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리포트]"경영판단 잘못했지만 배임은 아니다"…배임죄 논란 재점화
◇ 더엘(the L) / "무능은 죄가 아니다?"◇

수조원대 금융비리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확정받아 복역 중인 김양 전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이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됐지만, 지난 19일 무죄 선고를 받았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지난 15일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형이 결정됐지만,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앞서 11일에는 국고 5500억원의 손실을 끼쳐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배임죄 관련 소송에서 잇따른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법안 자체가 기준이 모호해 재판관에 따라 양형이 제각각이라는 지적이다. 또 경영자의 판단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적인 손실만으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배임죄는 기업 경영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단골 죄목이다. 집행유예나 무죄 판결을 받는 사례가 많아 '무전유죄 유전무죄' 논란을 부르는 죄목이기도 한다.
◇법원 "고의성 없으면 무죄" vs 검찰 "방만경영 수천억 손실 책임져야"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대신 처리하는 자가 불법적 방법으로 이득을 취해 타인이 손해를 봤을 때' 해당된다. 기업주나 경영자가 회사돈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투자를 하다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문제는 배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법원 판결은 배임의 동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업이 손실을 본 것은 분명하지만, 부정한 이유가 있었는지, 손해가 날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잘못된 결정을 했는지, 이로인해 개인적으로 어떤 이익을 남겼는지 등을 따져 결론을 내렸다. 결국 잘못된 결정으로 손해는 났지만, 일부러 손실을 내고 개인적 이득을 취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같은 법원 판결에 검찰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법원이 배임죄 적용을 너무 까다롭게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김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공중으로 날아간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은 누가 책임을 지느냐"며 "경영평가 점수 잘 받으려고 나랏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사후에는 경영판단이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면 제멋대로 경영해도 된다는 말이냐"며 유례없이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이 손실이라는 결과만 보고 무리하게 기소를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실패라는 결과를 놓고 배임을 묻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 행위는 항상 리스크는 떠안는 행위"라며 "회사이익을 위해 경영판단을 했다면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위직일수록 금액 클수록 집행유예"…무전유죄 유전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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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무죄 판결이 나오는 와중에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고위직이거나 범죄 금액이 높을수록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는 보고서까지 나와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검찰청의 '횡령·배임 범죄에 관한 양형 기준의 적용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피고인이 고위직일수록, 횡령·배임 액수가 높을수록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비율이 높았다. 보고서는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동안 선고된 횡령·배임 범죄 중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1994건을 분석했다.
지배주주나 대표이사 등 최고위직은 72.6%가 집행유예, 27.4%가 실형을 선고받은 반면, 하위직은 52%가 집행유예, 48%가 실형을 선고 받았다. 집행유예 비율이 20.6%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보고서는 자영업자 등 일반인의 집행유예 비율(63.2%)을 감안하면 "최고 고위직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처벌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또 같은 기간 선고형량이 36개월 이하인 사건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횡령·배임죄 이득액 300억원 이상 죄를 지은 피고인 전원(11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반면 1억원 미만의 피고인은 64%만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 결과만으로 재판부가 고위층에 관대한 판결을 내놨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봤다. 이상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마다 다른 상황이 있기때문에 단순히 통계를 내서 단정지을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또 한 횡령·배임 사건 전담 변호사는 "사건마다 경영상 특수성이 있어 양형기준을 정하는 것 조차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통계를 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또는 고위직과 하위직 별 형량 차이가 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배임의 기준이 모호하기때문에 재판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최고위직과 대기업일수록 무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 여지는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로펌의 중견 변호사는 "배임 사건은 산업·회계금융 등 분야별로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얼마만큼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수 있는 여지가 크다"며 "대형 로펌을 통해 수십명의 변호사가 변론을 준비할 수 있는 대기업 오너들과 일반인들의 판결이 같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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