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향판의 죽음'.."판사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다"

'어느 향판의 죽음'.."판사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다"

류철호 기자, 김훈남
2010.08.03 16:56

우울증에 시달리다 지난달 31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대구지법 부장판사 오모(49)씨의 직업적인 애환과 고민이 담긴 글이 뒤늦게 발견됐다. 오 판사가 글을 올린 곳은 평소 다니던 대구 D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으로 그는 이 글에서 판사생활에 대한 회의와 고통을 호소했다.

'판사들의 애환과 직업병'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오 판사는 "판사, 물론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이고 세간의 농담으로 '의사는 부인과 자식들이 좋고, 검사는 친인척들이 좋으며, 판사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좋다'고 하는데 과연 애환이나 직업병이 없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판사는 생산적인 직업이 아니다. 막말로 얘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들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애환을 털어놨다.

또 "판사는 만능이 아니다. 모든 재판사건에 있어서 진실을 아는 사람은 판사가 아니라 당사자 본인이다. 자신이 가장 잘 알면서 왜 우리 판사들에게 판단해 달라고 조르는지 재판을 하다보면 참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든다"라고도 적었다.

오 판사는 "판사는 의심하는 직업"이라며 "의심과 마음의 저울이 사회생활에서, 대인관계에서, 가족관계에서도 드러나고 심지어 아내와 부모님 말마저 의심하게 하는 참으로 한심하고 끔찍한 직업병"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업무 부담에 대한 스트레스도 호소했다. 오 판사는 "다른 직역과 달리 판사는 올라가면 갈수록, 승진하면 할수록 업무량이 더 많아진다"고 애로를 털어놓은 뒤 대법관을 예로 들면서 "노안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대법관들은 밤 새워서 사건 기록과 씨름을 한다. 오직 명예 하나만을 드시기 위해 고된 정신적·육체적 노동을 감수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자녀들을 판사 시키겠나. 난 우리 아이들에게 판사가 되기를 강권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원하는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랄뿐이다"라고 쓴 뒤 "판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애로와 직업병을 겪기도 하지만 참으로 보람된 일도 많더라"며 글을 맺었다.

오 판사는 지난해 12월 이 글을 작성해 평소 마음을 의지해 온 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그 누구도 오 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이 다니던 교회의 한 관계자는 "오 판사는 매주 빠짐없이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나왔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며 "겉으로는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아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오 판사의 직접적인 자살 원인은 우울증으로 전해졌지만 최근 들어 건강이 악화된 것도 동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오 판사는 성대 결절 수술을 받은 뒤 건강상태가 악화돼 우울증에 시달려왔다.

특히 오 판사는 지난해 우울증 치료를 위해 1년간 휴직했다가 올해 복직한 이후 한 달 전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오 판사는 자살 직전 가족에게 유서를 남겼으며 유서에는 교회 게시판에 올린 글과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오 판사의 글을 보고 동변상련을 느꼈다"며 "아마도 판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직업적인 고민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 A씨는 "판사라는 직업적인 특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고민하다 판사직을 그만두는 사례를 주변에서 종종 접한다"며 "누군가의 죄를 판단하고 벌을 내리는데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건강 악화와 직업적인 스트레스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판사란 직업을 의식해서인지 평소 표나지 않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오 판사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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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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