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 '40년展' 여는 김현 디자인파크 대표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이미지가 실제를 압도할 정도다. 실제 제품의 품질이 어떠한가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해당 제품이 어떤 이미지로 형성됐는가에 따라 대부분의 구매가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업과 제품 이미지의 최전선에는 'CI(기업아이덴티티)'와 'BI(브랜드아이덴티티)'가 있다. 이 둘은 소비자들을 제품이나 기업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기업들이 내부 문화와 조직을 정비하며 최우선적으로 CI와 BI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기업이미지통합 작업은 199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이제는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기업 역시 CI와 BI 작업에 공을 들인다. 디자인의 중요성이 보편화되기 훨씬 이전에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어 이 분야를 개척한 이가 있다. 바로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만든 김현(59) 디자인파크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김 대표는 오는 1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디자인 40년전&디자인파크 25주년 기념전'을 연다. "한눈 팔지 않고 해온 지난 40년간의 작업들을 정리하고 싶었다"는 그를 미술관에서 만나봤다.
-40년전(展)을 여는 소감은 어떤지.
▶우리나라의 여러 분야가 그렇듯이 디자인 분야도 '기록'을 너무 소홀히 해온 것같다. '과거는 곧 미래'라는 말이 있듯이 어제의 결과가 오늘이고 오늘의 결과가 미래다. 따라서 과거의 기록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오늘 내가 서있는 자리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오늘의 자리가 불확실하다면 미래 역시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잘했건 못했건 이번 전시에는 지난 40년의 작업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호랑이 문화상품전도 함께 마련됐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나는 유난히 호랑이와 인연이 깊다. 인왕산에 사는 것도 그렇고 그 집에서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디자인했다. 서울시의 '왕범이'도 마찬가지다. 내년이 마침 호랑이 해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호랑이 이미지를 활용한 문화상품 제안전을 시도했다.
단군신화 때부터 등장하고, 민속문화나 속담에는 늘 호랑이가 등장한다. 우리민족에겐 친숙한 동물이다. 그래서 호랑이 형상을 앞으로 상품 개발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쓰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 문화상품전은 젠한국, 로만손 등 여러 유명 기업들과의 협업으로 시도했는데 좀더 수정, 보완해 완성도를 높이면 내국인은 물론 한국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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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덴티티 디자인 분야에 뛰어든 계기는.
▶CI 개념은 미국에서 비롯됐다. IBM, 웨스팅하우스 등이 1950년대에 CI의 중요성을 시작했다. 1970년대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에 뛰어들며 CI를 도입했다. 그걸 보면서 서울대 조영제 교수님이 1970년대에 연구소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첫번째로 공부했다. 이후에 1976년부터 84년까지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는데, 근무중에도 주말에는 CI연구실에서 교수님을 도와드렸다. 그러다 83년 말에 있었던 올림픽 마스코트 공모에서 '호돌이'가 채택이 됐다. 그걸 계기로 84년에 퇴사해서 디자인파크를 설립했다.

-디자인파크 설립 초기에는 CI가 보편화되지 않았다. 회사를 꾸려가며 애로사항은 없었는지.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 뭐든지 힘든 법이다. 지금은 컴퓨터가 발달해 작업 속도가 개선됐지만, 당시에는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했다. 1년 심지어 2년을 작업하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비용이 많이 들었고, 클라이언트측에서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컴퓨터로 하다보니 지금은 평균 6개월, 빠르면 3개월에도 끝낼 수 있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기업철학과 기업문화다. 기업이나 기관의 최고결정권자의 생각이 어디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거기서 시작한다. 하지만 최고결정권자가 구체적으로 개입을 많이 하면 작업이 망가질 수 있다. 예전에는 일일이 간섭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고객에게 물어보라며 소비자 조사를 많이 한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제일 좋은 것으로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인식이 많이 전환됐다.
-창작은 힘든 일이다.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개인적으로는 밤에 끙끙 앓기도 한다. 20년 이상 새벽에 등산을 하고 있는데, 산에 가서 거꾸로 매달리기도 한다. 개인 작품은 그러면서 소화하고 있다. 회사에서 할 때는 전직원이 매달린다. 샘표식품 CI를 만들 때는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 학생들이 참여했는데 두세달 동안 4500개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 중에서 줄이고 줄였다.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내부 직원들끼리 일할 때도 300∼500개 정도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최종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최근 들어 산업계에서 디자인이 강조되고 있다. 산업과 디자인의 관계를 어떻게 보나.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말은 식상할 만큼 일반화 됐다. '디자인서울', '국가브랜드' 등 모든 곳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넥타이는 1만원에, 이태리 브랜드가 20∼30만원에 팔린다. 하지만 원가 차이는 얼마 나지 않는다. 디자인과 이미지 값인 셈이다. 소비자로 하여금 멋있다고, 그래서 좋은 것 같다고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싸더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어떤 제품도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요즘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일찍 디자인을 시작한 죄로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이제는 정말 크고 멋진 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확실한 실력을 쌓는다면 더 좋은 기회가 많이 오리라 믿는다.
크고 넓고 깊게 생각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제 세계는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작아졌다. 우리 주변에만 맞추려 하지 말고, 전 세계인이 좋아하고 호감을 갖는 디자인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출발해야 한다. 또한 타 분야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다른 나라 디자이너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에 신경 써야 한다.

-산업계나 정부 등 기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삼성이든 LG든 외국에서 심벌을 만들었다. 그 심벌을 가지고 응용된 형태만 국내에서 제작했다. 다 맡기기에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CI 디자인 수준은 선진국에 뒤쳐지지 않는다. 비싼 달러 쓰지 않고도 훨씬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국내에서 제작한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정부나 여러 기관에서 디자인이나 브랜드를 많이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관련 행사도 많이 열린다. 하지만 후속 지원책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 문화상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행정이 필요하다. 값싼 제품 100개를 팔기보다는 제대로 좋은 제품을 하나 파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이는 우리나라 관광문화를 한 차원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