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중 대전 유성경찰서 노은지구대 경위
'돌아가 주세요. 신고 취소할게요.'
지난달 23일 늦은 밤. 가정폭력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피해자를 찾아 나선 경찰에게 '신고를 취소하겠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경찰은 신고 취소 문자에도 피해자의 안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3~4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고자는 오히려 경찰에게 ' '아무것도 아니다', '신고 취소했다', '왜 자꾸 전화하냐', '돌아가 달라'는 4통의 문자만 남겼다.
돌아가라고 거듭 요구하는 피해자의 문자를 본 김덕중 경위(46)의 머릿속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이상하다. 피해자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7년차 베테랑 경찰의 촉이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신고받고 출동한 지 30여분이 흐른 밤 11시쯤. 김 경위는 경찰서 형사과에 공조 요청을 신청했다. 같은 건물에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특성상 '위치 추적'으로는 신고자의 '수직적 위치'를 알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피해자의 휴대폰 가입 기준 주소지를 확인해 주거지를 특정할 수 있었다.
김 경위는 형사과와의 공조 끝에 알아낸 주소지로 방문해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아 재차 "경찰이 다, 문 좀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얼마 안 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을 한 두 딸들이 김 경위에게 문을 열어줬다.
김 경위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딸 둘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주는데 '몸이 얼어있다'는 표현 그대로였다"며 "벌벌 떠는 두 딸을 보고 나니 가정폭력 사건임을 확신했고 집 안으로 바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김 경위가 겁에 질린 딸들을 뒤로하고 집 안에 들어가자 상의를 탈의한 채 흥분한 가해자 남편 A씨와 피해자 아내 B씨가 앉아있었다. 그들 바로 앞에 있던 테이블 위에는 30cm 크기의 식칼 한 자루가 놓여있었다. 부엌 옆 방에는 다른 식칼 두 자루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A씨는 A씨의 외도 사실을 알고 이혼을 요구한 아내 B씨의 입을 감싸고 목에 칼을 대며 위협을 한 상황이었다.
가해자 A씨는 집안으로 들어선 경찰을 보자마자 "너희가 왜 오냐 XX, 이건 가족들의 문제다 XXXX야"라며 욕설을 내뱉으며 경찰을 몸을 밀쳤다. 이에 김 경위는 흉기를 앞에 둔 상태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가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이야기 좀 하자"며 가해자를 진정시켰다. 흉기를 가해자와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고 피해자인 B씨와의 안전한 거리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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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위는 가해자와 분리된 피해자의 진술을 들은 뒤 가정폭력 혐의로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어 경찰 직권으로 임시 조치를 신청해 피해자의 주거와 직장 100미터 안에는 가해자가 접근할 수 없게 조치했다. 추가 피해를 원천 봉쇄 한 것이다.
현재 A씨와 B씨는 법원의 임시 조치 인용으로 완전히 분리된 상태이며, 해당 사건은 대전 유성경찰서 여성청소년과로 인계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김 경위는 2016년 8월 유성지구대 인근 식당가에서 '자신이 김두한의 후예'라며 상인들을 6개월 이상 반복적으로 위협한 동네 조폭 C씨를 긴급체포했다. C씨는 식당에 들어가 큰소리로 "김두한의 후예다. 소주랑 맥주 좀 가져와라"고 소리치며 상인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했다.
온몸이 문신으로 가득한 C씨가 위협을 여러 차례 반복하자 상인들은 자신의 식당에 C씨가 들어오진 않을까 하는 공포감에 떨었다. 이에 김 경위는 해당 관내 식당을 한 달간 돌아다니며 C씨와 관련된 피해 사례를 30여건을 조사했다. 이후 C씨의 인적 사항을 특정한 뒤 군산시 문화동에서 C씨를 긴급체포해 구속했다.
김 경위는 "당시 경찰로서 해야 할 것을 했는데 상인들 입장에서는 고마워하면서 계속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오셨다"며 "피해 조사를 위해 식당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다른 일로 방문할 때도 상인들이 알아보시고 챙겨주셔서 감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성실하고 꼼꼼한 자세로 맡은 수사에 최선을 다한 김 경위는 모범공무원, 숨은 일꾼(대전청 1호), 으뜸 경찰, 현장의 영웅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본청장 표창(경찰청장)만 10회 이상 받으며 당당히 지구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김 경위는 '어떤 경찰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경장으로 근무할 당시 만난 한 선배를 떠올렸다. 김 경위는 "그 선배는 정년을 3~4년 앞뒀지만 늘 성실하게 근무하셨다"며 "그 정도의 연차가 되면 체력적으로 힘들 텐데 늘 솔선수범이셨다. '국민을 보며 일하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 선배처럼 나이가 들어도 초심을 잃지 않는 모범적인 성실한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항상 후배가 새로 들어오면 "법과 원칙, 개인의 양심을 지키는 경찰관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김 경위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법과 원칙을 기본으로 성실하게 근무하겠다고 늘 다짐하기 위해서다.
시민들이 믿을 수 있는 경찰이 되고싶다는 김 경위는 "경찰은 항상 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한다"며 "우리나라 경찰을 조금 더 믿어주시길 부탁한다. 성실하게 근무하겠다고 약속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