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끝내고 싶어"실종된 스무 살…수화기 너머 들리는 소리로 찾았다

"다 끝내고 싶어"실종된 스무 살…수화기 너머 들리는 소리로 찾았다

홍효진, 강주헌 기자
2022.02.20 05:13

[베테랑]김호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순경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은영(가명·20)씨가 사라진 건 지난 10일 밤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밤 9시쯤 집을 나선 은영씨는 새벽이 가까워진 자정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의 불안감이 쌓여가던 그때, 무거운 공기 틈으로 은영씨 언니의 휴대전화 알림이 공허하게 울렸다. "다 끝내고 싶어". 발신자는 은영씨였다.

자정을 넘긴 11일 오전 0시30분. 경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에 '딸이 없어졌다'는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은영씨의 어머니였다. 야간 근무 중이던 김호연 순경(29)을 포함한 지구대원 4명은 사라진 은영씨의 행방을 쫓았다. 다행히 몇 차례 시도 끝에 은영씨에게 연락이 닿았다. 김 순경과 대원들은 은영씨 휴대전화 기지국 신호를 기준으로 서현역 인근 모텔 20여개를 뒤지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수색에 등줄기가 땀으로 젖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1시간30분간의 수색이 이어졌고 오전 2시쯤 끝내 은영씨를 찾아낸 김 순경은 은영씨를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 서현지구대에서 만난 김 순경은 "위치만 알면 문이라도 부수고 구할 거라는 생각으로 수색에 매달렸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지난해 4월 임용된 막내 순경이었지만 김 순경의 눈빛과 태도는 이미 '베테랑'이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 듣자마자… "밀폐장소로 판단, 모텔 20여곳 찾아다녔다"
지난 17일 오후 10시 본지와 만난 김호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순경이 지구대 앞에서 카메라를 향해 오른손을 번쩍 들어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홍효진 기자
지난 17일 오후 10시 본지와 만난 김호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순경이 지구대 앞에서 카메라를 향해 오른손을 번쩍 들어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홍효진 기자

극단적 선택이 예상되는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한 건 김 순경의 재빠른 상황판단력이었다. 김 순경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은영씨의 목소리가 유독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밖이라면 이렇게까지 울릴 수 없었다. 모텔이나 호텔 또는 건물 화장실처럼 밀폐된 장소 안에 있을 거라는 직감이 왔다.

김 순경은 "서현역 주변을 수색 중이었는데 통화 이후에는 모텔과 호텔이 모인 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며 "갓 성인이 된 젊은 분이라 저렴한 모텔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가격대가 낮은 모텔 위주로 수색했다"고 말했다.

김 순경의 직감은 적중했다. 김 순경은 은영씨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사진과 외출 당시 인상착의 정보를 바탕으로 서현역 부근의 한 모텔에 도착했다. 경찰이 오자 경계심을 드러낸 모텔 측은 극단적 선택이 의심된다는 설득 끝 수색에 협조했다.

김 순경은 "모텔 측에서 계좌이체를 한 여자 손님이 있었다고 했다"며 "요구조자 이름과 당시 모텔에 들어온 여자 분의 이름이 같았고 CCTV 영상을 확인하니 인상착의도 동일했다"고 전했다.

은영씨가 있는 모텔 호실 앞으로 간 지구대원들은 다시 전화를 걸어 대화를 시도했다. 은영씨는 "경찰도 가족도 만나기 싫으니 혼자 있게 내버려달라"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김 순경은 모텔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내부 인기척에 집중했다. 다행히 극단적 선택을 준비하는 움직임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었다. 대원들은 "안전 확인만 하겠다" "문틈으로 얼굴만 보겠다"고 설득하며 경계심을 풀어나갔다. 이후 경찰 연락을 받은 은영씨의 어머니가 현장으로 달려왔고 은영씨는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김 순경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 저희가 최대한 설득을 한 뒤에는 정서적 유대감이 높은 가족분과 대화하는게 더 맞다고 판단했다"며 "어머님께 연락을 드리자마자 다른 신고가 떨어져 함께 현장에 있던 본서 실종팀에 인계했다. 이후 상황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아무 일 없이 잘 마무리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혹시 눈에 띌까… "퇴근 후 실종자 갈 만한 곳 돌아보기도"
지난 17일 오후 10시 본지와 만난 김호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순경. /사진=홍효진 기자
지난 17일 오후 10시 본지와 만난 김호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순경. /사진=홍효진 기자

"어떻게든 찾고 싶었다"고 김 순경은 당시를 떠올렸다. 숱한 안타까운 사례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며 갖게 된 간절함이었다. 실제 사망 현장을 목격할 때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김 순경은 "작년 6월쯤 한 40대 남성 분이 가정사 문제로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신 적이 있었다"며 "벽에 매직으로 유서를 쓰고 돌아가셨는데, 사망 현장을 갔다오고 나니 하루종일 그 생각만 났다. 차라리 현실감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흰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 김 순경의 두 눈에 붉은 기가 번졌다.

김 순경은 "퇴근 후에도 실종자가 가볼 만한 장소를 돌아보기도 하고 인계 받은 팀원들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물어보게 된다"며 "찾으면 다행인데 아닌 경우도 많아 그날은 잠도 잘 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 순경은 자원근무에 자청할 정도로 '남다른 열정맨'으로도 소문나 있다. 인터뷰 내내 김 순경은 무전기를 손에서 놓을 줄 몰랐다.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순간에도 무전이 들려올 때면 곧장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따뜻한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밝힌 김 순경은 "직업 특성상 시민들의 폭언을 자주 듣기도 하고 안 좋은 현장을 많이 봐서 감정소모가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시민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고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출근이 즐겁다"고 말했다.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순경은 단번에 "더 신고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김 순경은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나가보면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었음에도 신고를 망설이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저희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도와드릴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신고해주시고 경찰을 믿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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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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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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