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여중생을 납치·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김길태(33)가 항소심에서 감형받을 가능성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이 실시한 2차 정신감정에서 측두엽 간질을 앓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측두엽 간질은 불면증과 공포감, 환청을 느끼게 하는 발작 증세로 법정에서 형을 감경받을 수 있는 심신장애에 해당한다.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발작 중 행동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이유다. 실제 김길태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기억나지 않는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며 자신의 혐의를 한결같이 부인해왔다.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김길태가 발작을 일으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길태가 감형을 노리고 간교하게 속임수를 쓰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반면 길길태가 정말 자신의 범행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대다수 측두엽 간질 환자는 꾸준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김길태는 다른 범죄로 8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과거 의료 기록과 면담 결과로 볼 때 김길태는 정신분열증이 아닌 간질 환자인데도 이번 범행 전 수년 동안 간질약을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김길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한 우리 사회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정당국은 김길태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했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사회가 김길태를 방치했다고 해서 쉽게 감형하고 말 문제인가. 죄가 덜어질까.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범행 자체는 없어지지도, 달라지지도 않는다. 죄를 저지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김길태 자신이다.
무참히 폭행당하고 잔혹하게 살해당한 여중생이 있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김길태가 질병을 앓으면서 느꼈던 공포만 중요한가. 사건 당시 여중생 이모양이 느꼈을 공포감을 생각해보자.
김길태 문제는 심신장애를 앓고 있는 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느 선까지 처벌해야 하는가 하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이는 가십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화두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