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통찰을 깊이 있게 전합니다. 생생한 이야기와 진솔한 답변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제공하는 뉴스 코너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통찰을 깊이 있게 전합니다. 생생한 이야기와 진솔한 답변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제공하는 뉴스 코너입니다.
총 3,113 건
“신체적 장애가 제 삶에 걸림돌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장애우들을 위한 기구를 발명하게 됐지 않습니까.” 지난 9일 제3회 보조기구 공모전에서 우수상(Happy Idea)을 수상한 백덕현(41)씨는 장애우들이 혼자 차량에 탈 때 겪는 불편을 없앨 수 있는 차량탑승용 리프트인 '루프체어'를 개발했다. 21년전 스무번째 생일에 그는 1급 지체장애인이 됐다. 친구들과 함께 보트 선착장에서 놀다 바다로 떨어져 부표에 경추를 다쳤기 때문이다. 사고 후 3년간은 전신마비로 손가락조차 까딱할 수 없었다. “사고 후 한동안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컴퓨터 관련한 일은 그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오랫동안 좌절하진 않았어요.” 백씨의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사고 후 3년이 지나자 까딱하기도 힘들었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10년간 독학으로 마스터한 컴퓨터 실력이 입소문 나면서 홈페이지 제작이나 웹개발 의뢰가
"앞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 국내 건설기업이 진출한 해외건설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열리고 있는 제36차 아시아·서태평양국가 건설단체협의회(아이포카, IFAWPCA) 총회에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한 권홍사 대한건설협회 회장(사진)은 11일(현지시간) 이달 중 개최되는 남북 총리회담에서 북한 인력의 해외건설현장 활용방안이 전향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 회장은 "국내 건설업체들의 해외 수주 300억 달러 시대가 열리며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인력 수급 문제로 각 현장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운영하고 있는 반도건설이 추진하고 있는 두바이 사업을 예로 들어 "하루에 1000여명의 근로자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대부분 동남아시아 인력 대행업체에 비싼 인건비를 지불하고 있지만, 능률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북한 인력의 경우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부지런하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조 디센소(Joe Di Censo) 채권투자전략 담당 수석부사장(사진)은 "인플레이션 위험때문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정책금리를 내릴 수 있는 하한선은 3.75%로 본다'며 "미국경제가 향후 성장률 1%대의 침체국면에 돌입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먼에서 글로벌채권펀드 배분전략을 담당하는 조 디센소 부사장은 최근 뉴욕 맨하탄 7번가 리먼브러더스 본사에서 기자를 만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의 경제흐름을 이처럼 비관적으로 보며 보수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다수의 이코노미스트들이 미국경제가 침체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대해 그는 "그런 시나리오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2분기 연속 GDP감소라는 교과서적 침체 정의에 딱 들어맞지 않지만 앞으로 4 - 6분기후 1%대 저성장이라는 온건한 형태의 침체를 예상한다고"고 말했다. 침체의 이유로 그는 △ 집값 등 자산가격 하락과 주택소유자의 고통 그리고 그에 따른 소비위축효과(마이너스 자산효과)
'이순재와 HOT' 김종민 문화관광부장관의 '한류론(論)'에 따르자면 두사람은 우리나라 문화사에 획을 그은 '한류 원조'이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문화의 중심지에 한국문화의 씨를 뿌리는 작업을 위해 4일(현지시간) 뉴욕을 찾은 김장관에게 한국문화행정의 책임자가 바라보는 '한류론'을 들어봤다. 김장관에 따르자면 한류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가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인들에게 가져다준 문화적 충격이다. "등소평은 대약진 운동 당시 여성인력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자들의 가사노동을 거의 강제하다시피한 이후 중국의 남성들은 가사와 밥벌이 부담을 함께 짊어지는게 일상화돼 왔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빠'는 중국인들, 특히 남성들에게 잊고 있던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방송되면서 한국문화의 충격이 전파됐고, 이때부터 '한류' 열풍이 시작됐다는게 김장관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금도 중국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한국드라마는 '사랑이 뭐길래'라
"작가의 명성이나 이름만 보고 미술 작품을 구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취향에 맞는 그림을 사야합니다." 파리, 뉴욕 등 8개국 주요 도시에 체인을 갖고 있는 프랑스의 세계적 화랑 '오페라 갤러리'의 싱가폴 사무소 책임자인 스테판 르 펠레티어씨가 권유하는 그림 구입요령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청담동에 개관한 '오페라 갤러리' 서울 사무소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일반 미술 애호가의 입장에서 미술품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94년 싱가포르에 개관한 오페라 갤러리는 지금까지 마이애미, 홍콩, 런던, 베니스에 차례로 체인을 개관했고 서울점에 이어 내년에는 모나코에 문을 열 예정이다. 오페라 갤러리의 기본 컬렉션은 19세기 말∼20세기 초반의 유럽 인상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그림들이다. 여기에 앤디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 등의 팝아트, 신구상주의 등 21세기 현대미술과 중국 현대미술까지 컬렉션을 넓히고 있다. 스테판 매니저는
"2010년까지 펀드 총수탁액을 34조원으로 늘려 업계 5위안에 진입할 계획입니다." 최근 서울 광화문 소재 서울파이낸스센터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랜드마크와 ING 자산운용의 통합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한 최 홍(사진) 통합 ING자산운용 대표는 4일 "그동안 통합작업 때문에 해외펀드 출시 등 투자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며 "ING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다양한 해외펀드 등을 통해 3년안에 업계 5위로 발돋움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2010년까지 주식(6조500억원) 혼합주식(8조7000억원) 채권(10조원) 기타 (8조원) 등 현재보다 3배많은 수탁액 34조원 규모의 자산운용사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최 대표는 이같은 목표달성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다. 무엇보다 ING그룹의 '한국현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꼽는다. 최 대표는 "통합 ING자산운용의 초대 최고경영자(CEO)로 피합병회사 CEO인 저를 임명했다"며 "한국사정에 정통한 현지인 CEO를 채용, 단
"기업의 사회공헌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입니다" 폴 맥켈비(Paul Mckelvie, OBE) 영국 스코틀랜드 전력회사(Scottish Power) 기업책임 이사는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일 열린 2007 사회공헌문화대축제 국제포럼 강연차 방한한 그는 스코트랜드 전력회사의 기업책임 분야를 총괄하는 기업 사회공헌의 전문가다. 그의 이름 뒤에 붙은 OBE는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대영 제국 제4급 훈작사로 그가 개발한 '스코틀랜드 전력 학습(Scottish Power Learning)'이라는 혁신적인 기업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얻은 지위다. 그는 "기업 사회공헌에서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의 욕구와 병행하는 것, 회사 브랜드와 강한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봉사활동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지속시키고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효과가 있습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게 의무인 은행들이 있다. 빈민을 위해 무이자대출을 해줘야 하고 자선금(자카트, Zakat)도 모아야 한다. 그런데도 이 은행들은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다. 이 은행들의 총 자산은 3200억 달러, 우리돈 293조원에 이른다. 빈민 구제의 의무를 가지고도 성장하는 은행, 늘어나는 자본이라니? 이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같은 곳에나 해당되는 이야기 아닐까? 이 은행과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 총재는 빈민 자활을 돕는 무담보소액금융, 즉 마이크로크레디트를 개발해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돕고 경제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은행들, 금융자본이 세계 자본시장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이슬람은행, 이슬람자본이 그들이다. 이 자본이 지금 한국을 눈여겨보고 있다. 24일 한국중동협회 주최 ‘이슬람금융국제컨퍼런스’ 자리에서 만난 파이잘(Fisal)은행의 압둘 하미드 아부 무사 총재(사진)는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지점
"지난 33년간 주민들의 덕으로 먹고 살았으니, 이제는 주민을 위해서 일 좀 해보려고요." 김선동 기자촌 주민위원회 위원장(사진)은 의외로 자신의 일을 이렇듯 소박하게 풀어냈다. 그는 기자촌 한 켠에서 여주상회를 운영하고 있다. 오랫동안 주민들이 자신의 상점을 이용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것이다. 여주상회 앞에는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주민위원회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동안 시위도 많이 했고 고생도 많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보상가격에 관한 입소문에 불안한 밤을 보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적정한 보상가격을 받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대체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3-2지구의 보상가격에 준해서 정해질 것이라는 겁니다. 결국 평당 700만원대라는 건데 이렇게 보상받아서는 은평뉴타운의 30평형 아파트를 겨우 살 수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완공되기까지 나가서 살 집을 마련하기도 빠듯하다는 거죠."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기자촌의 조성환경 및 한양주택의 보상가격이다. 일단 기자촌
은평뉴타운은 공영방식의 첫 뉴타운 개발사업이다. 지난 2002년 1차 시범뉴타운사업지로 발표한 이후 도시개발법에 의한 전면수용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업 시행은 SH공사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 선두에는 배경동 SH공사 뉴타운사업본부장(사진)이 있다. 배 본부장은 은평뉴타운 중에서도 구파발역 인근 중심복합상업지구 개발에 대한 의욕이 남다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곳에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고층건물을 짓겠다는 야심을 내비치곤 했다. 다른 곳과 차별화할 수 있는 상징성 높은 상업 콤플렉스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구파발역 주변을 서울 서북부의 주요 중심축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것이다. 구파발역 주변의 상업용지는 현재 상업수요분석 보완 및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말쯤에는 계획이 확정될 전망이다. 그는 "중심복합상업지구에 대한 계획이 완료되는 연말쯤 사업자 공고를 낼 계획"이라며 "프로젝트 파이낸스(PF) 방식으로 대단위 개발사업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음식물처리기업체 루펜리는 역동적으로 성장해왔다. 음식물처리기 개념 자체가 없던 지난 2003년,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세운 회사가 올해 2000억원 규모의 관련시장을 만들고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넘보고 있다. 이희자 사장(사진)이 그 역동적인 성장의 한가운데 서있다. 24일 서울 역삼동 루펜리 사장실에서 만난 그는 '해외 출장을 가면 수주를 한건 따오고, 업체와 미팅을 하면 납품 계약을 한건 받아왔다'는 주위의 평판 그대로 시원시원하게 말을 이었다. 주로 건설업체를 대상으로한 빌트인 제품을 팔아오던 루펜리는 지난 7월 신제품 LF-05를 출시하며 영업방식을 바꿔 B2C 개인고객 시장을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홈쇼핑의 첫 방송에서 1시간만에 2000대를 팔고, 방송 2달만에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 사장은 "자신감은 있었지만, 홈쇼핑 진출을 앞두고는 소비자를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수출 계약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타고난 장사꾼이다. 고구마 장사, 생수 장사, 비디오방, 포켓볼장, 노래방, 소주방 등 '된다' 하는 소호 아이템은 죄다 섭렵했다. 방위 시절에도 주말에는 막노동을 했다. 사십 나이에 장사 경력만 어언 20년. 할아버지는 양조장을 했고, 아버지는 제약회사 사장이라 부족함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돈을 벌겠다'는 갈증은 그를 늘 따라다녔다. IMF 외환위기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당시 최고 유행 아이템이었던 '콜라텍' 공사가 부도를 맞았다. 시쳇말로 쫄딱 망했다. 떼인 돈을 받으러 부산의 밤거리를 전전하면서 자살을 생각했다. 그때 200여 개의 가맹점을 거느린 세계맥주전문점 분야 국내 1위 브랜드를 꿈꾸기나 했을까. 인토외식산업 이효복(40) 사장의 이러한 사업 이력은 성공 신화에 가깝다. 그는 원래 인테리어 전문가였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인테리어 사업 당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잔금' 문제가 예상 밖의 길로 이끌었다. '잔금을 안 주면 간판을 내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