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리포트][현재진행형 역사논란]① 진상규명위 조사에도 역사적 해석-희생자 결정 두고 공방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인수씨 등이 지난달 29일 "제주 4·3평화기념관의 전시를 금지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들은 기념관의 전시 내용이 왜곡된 사실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는 2000년 특별법을 도입하고 위원회를 구성해 4·3사건의 진상과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에 들어갔지만,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인명피해 최대 3만명으로 추정…"냉전 최대 희생지"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 벌어진 소요사태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1절 28주년을 맞은 제주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가두시위에서 폭력시위를 의심한 경찰이 쏜 총알에 주민 6명이 숨지며 발단이 됐다. 무력 충돌은 1954년 9월까지 이어졌다.
이후 희생자와 유족들의 요청으로 2000년 4월13일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됐다.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진상규명위)는 2014년 5월까지 총 1만4231명을 희생자로 결정했다. 사망자 1만245명, 행방불명자 3578명, 후유증으로 장애를 겪는 163명, 수감됐던 245명이다. 유족은 5만9000여명에 이른다. 진상규명위는 신고되지 않거나 미확인된 피해까지 더하면 인명피해가 최대 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희생자들 중 사망자들을 제주 봉개동 4·3 평화공원에 안치하는 한편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의료지원금을 지급했다.
진상규명위는 4·3사건에 대해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긴장 상황이 있었고, 외지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서청에 의한 검거선풍과 테러,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다"며 "남로당 제주도당이 제주사회의 긴장상황을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아울러 "법을 지켜야 할 국가공권력이 법을 어기며 민간인들을 살상하기도 했다"며 "토벌대가 재판 없이 비무장 민간인들, 특히 어린이와 노인까지 살해한 것은 중대한 인권유린이며 과오"라고 판단했다. 다만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군·경을 비롯해 선거관리요원과 경찰 가족 등을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라고 지적했다.
특히 진상규명위는 "결론적으로 제주는 냉전의 최대 희생지였다고 판단된다"며 "바로 이 점이 4·3사건의 진상규명을 50년 동안 억제해온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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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승만 정권, 의도적으로 양민학살' 증거 없어"
이씨는 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두고 언론사와 법적 분쟁을 벌였다. 한겨레신문이 1997년 4월1일 이승만 정권과 4·3사건을 다룬 기사를 내자 이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한겨레의 당시 기사는 '이승만정권-미군정 합작 최소 2만명 무차별 학살'이라는 제목 아래 '제주 4·3항쟁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휘 아래 불법적으로 공포된 계엄령을 근거로 무차별 살상과 함께 진압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울러 '제주도에서는 당시 군경토벌작전 과정에서 최소 2만명에서 최대 8만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토벌대는 중간산마을 초토화작전을 전개하며 팔순 노인부터 서너살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법원 2부(당시 주심 이강국 대법관)는 2001년 1월 한겨레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보고 이씨의 정정보도 청구를 일부 받아들인 원심을 확정했다. 기사는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이 의도적으로 제주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취지인데,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한겨레는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을 담은 기사를 보도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회적 평가와 유족인 이씨에 대한 사회적 평가 등을 침해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승만 정권이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인 1948년 11월17일 계엄을 선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며 정정보도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행정소송 이어 민사소송도 1심 패소…확정 판결 아직도 갈길 멀어
진상규명위가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4·3사건과 그 희생자에 대해 어떻게 규정할지를 둘러싼 법정 공방은 이어지고 있다.
이씨와 4·3사건 진압에 참가한 군인 등 일부 공산주의 무장병력 지휘관이 희생자로 지정됐다며 진상규명위의 결정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이씨 등은 "진상규명위가 인정한 희생자 일부는 공산 무장병력의 지휘관이나 중간 간부로, 희생자 명단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이승한)는 지난해 11월 이씨 등의 주장에 대해 따로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민사·행정소송이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그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소송을 종료하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이씨 등이 진상규명위가 희생자를 결정한 처분의 대상이 아니었던 만큼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고, 이를 무시하고 제기한 소송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희생자 일부가 무장병력 지휘관 또는 중간 간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따로 심리하지 않았다.
이씨는 또 당시 진압군 후손 등과 함께 "제주 4·3평화기념관의 전시를 금지하고 명예훼손으로 인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민사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지영난)는 29일 "평화기념관의 전시물들이 역사적 내용을 왜곡하거나 은폐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씨 등은 제주 4·3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출범 자체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거부하며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하며 전시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각각 1심 결과가 나왔지만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이씨 등은 행정소송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을 접수한 서울고법은 오는 3월4일 첫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사건이 대법원까지 갈 경우 심리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이날 판결이 선고된 민사소송도 상급심 판단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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