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한변협, 변호사 2만명 대표할 자격 있나

[기자수첩]대한변협, 변호사 2만명 대표할 자격 있나

한정수 기자
2016.03.01 03:50

최근 여야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을 두고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발생하는 모양새다. 모든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라 할 수 있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이 법안에 '전부 찬성'이라는 의견을 내면서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변협이 사실상 정치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들끓었다. 변협이 수차례 강조해 온 '인권 옹호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일부 변호사들은 테러방지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내용뿐 아니라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변협은 회장과 법제이사 등 일부 집행부가 모여 협의한 후 이번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소속 변호사들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사실도 구성원들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일부 변호사들이 집행부의 공개 사과와 퇴진까지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테러방지법은 테러 방지를 위한 국가정보원의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테러 위협을 막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 수단이 적절한지를 두고 사회 전반의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이 법의 통과를 막기 위해 며칠째 밤을 새워가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깊은 고민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에 변협은 일방적으로 전부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다. 문제가 불거진 직후 변협은 "법률안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을 하면서 필요한 경우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며 "새누리당의 요청을 받고 의견서를 작성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정치적 입장을 보인 게 아니라 단지 법률안에 대해 의견을 낸 것뿐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은 법안이다. 어떻게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찬성 의견을 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변협은 변호사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등록 변호사 수가 2만여명인 단체다. 당연히 집행부 소수의 의견으로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

논란이 불거지고 며칠 뒤, 하창우 회장은 변협 정기총회에서 "테러방지법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회원들의 중지를 모으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다소 늦은 사과지만 변협이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반길 일이다.

사법연수원 44기 변호사들은 이번 문제에 대해 성명서를 내고 "변호사 개인은 작은 존재지만, 그 합으로서의 변호사단체는 우리 사회의 정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집단"이라고 밝혔다. 변협이 이같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앞으로는 변협이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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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수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법조팀장 한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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