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끄라니…" 집집마다 폭염속 절전 '아우성'

"무조건 끄라니…" 집집마다 폭염속 절전 '아우성'

오승주 정영일 기자, 이창명 황보람
2013.08.12 14:12

[블랙아웃 비상'電爭']전기 아끼기 백태…'은행피서' 옛말 이제는 ATM이 대세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물빛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사진=뉴스1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물빛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사진=뉴스1

#1땀이 많은 박모씨(28)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부터는 여름이 고역이다. 퇴근해 에어컨이라도 한 번 켜려면 아버지와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것. 박씨는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블랙아웃에 대비해 그러시는 것 같다"고 한숨쉬었다. 아버지는 박씨가 샤워를 하는 틈을 타 여차없이 에어컨을 꺼버렸다.

#2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팀장 A씨는 지난달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공공기관으로 냉방기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사무실이 푹푹 찌는 상황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나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탈이 난 것이다. A씨는 결국 3시간가량 간호를 받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은 전기를 아끼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TV 리모컨에 이어 에어컨 리모컨 주도권을 놓고 가족 간의 실랑이가 다 벌어질 지경이다. 냉방온도 제한으로 은행과 마트 등 시원한 곳을 찾아 피서를 떠나는 모습은 이제 옛말이다. 좁지만 ATM에서 더위를 피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혼수로 산 에어컨 설치조차 안해…가족들 거실 모여서 자기도

서울 종로구에서 근무하는 한 회사원 이모씨(34)는 최근 경기도 기흥으로 이사를 가면서 일부러 에어컨을 설치를 하지 않았다. 설치비가 비싼 것도 있지만 전기세가 부담이라는 아내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이씨는 "혼수로 산 에어컨이었지만 결혼 2년만에 이사를 가며 아예 무용지물이 됐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회사원 C씨(32)는 요즘 네 가족이 모두 거실에 모여 함께 잠을 잔다. 열대야가 계속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가동하지만 전기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 방 방문을 닫고 거실에 모이는 것. 이씨는 "다른방까지 에어컨 냉기가 전해지려면 에어컨을 훨씬 오래켜둬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4인 가구 기준 월 평균 전력사용량은 337kWh, 전기요금은 5만7000원 수준이다. 여기에 15평형 에어컨(소비전력 1.5kWh)을 매일 1시간씩 사용하면 한 달 전기요금은 7만2000원, 3시간씩 사용하면 11만4000원, 5시간씩 사용하면 18만2000원이 된다.

전기요금 누진제에 따라 저압 기준 월 100kWh 미만의 전기를 사용한 가정에는 1kWh당 59.1원의 요금이 적용되지만 전기 사용량이 500kWh를 넘어서면 1kWh당 요금은 690.8원, 무려 11.7배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기본요금도 400원과 1만2600원으로 31.5배 차이난다.

◇한물 간 은행피서…이제는 ATM 피서가 대세

한때 유행했던 '은행 피서'는 이제 한물 갔다. 회사원 이모씨(34)는 "최근에 대출을 갈아타기 위해 은행에 갔다가 땀을 삐질삐질 흘렸던 적이 있다"며 "은행 피서는 이제 옛말"이라고 말했다.

KB은행 서울 한 지점에서 근무하는 B대리는 "요즘은 정부의 절전시책에 따라 실내온도 26도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며 "본사에서도 항상 감독하고 체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끔 고객들 가운데 덥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발생할 경우 일시적으로 바람을 세게 트는 척은 하지만 그렇다고 실내온도 자체를 바꿀 정도까지 강하게 가동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ATM(현금자동입출금기) 부스가 요즘 피서의 "대세"라는 말도 있다. 은행이 냉방 제한 온도를 둔 가운데 ATM 부스의 경우 상대적으로 면적이 좁아 시원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회사원 E모씨(28·여)는 "길가다도 참을 수 없이 더우면 ATM 으로 들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열대야 피해 야간산행·야간쇼핑도

최근 경상도로 휴가를 다녀온 회사원 D씨(40)는 경북 경주와 경남 울산의 경계선에 있는 동대산을 찾아갔다 깜짝 놀랐다. 밤마다 차량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와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것.

낮 최고 기온 38도를 웃돌며 연일 기록을 갱신중인 울산 시민들은 지난 11일 밤에도 해발 600m 지점의 동대산 정상 부근까지 차량을 몰고 올라와 무더위를 식혔다. 열대야를 피해 야간에 산으로 올라가 피서를 즐기는 것이다.

D씨는 "정상 부근 길가에 수백대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어 무슨 일인가 했다"며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밤에 올라온 뒤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무더위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는 밤이 되자 문전성시를 이뤘다. D씨는 "리조트 인근 대형마트를 오후10시쯤 찾았는데 문전성시를 이뤘다"며 "냉방온도 제한에 크게 시원한 느낌은 없었지만 쇼핑 겸 피서를 하려는 인파에 발디딜틈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전력거래소는 이날 오전 10시57분 전력예비력이 500만㎾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로 20분간 유지돼 전력수급경보 '준비' 단계를 발령했다. 오후 12시10분 현재 예비전력은 593만kW(전력예비율 8.3%)으로 안정된 상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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