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성폭력 피해 여성이 '재판 과정에서 판사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의 유족은 재판부에 판사의 모욕적인 언사에 대해 항의했다. 과연 판사가 피해 여성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했는지 여부가 큰 논란이 됐다.
재판부가 선고기일에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도 중요하지만 진실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법원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가족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크게 항의하면서 법정을 나갔다고 한다.
과거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 논란은 주로 수사절차에서 문제가 됐다. 예컨대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은 수술 2주 만에 배변 주머니를 단 채 수사기관에 힘들게 나와 4차례에 걸쳐 동일한 피해 내용을 반복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몇 년 전에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더 나아가 재판절차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을 위해 실체적 진실을 명확히 밝혀야 할 입장에도 있다.
피해자 신상에 관한 질문이 자칫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재판부가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생략할 수는 없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이거나 아동인 경우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반복적 질문에 의한 왜곡 가능성 등을 재판부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정들을 가지고 유족들을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피해자가 법정에서 비공개로 진술할 수 있도록 하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 시 신뢰관계 있는 자를 동석하게 하거나 비디오 등 중계 장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방법 또한 모두 형태를 달리할 뿐,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은 진행되기 때문에 여전히 위 사건과 유사한 사례는 발생할 수 있다.
독자들의 PICK!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사건 이후 해당 법원에서는 형사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이 모여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 개선 방안, 성폭력 피해자의 과거사를 묻지 않도록 한 선진국의 입법례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 제작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최근 법무부는 성폭력 피해자 중 13세 미만 미성년자나 장애인의 경우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수사 초기단계부터 국비로 법률 조력인을 선임할 수 있고 민·형사 절차를 망라해 포괄적으로 조력 받을 수 있도록 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동안 아동,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수위 강화, 성범죄자 신상공개, 전자장치 부착 등 처벌방법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면, 이제라도 그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고민의 외연은 그동안 논의됐던 수사절차에서의 문제뿐 아니라 재판절차에서의 문제까지 확대돼야 한다. 유관기관들의 앞서 본 노력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고무적이다. 앞으로 더욱 구체화된 제도로 정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