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해체 20주년]사례로 본 러시아 사업 '오해와 진실'

# 한국 A사는 러시아에 좋은 프로젝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업 진출을 결정하였다. 사업진행이나 행정절차 등 여러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현지의 유력인사인 고려인 B씨에게 현지법인 설립 및 운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권한을 위임 받은 B씨는 A사 대표가 러시아 사정에 어둡고 러시아어를 모르는 점을 악용하여 현지법인의 운영비 등을 개인적으로 착복하였다. 또한 B씨는 인·허가를 받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국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가로채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마침내 사무실을 포함한 회사재산까지 제3자에게 매각한 후 잠적해버렸다.
법률검토 결과, A사 대표는 고려인 B씨를 신뢰한 나머지 B씨가 제시하는 각종 위임장과 서류에 의심 없이 서명해 주었고 이를 이용하여 B씨는 회사 부동산까지 매각할 수 있었다.
무릇 기업을 운영하면서 뜻하지 않게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변호사로서 실무를 하다 보면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법적 분쟁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지 사정 및 법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 단지 가능성과 사업 수익성만 보고 진출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마주하는 주요 분쟁을 유형별로 보면 크게 정부기관과의 분쟁, 현지 파트너와의 분쟁, 직원 및 타 기업과의 분쟁으로 나눌 수 있다. 위 사례는 현지 사정에 어두운 한국 기업이 사업 진출 및 운영에서 현지 파트너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다.
이러한 '파트너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러시아·중앙아시아 현지의 법제도 및 법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현지법에 정통한 법률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회사 설립문서를 작성하는 경우에도 러시아·중앙아에서는 현지법에 규정된 정형화된 양식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서구에서 보편적인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문서를 작성할 경우 법에 의해 구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증을 필수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아도 당사자 요구에 의해 공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심의 의사가 어떻든 문서에 표시된 대로만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하는 표시주의적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위 사례의 경우 A사 대표는 자신의 위임 행위에 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항변할 수 있겠지만 위임장에 대한 서면 공증까지 해줬다면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렵다. 러시아어로 된 서류에 서명할 때에는 반드시 그 번역 공증본을 요구, 그 서류 내용을 분명히 파악한 후 서명을 해야 한다. 또한 한국 기업이 현지법인이나 지점을 설립하여 영리행위를 하든 대표사무소 등을 설치하든 인맥에 의존하기 보다는 적어도 현지법에서 요구하는 형식과 절차에 따라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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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아직 서구형 법치주의가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전의 비합리적인 관행이 많이 개선되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국제무역기구(WTO) 가입과 더불어 사회 전반에 걸친 투명성 지수가 더 상승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일정한 경우 법률에서 정한 사항이 행정적 수단에 의해 제한되기도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중앙아에 진출하면서 과거와 같이 인맥에만 의지해 법률에 정한 절차와 규정을 경시하면 장기적 측면에서 성공적인 사업을 영위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영옥 러시아변호사(법무법인 미르), 양용호 카자흐스탄 법무법인 AK 대표변호사 공동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