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해체·고립됐던 거인의 귀환..소련 부활?

러시아, 해체·고립됐던 거인의 귀환..소련 부활?

김성휘 기자
2011.12.26 03:23

[소련해체 20주년]10년 혼란 뒤 10년 성장..경제공동체 추진 박차

[편집자주] 세계최초 사회주의 국가이자 수십년 간 냉전질서를 떠받치던 소련이 1991년 12월 26일 무너졌다. 그로부터 20년, 러시아는 내부적으로는 총선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민주화 시위를 안은 채 밖으로는 옛 소련 구성국의 경제통합과 국제무역기구(WTO) 가입 등 강대국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1년 8월, 소련 보수파 쿠데타에 반대하며 저항을 촉구하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종이를 든 남자).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권력은 급격히 실추되고 옐친이 떠올랐다.
▲1991년 8월, 소련 보수파 쿠데타에 반대하며 저항을 촉구하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종이를 든 남자).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권력은 급격히 실추되고 옐친이 떠올랐다.

1991년 소련 해체와 동시에 총면적 2240만㎢, 인구 2억9300만명의 광대한 지역은 순식간에 거대한 자본주의 실험장으로 변모했다.

소련은 해체되기 전에도 이미 자본주의 요소를 일부 도입했다. 개혁을 통해 소련 체제를 유지하려던 젊은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87년 사유화와 영리 기업활동을 허용했다. 무엇보다 서구에 비해 뒤처진 소비재 및 서비스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계획경제의 생산에는 소비자들의 필요가 반영되지 않아 소련의 매장은 형편없는 상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투입액의 일정 비율을 수익으로 보장하던 탓에 소련 기업은 비용을 절감해 효율을 높이기보다 투입량을 늘리는 데 골몰했다.

고르바초프는 새로 시행된 경쟁이 정체된 소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만으로 이미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소련 경제를 회생시키기는 어려웠다.

자본주의 도입, 험난한 여정=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거대한 통제경제 시스템을 시장경제로 바꾸는 일이었다. 옐친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심지어 미국 재무부 등 서방에 조언을 구했고 이들의 답은 '충격요법'이었다. 경제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일시에 가격 자유화를 도입하는 것이 시장경제를 안착시키고 예산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가격 자유화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많은 대가를 요구했다. 가격통제 체제가 무너지면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급등했다.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마저 가치가 떨어지면서 초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소련 시절 연금을 꼬박꼬박 저축했던 국민들은 루블화 가치 절하로 전재산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자 망연자실했다.

구소련의 채무를 승계한 것도 러시아의 발목을 잡았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에 소련 계승국으로 등장하면서 소련 채무도 떠안았지만 러시아 인구는 옛 소련 전체의 절반에 그쳤다. 러시아 혼자 힘으로 그 모든 채무를 갚아나가기는 버거웠다. 근근이 버티던 러시아는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하면서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한 때 세계를 호령하던 유라시아의 거인은 깊은 겨울잠에 빠지는 듯 했다.

2000년대 '황금의 10년'= 정치 혼란과 경제적 고통으로 점철된 1990년대가 끝날 무렵 러시아는 변화를 맞았다. 옐친은 후계자로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을 깜짝 발탁, 총리서리로 앉혔다. 푸틴은 1999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뒤 2000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권력을 잡은 푸틴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경제 회생을 모색했다. 때마침 찾아온 세계적인 고유가 추세는 러시아에 막대한 오일달러를 안겨주며 경제회생의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2007년에 소련 말기인 1990년 수준을 초과하면서 소련 해체로 인한 긴 침체의 터널을 마침내 빠져나왔음을 알렸다. 푸틴이 대통령을 연임하는 동안 산업생산은 75%, 투자는 125% 증가했다.

경제가 살아나자 국제 위상도 높아졌다. 러시아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과 함께 '브릭스'로 불리며 향후 세계 경제를 이끌 주역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푸틴 진영이 2000년대를 '황금의 10년'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러시아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2009년 GDP가 전년비 8% 추락하면서 10년만에 리세션을 경험했다. 다만 세계 4위 수준의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비교적 건전한 재정, 여기에 자동차 보조금 등 시의적절한 경제정책은 위기의 파도를 막는 든든한 방파제가 됐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최근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러시아는 혼란기에 자국을 비웃던 서유럽에 훈수를 두는 입장이 됐다.

해체에서 통합으로, 푸틴 경제공동체 야심= 러시아 경제가 혼란기를 벗어나 궤도에 오르자 푸틴 정부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옛 소련 국가들을 유럽연합(EU)처럼 경제공동체로 묶어 유라시아연합(EAU)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소련 해체는 긴밀하게 상호의존하던 소련 구성 15개 공화국 경제의 분절을 초래했다. 1990년대 러시아가 겪은 경제적 어려움도 이와 무관치 않다. 비슷한 고통을 겪은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는 경제공동체 추진에 적극적이다.

이미 관세동맹을 맺고 있는 3국의 총리들은 지난 8월 2013년까지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창설하는 데 합의했다. 3국의 관세동맹은 내년 1월까지 `공동경제구역(CES)'으로 한 단계 발전한다. CES는 구소련 시절 인구의 60%인 1억6500만명을 포괄하는 단일시장이 된다.

이어 2013년엔 경제연합이 출범한다. 이 때 3개국 외에 잠재 회원국으로 간주되는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 합류하면 총 6개국에 인구 2억2300만명을 포괄하게 된다. 경제연합이 출범하면 소련 구성국들 사이에 높이 올라갔던 국경 장벽과 경제활동의 걸림돌이 상당 부분 허물어지고 자본과 상품, 서비스의 이동이 자유로워진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예정대로 내년 대선에서 집권할 경우 이르면 2015년, 늦어도 2017~2018년에는 경제공동체의 종착역인 EAU가 탄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푸틴은 EAU를 소련 부활로 바라보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EAU가 글로벌 위기에서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안전지대가 될 것이라며 경제적 강점을 강조하고 있다.

고립에서 연계로, WTO 가입= 러시아는 올해 18년에 걸친 협상 끝에 세계무역기구(WTO)에 15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그동안 러시아는 WTO 질서에서 배제되면서 관세 등 무역 확대에 많은 걸림돌을 안고 있었다. 러시아가 이런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WTO 가입은 교역을 확대시켜 러시아 경제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러 교역도 증가한다. 코트라에 따르면 한국의 대 러시아 수출은 올해 100억달러에서 2015년 20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향후 관세 인하에 따라 수출품목 다변화도 예상된다. 올들어 10월까지 18억 달러를 기록한 한국 기업들의 러시아 투자도 러시아의 행정절차 간소화에 힘입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는 6억5000만 달러를 현지에 투자한현대차(445,500원 ▼24,000 -5.11%)를 비롯해LG전자(105,600원 ▼2,700 -2.49%)(1억5000만 달러),KT&G(159,200원 ▲2,100 +1.34%)(1억6000만 달러),삼성전자(167,200원 ▼9,100 -5.16%)(1억 달러),롯데제과(27,300원 ▼1,350 -4.71%)(4000만 달러),오리온(23,000원 ▼450 -1.92%)(1억 달러) 등 주로 대기업이 제조업 분야에서 러시아에 투자했지만 앞으로는 의료기기, 정보기술(IT), 보험, 통신, 유통 등에서 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 거리에서 푸틴 총리 반대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인들.
▲모스크바 거리에서 푸틴 총리 반대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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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휘 국제부장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유니콘팩토리) 김성휘입니다. 국회/정당/청와대를 담당했고(정치부) 소비재기업(산업부), 미국 등 주요증시/지정학/국제질서 이슈를(국제부) 다뤘습니다. EU와 EC(유럽연합 집행위), 미국 워싱턴DC 싱크탱크 등을 경험했습니다. 벤처스타트업씬 전반, 엔젤투자, 기후테크 등 신기술 분야를 취재합니다. 모든 창업가, 기업가 여러분의 도전과 열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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