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에게 7년간 8000만원 뺏겼어요"…지적장애 피해자 직장부터 구해준 경찰관

"직장동료에게 7년간 8000만원 뺏겼어요"…지적장애 피해자 직장부터 구해준 경찰관

정세진 기자, 박수현 기자
2022.04.10 04:00

[베테랑]김예빈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김예빈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경장). /사진제공=김예빈 경장
김예빈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경장). /사진제공=김예빈 경장

"빚이 3000만원이에요. 구청에서 주는 기초 생계비로 이자를 갚으면 남는 게 없어요"

아직 날씨가 쌀쌀하던 지난 2월의 어느 날. 지적장애인 A씨가 김예빈 경장(24)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이 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직장동료이자 10년 지기 지인 B씨에게 7년간 8100만원을 빼앗긴 사기 피해자였다. A씨는 피의자가 346차례에 걸쳐 요구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대출과 담보대출까지 받았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A씨는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였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2월 고소장을 내고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됐지만 범죄 피해를 복구하진 못해서였다. 김 경장은 오랜 시간 범죄 피해로 힘든 시간을 보낸 A씨에게 일자리를 소개하고 은행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가 커피 한 잔에 털어놓은 속마음...대화로 형성된 '라포'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김예빈  피해자전담경찰관. /사진제공=김예빈 경장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김예빈 피해자전담경찰관. /사진제공=김예빈 경장

김 경장은 지난 2월부터 경남 창원서부경찰서에서 피해자전담경찰관으로 일하며 범죄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은 범죄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이사지원, 보험급여 지원, 손해배상 지원 등 경제적 지원부터 취업·심리치료 연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돕는 자리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의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와 대화를 나누고 개개인에게 맞는 해결책을 제시해야해서다. 함께 법정에 가기도 하고 일상적인 연락을 하기도 한다. 김 경장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모두 전담경찰관의 활동 영역"이라고 했다.

A씨를 처음으로 만난 날도 그랬다. 김 경장은 앞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사건 피해에 대한 질문보다는 '이전에 어떤 일을 하셨냐',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선생님이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조심스레 이어갔다.

지적장애 3급인 A씨는 당장 직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기 피해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생활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이든 부모님을 모셔야 했기 때문이다. A씨의 말을 들은 김 경장은 직접 관용차를 운전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남지사를 찾았다.

두 사람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공단 앞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A씨는 곰곰이 생각하다 "꿈이 있다.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 경장과 A씨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A씨는 사기 피해 과정에서 생긴 채무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김 경장이 신용회복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A씨는 이미 지인의 도움으로 채무상환유예 절차를 밟고 있었다. 하지만 기초생계지원 대상자라 다른 종류의 정부 지원금을 받기 어려웠다. 김 경장은 A씨가 창원서부서와 업무협력(MOU)를 맺은 산업은행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범죄 피해의 상처는 저절로 회복되지 않아…"라포 형성도 경찰의 몫"
김예빈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경장).김 경장은 2019년 경찰이 된 후 창원서부서 피해자전담경찰관이 되기 전까지 지구대에서 근무했다. /사진제공=김예빈 경장
김예빈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경장).김 경장은 2019년 경찰이 된 후 창원서부서 피해자전담경찰관이 되기 전까지 지구대에서 근무했다. /사진제공=김예빈 경장

김 경장이 처음부터 피해자의 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했던 건 아니다. 김 경장은 2019년 입직해 4년간 지구대에서 근무했지만 범죄가 어떻게 평화로운 일상을 뒤흔드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만난 피해자 대다수는 대인기피·식이장애·수면장애를 호소했지만 이런 증상이 범죄 피해의 후유증이란 것조차 몰랐다.

피해자전담경찰관으로 일하면서 범죄 피해의 상처가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에 당한 범죄 피해자는 일생 동안 모은 돈을 한 번에 날렸다는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가까운 관계에 있던 사람에게서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당한 범죄 피해자는 심한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범죄 피해자를 돕기 위한 전담경찰관이 필요한 이유다. 사건을 접수받아 수사를 진행하고 검찰에 송치해 피의자가 처벌받게 하는 경찰의 주요 업무를 넘어 피해자들의 마음까지 신경쓰는 일이다. 김 경장은 "피해자전담경찰관으로 일하면서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범죄 피해자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김 경장은 "피해자의 구체적인 경제 상황은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알 방법이 없다"면서도 "라포(상호신뢰)를 형성하지 않은 상황에서 질문을 던지면 피해자 중에는 '그렇게까지 얘기해야 하냐'고 되묻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것도 경찰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김 경장은 언젠가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수사관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김 경장은 "피해자전담관은 범죄 피해를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는 자리"라며 "나중에 수사 업무를 맡으면서도 피해자들을 배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정세진 기자

안녕하세요. 정책사회부 정세진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