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인줄 알았지만...'아들 감금' 소리에 4000만원을 보냈다

'피싱'인줄 알았지만...'아들 감금' 소리에 4000만원을 보냈다

김성진 기자
2021.11.14 06:00

[베테랑]보이스피싱 당한 노부부 피해 막은 9년차 경찰

[편집자주]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경찰 순찰차.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사진=뉴스1
경찰 순찰차.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사진=뉴스1

"삑 삐익 삐익"

지난해 11월12일 오후 4시30분쯤 20평 남짓한 충청남도 아산경찰서의 112종합상황실에서 경보가 귀청이 떨어질 듯 울렸다. 경찰의 신고 분류 등급 중 두번째로 높은 코드원 신고였다.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등 위급한 상황에 코드원이 적용된다. 하루에 20~30건씩 들어오지만 상황실에 9년간 근무한 이종석 경위는 무언가 다른 점을 느꼈다. 접수한 신고는 줄글로 약 20줄 분량이었다. 보통 코드원 신고는 2~3줄 분량으로 짧다.

신고 내용을 들여다봤다. 충남 공주시에 사는 한 70대 노부부가 '아들을 감금하고 있으니 돈을 보내라'는 말에 속아 보이스피싱 수금책에 4000만원을 전했다. 노부부는 수금책이 탄 택시를 뒤쫓아 차량 번호를 받아적고 경찰서로 향했다. 충남 공주경찰서는 차량 번호를 조회해 택시 회사를 찾았고, 운전기사의 휴대폰 번호까지 알아냈다. 택시의 목적지는 KTX가 다니는 천안아산역이었다.

택시는 아산경찰서의 관할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이 경위는 신고 내용 중 '4000만원' '택시' '천안아산역'이 눈에 들어왔다. 이 경위는 곧바로 무전기를 들고 순찰차에 천안아산역으로 출동하라고 지시했다. 몸에 익은 대처였고 모든 과정에 걸린 시간은 5초였다.

택시, 천안아산역 도착 3분 전…'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충청남도 아산경찰서에 근무하는 이종석 112치안종합상황실 경위./사진제공=이종석 경위
충청남도 아산경찰서에 근무하는 이종석 112치안종합상황실 경위./사진제공=이종석 경위

무전기를 내려놓은 이 경위는 사무실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순찰차가 역에 도착하려면 5분이 필요했다. 택시의 속도를 늦춰야 했다, 이 경위는 "택시 기사들은 보통 휴대폰의 화면을 손님 쪽으로 고정하지 않나"라며 "화면에 '112'가 뜨지 않도록 일부러 사무실 전화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택시 기사들은 대부분 운행 중 전화를 받을 때 스피커폰을 쓴다. 이 경위는 "전화기에다 내가 '경찰입니다'라 하면 자칫 뒷 좌석에 앉은 수금책도 경찰이 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 아닌가"라며 "경찰 신분을 숨길 전략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순간의 판단이 중요했다. 택시기사가 전화를 받자 이 경위는 "형님"이라 인사했다. 자신이 택시기사와 아는 사람인 척 수금책을 속이려는 이 경위의 전략이었다.

다행히 택시 기사와 이 경위의 손발이 맞았다. 택시 기사는 "그려"라고 답했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이 경위는 "손님 모시는 중인가 봐요"라며 대화를 이어가다가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어요"라 물었다. 기사는 "2~3분 남았다"고 답했다.

이대로라면 택시가 순찰차보다 먼저 역에 도착한다. 이 경위는 "(역을) 한바퀴 돌아주면 안될까요"라 물었다. 수금책을 차에 1~2분만 더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기사는 "안 될 거 같은데"라며 "솔직히 좀 무섭다"고 덧붙였다. 뒷 자석에 앉은 수금책이 택시기사에 해코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경위는 이대로 수금책을 놓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이 경위도 모르는 사이 택시와 순찰차의 거리는 좁혀져 있었다. 택시 기사는 이 경위와 전화하는 동안 속도를 조금씩 줄였고, 상황실에서 이 경위의 동료는 순찰차에 "상황이 급하다"고 무전을 보냈다. 순간 전화 너머로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 경위는 "빨리 차에서 내려서 순찰차에 손을 흔들라"고 외쳤다. 급하게 차 문을 여는 소리, 현장 경찰관들이 "움직이지 마"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5분 간 이어진 추격전의 끝이었다. 경찰은 수금책을 현장에서 검거했고 노부부의 4000만원도 회수했다.

"상황실 근무 9년 동안 쌓은 경험의 결과…장기 근무 늘려야"
이종석 경위가 2019년 3월 충청남도 아산경찰서 강당에서 열린 승진 임용식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이 경위는 해당 승진 임용식에서 경위로 승진했다./사진제공=이종석 경위
이종석 경위가 2019년 3월 충청남도 아산경찰서 강당에서 열린 승진 임용식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이 경위는 해당 승진 임용식에서 경위로 승진했다./사진제공=이종석 경위

이 경위는 그날의 대처가 9년 동안 상황실에 근무한 '경험의 결과'라 설명한다.

이 경위는 "당시 대처한 내용 모두 교육 받을 때 책에 나오는 내용"이라며 "긴급 사건이 발생하면 이동로에 순찰차를 배치하는 건 기본"이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교육을 받더라도 당장 사건이 떨어져 시간이 5분 밖에 없고 택시가 어디를 지나는지 등 모르는 부분이 많을 때 제대로 대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경험이 많은 부분을 채워준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상황실에 5년 이상 장기 근무하는 '베테랑 근무자'를 키운다면 급박한 상황에도 순발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 기대했다. 그는 "경찰에는 한 부서에 5년 동안 근무하면 다른 부서로 발령하는 규정이 있다"며 "'112 상황실 근무자는 장기 근무를 유도하라'는 경찰청 내부 규칙이 있지만 이외에 장기 근무를 늘릴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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