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수단 마을학교 100개 짓기 운동' 헌신해온 원선오 신부
"아프리카 기아문제 유일한 해결책은 농업교육…착취 멈추고 도와야"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With a pen and hoe a new Sudan!"(펜과 괭이가 새로운 수단을 만듭니다!)
'울지마 톤즈' 고 이태석 신부를 수단으로 이끈 스승, 원선오 신부(87·본명 빈첸시오 도나티)가 '남수단 마을학교 100개 짓기 사업'을 위해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와 20년을 함께 해 온 공민호 수사(75·본명 지아코모 고미노)도 함께 방한했다.
오랜 시간 비행에 지칠법도 한데 지난 26일 서울 신길동 한국살레시오회 관구관에서 만난 원 신부와 공 수사는 청년처럼 신이 나 있었다. "힘들었는데 한국에 오니 부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일 한국에 올 예정이었던 원 신부는 얼마전 말라리아에 걸려 몸상태가 안좋아 일정을 22일로 연기했다. 공 수사는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다.
우리 나이로 구순(九旬), 팔순(八旬)을 바라보는 파란 눈의 연로한 성직자들이 아픈 몸을 마다하고 한국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수단에 학교를 짓기 위해서다.
◇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에 농업 교육하고 의식 변화시켜야"
원선오 신부와 공민호 수사는 이번 방한에서 남수단 마을학교 짓기 사업을 도와준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한편 2015년까지 마을학교 100개가 완성될 수 있도록 전국의 성당을 돌며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호소할 예정이다.
원선오 신부는 2012년 5월 30년 만에 한국을 찾아 곳곳을 다니며 수단 마을학교 짓기 사업에의 동참을 호소했다. 현재 33개 학교가 완공돼 아이들이 배움의 길을 가고 있다. 공사 중인 학교도 18개나 된다. 피견 퀸 김연아, 톱 탤런트 김태희도 기부에 동참해 그녀들의 이름을 딴 학교도 이미 개교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기아로 굶어죽고 있는데 이것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농업 생산이다. 현지에서 농업 교육도 하고 농장도 만들고 생산도 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원 신부는 늘 강조하는 말을 다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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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11년만인 1956년에야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독립했다. 남수단은 2011년 7월 수단에서 분리 독립했지만 독립하기 전 40여 년 가까이 내전을 치러 모든 것이 파괴된 상태다. 경작을 할 땅은 광대하게 널려 있지만 경작을 할줄 몰라 항상 먹을 것이 부족하다.
그래서 원 신부는 학교를 지어 영어, 산수 등의 기초 교육과 함께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옥수수, 야채 , 밀 등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농사를 짓는 문화를 심어주려 한다.
학교는 또 교육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공간이라고 원 신부는 강조한다. "수단은 다른 부족의 지배권을 갖기 위해, 소 등을 약탈하기 위한 경제적 이유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이 늘 반복된다. 학교는 그런 다른 부족 간의 아이들이 한 곳에 모여 교류하고 부족 사이 공존을 배우는 기회를 통해 평화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곳이다."

◇ 남수단 학교짓기 사업은 '기적'
원선오 신부는 2011년부터 수단에서 학교 짓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내년 8월 16일 그가 속한 수도회인 살레시오회를 창립한 돈 보스코 성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00개의 수단 마을학교 목록을 봉헌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사업 초기 그와 공 수사의 고향인 이탈리아가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유럽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지금은 거의 한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원 신부가 20년간 머물며 가르쳤던 광주 살레시오중고등학교 제자들과 뜻있는 한국 인사들이 나서고 있다.
원 신부는 1961년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돼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20년을 이 땅의 청소년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광주 살레시오중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한국인들과 애환을 함께 해오다 한국 상황이 좋아지자 1981년 더 가난한 젊은이들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났다. 1994년부터 수단에 머물고 있다.
돈이 있다고 수단에 학교를 쉽게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단은 정부나 다른 NGO단체들이 학교를 지을 엄두를 못내고 있다. 정세가 불안하고 건축자재는 모두 수입해야 하는데다 자재를 옮길 도로 등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구한 건축업자는 돈을 떼먹고 달아나기 일쑤다. 우리 정부도 수단에 고 이태석 신부를 기념한 병원을 짓기 위해 9000만달러를 투자하려 했지만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남수단 학교짓기 사업은 20년 넘게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호흡한 원 신부와 공 수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년을 수단에서 함께 산 원 신부와 공 수사는 서로를 두뇌와 심장같은 사이라고 얘기했다. 원 신부의 아이디어를 공 수사가 실현시킨다.
원 신부가 짓는 학교는 2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남수단의 학령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하지만 교실 4개 규모인 한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은 약 200~250명. 33개 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니 전체 학령기의 0.3% 수준인 6000~7000명의 아이들만이 배움을 누리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반까지 수업을 한다.
교육 전통이 없는 남수단에는 가르칠 선생님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 각 학교당 4명의 선생님이 지역에서 배치돼 최소한의 급여를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초등학교를 마친 정도 수준의 선생님들도 많다.
하지만 완공된 33개 학교와 공사 중인 18개 학교를 합치면 벌써 남수단 마을학교 100개 짓기 사업을 시작한지 2년여 만에 목표의 절반 이상이 달성됐다. 한 학교를 짓는데 걸리는 기간은 약 3개월. 기적같은 일이다.
원 신부는 "프로젝트를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회의 어른들이 허황되고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학교짓기 사업 허가를 해주지 않아 허가를 받아내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마을학교는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수단 정부에 기증된다.

◇ "교역 기업들이 학교 짓기 사업하면 아프리카 미래는 달라질 것"
이제 남은 일은 마을학교 100개 짓기 목표를 채워야 할 나머지 49개 학교를 지을 자금을 구하는 일이다. 한 학교를 짓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7000만원~1억원 정도. 한국에 머무는 동안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모금 활동도 할 계획이다.
광주 살레시오중고등학교에서 20년간 근무한 그에게 한국은 '집'과 같은 곳이다. 제자 중엔 한국 사회 지도층 인사도 많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제자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공민호 수사가 "이정현 의원이 지난 방한 때 학교짓기 사업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며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살레시오고등학교 제자였던 윤장현 광주광역시 시장과의 만남도 예정돼 있다.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천주교 신자 기업인 박용만 두산그룹회장도 만나보고 싶은 은인이다.
원 신부는 아프리카와 교류하는 기업들이 적극 나서주면 아프리카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와 수·출입을 통해 교류하는 500개의 큰 서방 회사들이 회사마다 아프리카에 학교 100개 짓기 사업을 펼친다면 아프리카의 미래는 확 달라질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기아로 굶어죽고 있는데 이것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농업 교육과 생산이다."
그는 유럽이나 선진국이 예전처럼 아프리카 사람을 노예로 잡아가지는 않지만 현대에 들어 자원을 착취하며 노예상태를 지속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핸드폰을 만들기 위해 제일 중요한 광석 콜탄이 아프리카에서만 나오는데 콜탄을 사갈 때 헐값에 사가고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는 다른 4개 대륙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착취당하고 있다"는 한탄이다.
또 "전 세계 5개 대륙중 4개 대륙은 발전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아프리카 대륙만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4개의 형제자매 대륙이 아프리카를 도와 발전의 방향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아프리카는 대도시에는 큰 빌딩이 있지만 뒤편으로 가면 국민들은 굶어죽고 있는 상황이다"고 안타까와 했다.
내년 8월 남수단 마을학교 100개 짓기 목표 달성이 가능할까. 원 신부는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미소지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2년반 정도 지났는데 절반을 이뤘다. 하다 보니 인간의 지혜나 욕심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가 도와주고 있다고 늘 느낀다. 어려운 순간마다 돌파구가 마련되고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원 신부와 공수사는 약 한달간 한국에 머무르며 전국의 성당을 찾아 마을학교 짓기 사업 모금 활동을 한 뒤 각각 11월 3일, 10월 30일 다시 남수단으로 돌아간다.
두 어르신 모두 고향인 이탈리아에는 갈 생각이 없다. 한국 방문을 다시 기약하지도 않았다. "병원에 갈 필요는 없고 하느님이 부르실 때까지 이 일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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