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순찰활동, 범인 알아챘다면…", 피해자 가족 뒷이야기

서울 금호동 초등생 납치사건의 피해자 A양(8)의 어머니 B씨는 지금도 사건 당시만 생각하면 긴 한숨이 나온다. 경찰의 안이한 대응으로 딸에게 불상사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초동 대응 조치가 잘 돼 여학생을 극적으로 구했다는 경찰의 자화자찬과 달리 실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경찰의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비극을 경험할 뻔했다고 주장했다.
성탄절인 25일 오전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만난 어머니 B씨는 당시 딸이 납치됐던 긴박한 상황을 들려주며 경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B씨는 "경찰에 신고한 뒤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전화가 빗발쳤다"며 "다급한 상황에서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느라 너무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B씨가 아찔했던 순간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납치범은 경찰에 신고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B씨 역시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B씨의 집을 찾은 정수기 회사 서비스 직원이 납치사실을 알게 되고 신고까지 했다. 거기까지는 B씨도 이해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경찰의 대응이었다. 유괴 신고가 접수되자 순찰복을 입은 경찰이 경찰차로 A양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집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납치범이 아직 인근에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그랬다. 순찰복을 입은 경찰이 돌아다니면 사건을 신고했다는 것을 범인이 알아차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는 "납치 신고 후 순찰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순찰차량을 타고 계속 집 주변을 돌아다녔다"며 "하지만 당시 경찰관들은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B씨는 대놓고 순찰활동을 벌이는 경찰을 보고 강하게 철수를 요구했다.
B씨는 이에 대해 "납치범이 주변에 있을 수도 있는데 순찰차가 대놓고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B씨가 항의한 후에야 순찰복을 입은 경찰관들도 다시 사복을 입고 사건 현장에서 B씨와 함께 A양을 찾아 다녔다.
B씨의 간담이 서늘해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B씨는 신고 이후 아이의 위치추적을 경찰에 요청했다. 하지만 B씨와 통화한 경찰관은 경찰의 위치추적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119에 요청하라고 했고, B씨는 119에 전화를 걸어 위치추적을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B씨의 핸드폰으로 소방서에서 '긴급구조를 위해 119로 전화하신 고객님의 위치정보를 확인했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B씨가 확인해 보니 119 위치추적의 경우 위치추적을 당하는 핸드폰에 이 같은 문자메시지가 자동으로 통보 되지만 전송 실수로 A양 대신 B씨에게 보내졌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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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위치추적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추적에 들어감과 동시에 추적대상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며 "소방방재청에서 하는 위치 추적 자체가 인명구조 목적을 위한 것이라 가능하면 범죄수사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납치범이 딸의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통화를 해왔다는 사실을 아는 B씨는 곧바로 다시 위치추적 요청을 취소했다. 위치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A양의 핸드폰으로 전해졌다면 납치범을 자극해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서울의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통신수사 영장이 나오려면 빨라야 1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며 "119 위치추적의 경우 예전에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는 걸 본적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24일 오전 8시35분쯤 서울 성동구 한 초등학교 근처에서 A양을 납치하고 A양의 어머니 B씨에게 전화를 걸어 3000만원을 달라고 협박한 혐의(약취유인 등)로 조모씨(28)를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이날 오전 8시35분쯤 성동구 한 초등학교 주변에서 등굣길인 A양(8)을 자신의 차량에 태워 납치한 뒤 오전 10시부터 A양의 부모에게 4차례 전화해 3000만원을 보내라고 협박한 혐의다.
조씨는 A양을 차량에 태우고 A양의 집 주변인 금호동과 행당동 일대를 다니다 오후 12시 19분쯤 금호사거리에서 검문 중인 경찰에 적발돼 200m정도 도주하다 결국 검거됐다. 담당 경찰관은 검문 중 달아나려던 차량을 자신의 차량으로 부딪쳐 세워 조씨를 붙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경찰조사에서 "카드빚에 시달리다 A양을 납치하기로 했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