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시간 CCTV 보고 또 보고…'분양합숙소 사건' 숨은 퍼즐 찾았다

360시간 CCTV 보고 또 보고…'분양합숙소 사건' 숨은 퍼즐 찾았다

황예림 기자, 강주헌 기자
2022.03.12 05:24

[베테랑]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3팀 김영훈 경감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스스로 떨어졌어요? 맞으면 눈을 1번, 아니면 2번 깜빡여 보세요."

7층 높이에서 추락해 생사를 오가다 겨우 의식을 되찾은 인준씨(가명)는 형사의 요청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것도 알려줄 수 없단 의미였다.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3팀 소속 김영훈 경감(52)은 병상에 누워 있는 인준씨에게 질문을 이어갔지만 꾹 감긴 그의 눈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 경감이 이 사건을 처음 접한 건 지난 1월 9일 오전 10시10분쯤이었다. 오피스텔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단 신고에 당직을 서던 김 경감은 형사 2명과 함께 곧장 현장으로 출동했다. 김 경감이 도착했을 때 피해자는 호송되고 현장엔 피만 흥건한 상태였다. 최초 신고자는 피해자가 떨어진 장소인 것 같다며 인근 오피스텔 7층을 가리켰다.

오피스텔 7층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남녀 6명이 나왔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도 끼어 있었다. 김 경감이 추락 사고에 대해 묻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번을 되물어도 '모르쇠'였다.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단순 사고라면 잡아뗄 이유가 없었다. 추락 이틀 뒤 깨어난 피해자의 증언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지만 그 역시 침묵을 택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제 김 경감이 기댈 구석은 하나였다. 증거. 25년 차 형사의 직감을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했다.

360시간 걸친 CCTV 분석 끝에…단순 추락 사고가 특수중감금 범죄로
11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부동산 분양합숙소 감금·추락 사건'을 지휘한 형사3팀 소속 김영훈 경감(52)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황예림 기자
11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부동산 분양합숙소 감금·추락 사건'을 지휘한 형사3팀 소속 김영훈 경감(52)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황예림 기자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부동산 분양합숙소 감금·추락 사건'으로 불렀다. 사건의 실체는 지난 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진행된 첫 공판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주범 박모씨(28)와 박씨의 배우자 원모씨(22)를 비롯해 총 7명의 피의자들은 작년 9월 이들이 거주하는 합숙소에 입소한 인준씨에게 가혹 행위를 했다. 인준씨의 머리카락을 반려견 이발기로 삭발시키고 영하 5도의 날씨에 베란다에 세운 뒤 10분 간격으로 찬물을 뿌렸다. 이를 견디다 못한 인준씨가 7층 높이에서 뛰어내린 날에도 피의자들은 인준씨의 팔을 청테이프로 묶고 물고문을 가했다.

11일 오전 10시쯤 강서서에서 만난 김 경감은 "피의자들은 허위 진술만 하고 피해자는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 의지할 데는 CCTV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추락 당일 김 경감을 포함한 총 6명의 형사는 오피스텔 내·외부 CCTV를 4대 확보했다. CCTV엔 3개월 치 영상 자료가 남아 있었다. 이 자료를 모든 형사가 붙어 꼬박 3주간 분석했다. 순수하게 CCTV를 돌려보는 데 들어간 시간만 360시간이었다.

다행해 CCTV에 증거는 남아있었다. 이로써 단순 추락 사고로 끝날 뻔했던 사건이 특수중감금 범죄로 바뀌었다. 추락 장면이 찍힌 CCTV엔 피의자 2명의 모습도 찍혔다. 피의자들은 쓰러진 피해자 주변을 맴돌다 피해자의 손에서 특정 물건을 가져가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형사들은 '유서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았지만 화질이 좋지 않아 확신할 수 없었다. 김 경감은 피해자의 손을 확대해 한 컷씩 다시 돌려볼 것을 지시했다. 똑같은 작업을 몇 번 반복한 끝에 물건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떼어낸 듯한 청테이프였다.

김 경감은 "청테이프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현장으로 돌아가 오피스텔 앞에 있는 쓰레기봉투를 뒤졌다"며 "이미 쓰레기들이 회수된 뒤였지만 다행히 주변에 혈흔이 묻어 있었다. 이 혈흔에 대한 감식을 맡겨 피해자가 추락할 때 손목이 결박된 상태였다는 걸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CCTV 분석 작업을 하면서 피해자가 이미 여러 차례 합숙소를 탈출했고 그때마다 피의자들이 그를 다시 강제로 합숙소에 데려왔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경감은 피의자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하고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맡겼다. 작업이 끝나면 휴대전화 한 대당 통상 수천 개의 포렌식 자료가 전달되는데 이 사건은 피의자 수가 7명에 달해 확인해야 할 자료의 양도 많았다. 김 경감을 포함해 형사 3팀 소속 경찰 6명은 피의자들을 한 명씩 전담하고, 각자가 맡은 사람의 휴대전화 자료를 살피기로 했다. 원씨가 휴대전화 임의 제출을 거부해 머릿수도 딱 맞았다.

김 경감은 "휴대전화 분석을 한 일주일 했다"며 "주범이 누구인지, 피해자가 추락했을 때 피의자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등 범행의 세부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묻힌 사건 수면 위로 드러냈을 때 성취감 느껴…수사 경찰로서 국민 위해 희생할 것"
11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부동산 분양합숙소 감금·추락 사건'을 지휘한 형사3팀 소속 김영훈 경감(52)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황예림 기자
11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부동산 분양합숙소 감금·추락 사건'을 지휘한 형사3팀 소속 김영훈 경감(52)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황예림 기자

인지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경찰청에서 약 12년 근무했다는 김 경감은 지난 경력을 바탕으로 CCTV 분석과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강력팀에서나 할 사건을 네가 하고 있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경찰서 형사팀은 강력팀과 달리 인지 사건 대신 고소·고발 등의 접수 사건을 주로 처리하고, 추락이나 변사 사건이 들어오면 내사 종결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김 경감은 "그러나 이번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변사 사건 처리하듯 내사 종결할 수 없었다"면서 "좀 힘들더라도 범죄 혐의에 초점을 맞춰서 수사해보자고 팀원들을 구슬렸고 다행히 팀원들도 잘 따라와줬다"고 했다.

김 경감은 앞으로도 수사 부서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처럼 그냥 묻힐 수 있는 사건의 실체를 수사를 통해 드러내고 가해자들에게 응당한 법적 처벌을 받게 할 때 경찰로서 큰 뿌듯함을 느낀다"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수사 경찰로서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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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림 기자

안녕하세요. 정책사회부 황예림 기자입니다.

강주헌 기자

자동차·항공·물류·해운업계를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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