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도화된 폭력으로서의 법 질서는 필연적으로 사람이 자원을 소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람을 고용하고 장비로 무장시키고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하니, 법의 집행도 희소성에 의하여 제약 받는 경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연회가 시작되게 하라는 마법사의 말에 순식간에 푸짐한 음식이 차려지는 상황이, 산출이 투입을 초과할 수 없다는 열역학의 법칙을 위반하는 허구이듯이, 경제를 살리고 법 질서를 확립하라는 최고 지도자의 지시도 즉시 실현될 수 없고 현실은 자원의 희소성과 시간이라는 범주의 지배를 받는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법을 집행하는 자원을 시장에서 뜯어내기도 하고 규제로 민간의 수익을 침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민간의 감당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한 지도자의 입장에서야 말 한마디에 공무원들이 잠을 줄여 일하고 시장도 순종하여 그 뜻이 '경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을 바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거대 기업이 하청업체에 주는 대가를 후려치면 손실이 하부 업체와 노무자에게 전가되어 착취의 연쇄를 일으켜 파탄을 부르듯이, 과도한 규제도 언젠가는 반란을 불러온다.
또 구체적인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 상황은 실망과 분노를 낳는다. 고대에 가뭄이 심하게 들면 임금 탓이라 여기고 죽여 버렸다던가. 임금이 하늘에 제사 지내서 비를 부르는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리라.
전능한 정부가 민생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하면 화장실 변기가 막혀도 대통령 탓이다. 날씨가 임금 탓이 아니듯이, 국제 곡물가와 유가의 상승이나 미국의 금융위기도 우리 정부의 탓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기료를 내리고 생활필수품 가격을 행정력으로 억제하겠다는 30년 전에나 썼을 법한 가격통제정책은 웬 말인가.
터지는 살을 코르셋으로 아무리 감싼들 눈속임 밖에 되지 않듯이, 시장가격을 규제하면 공급이 줄어든다는 경제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언젠가는 시장의 반란으로 돌아온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구체적 질서를 형성하려고 하지 말고, 시장의 일은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맡기면 안 되는가.
치안이 먼저이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백주에 귀여운 어린아이들이 납치, 살해, 분해, 유기되는 며칠 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젊은 여자들이 느닷없이 사라지는 십여년 동안 지역 사람들은 공포에 떨어왔고,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다음 기회를 노려왔다.
독자들의 PICK!
내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는 비극이 수시로 발생하는 상황에 아무리 세금 깎아 준다며 외자를 유치한다고 선전한들 누가 선뜻 들어와 살겠는가.
경찰도 공짜가 아니다. 경찰은 강력범의 검거와 사회 기강을 해치는 좀도둑과 싸워야 한다. 아무리 성도덕의 진작이 중요한들 자발적인 매춘광고까지 단속하느라 경찰력이 낭비될 이유가 없다.
죽은 자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는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대하여 얼마나 인력과 예산지원을 하기에, 강력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관들이 무능하다고 뻔뻔하게 질타하는가.
생존을 위하여 사람을 해치는 맹수가 있듯이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절대악인도 있다. 아무리 다양성을 가치로 하더라도 절대악인만은 사회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평소에 손 놓고 있다가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주민등록과 연계된 전산자료에 의하여 수사를 하는 안이함을 벗어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감시하며 범죄 발생을 예방하는 형사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시민의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하게 했으면 좋겠다.
물건 값이 오르면 지출을 줄이고 적응하면 된다. 외부 경제여건의 변화를 못 견디는 한계기업은 도산제도를 통하여 재조직되고 퇴출될 수 있고 불운에 처한 사람은 최소한의 사회연대에 의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은 되돌리지 못한다. 강력범죄를 당해 죽은 사람의 피해는 회복될 수 없다. 치안이 먼저인가, 물가 숫자놀음이 먼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