운전석에 앉아 핸들에 엎어져
2019년 8월. 경기도 수원의 한 원룸 안 현관에서 흉기에 찔린 채 쓰러져 있는 시신이 발견됐다. 원룸 내부에서는 시신만 발견됐을 뿐 범행도구 등 피의자를 추정할만한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 조명룡 경사(40)는 시선을 외부로 돌렸다. 시신이 발견된 건 원룸 내부지만 옆방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기적처럼 옆 호실 문 손잡이에서 혈흔을 발견해 채취한 끝에 살인 현장의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다. 과학수사요원 8년 차인 조 경사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서 발견된 작은 단서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그는 올해 1·2분기 전국 실적 1위로 경찰청장 표창을 받은 '베테랑'이다. ━장판·벽지 뜯고, 하수구 안까지 들여다본다…직접 개발한 '휴대용 렌즈'로 지문 채취━전국 시도경찰청의 과학수사요원 1900명은 매일 사건현장을 누빈다. 이들은 최신 과학 기술로 개발된 기구와 장비를 이용해 사건현장에서 발견되는 모든 증거를 채취한다. 조 경사도 그들 중 하나다.
# 2018년 9월 경기 연천군 인근 야산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현장엔 백골이 된 사체와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옷 몇 벌 뿐 지갑, 휴대전화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기북부경찰청 과학수사대 이서정 검시조사관(37)이 나설 때였다. 현장에 출동한 이 조사관은 발견된 두개골과 골반뼈 등의 모양을 보고 남성임을 알아냈다. 또 생전에 뇌 수술을 받은 두개골의 자국과 어금니 쪽의 치과시술 흔적을 확인했다. 즉시 이같은 검시 결과를 이전 실종사건과 대조했고, 9개월 전인 2017년 12월 실종신고가 됐던 60대 남성의 특징과 일치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신고 당시 유서를 쓰고 나갔다는 가족들의 증언이 있었으나 그간 해당 남성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백골이 되어 그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샜을 아내와 자식들의 품에 9개월만에 돌아갔다. 사건을 해결한 이 조사관은 과학수사를 통해 현장에서 발견된 변사자를 검시하고 주변 환경 조사를 통
지난해 3월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한 70대 남성은 "계좌가 도용돼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검찰 수사관의 전화를 받았다. "체포영장 발부를 막으려면 돈을 꺼내 검찰에 맡겨라"는 말에 피해자는 계좌에 있던 9000여만원의 돈을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 집 현관문에 걸어뒀다. 속은 것을 깨달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을 때에는 이미 현금은 사라진 후였다.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외국 국적의 수거책과 간부, 한국인 총책 등 6명으로 구성된 범죄조직의 윤곽이 잡혔다. 드러난 피해액만 59억여원에 달하며 200~300명의 피해자가 이들 조직에게 사기를 당했다. 경찰은 끈질긴 수사 끝에 6명 중 5명을 검거하고 중국으로 도주한 총책을 뒤쫓고 있다. 이 사건을 전담한 서울 도봉경찰서 강력팀 김준형 형사(41)는 기자와 만나 "형사가 범인을 못 잡고 먼저 쓰러져버리면 사건은 미제로 남는다"고 했다. 13년차 베테랑 그는 수도권 일대의 CCTV를 모조리 뒤져가며 밤을 새워 범인을 쫓았다. 김 형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