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전 오늘... 탑골 공원에서 외친 "대한 독립 만세"

97년 전 오늘... 탑골 공원에서 외친 "대한 독립 만세"

진경진 기자
2016.03.01 04:45

[역사 속 오늘]1919년 3월1일, 일제 강점기 중 최대 민족 운동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서울 종로 탑골공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젊은 학생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초조해 보이는데 그 사람은 도무지 나타나질 않는다.

그 때 학생들 중 한 명이 연단 위로 올라간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 하노라."

연단 위 학생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나머지 학생들이 태극기와 함께 준비된 기미독립선언서를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이를 받아든 누군가 "대한 독립 만세"라는 말을 나지막이 입밖으로 꺼냈고,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든 이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큰 소리로 외쳤다. 1919년 3월1일. 일제 강점기 35년간 벌어진 민족 독립 운동 중 가장 규모가 컸던 만세 시위가 시작됐다.

3·1운동은 사실 그 해 2월 8일 동경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본 유학생인 이광수, 최팔용, 김도연, 송계백 등은 일본의 심장부인 동경 YMCA 회관에서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다. 2·8 독립선언이다.

국내 독립운동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독립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열강들은 약소 민족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방시켜 주자는 의지를 보였다. 러시아 레닌은 제국주의에 핍박받는 약소민족을 지원해주겠다고 했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도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다. 독립운동가들은 '평화적 만세 시위'가 독립을 향한 민족의 열망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여기에 고종황제의 갑작스런 죽음은 일본을 향한 저항 심리에 불을 붙였다. 일본이 우리 황제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난 10년 간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 인한 국민 감정이 폭발 상태까지 간 것이다.

당시 일본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폭력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통치를 실시했는데 이 때문에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을 학살되거나 투옥됐고 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생활은 크게 악화됐다.

결국 민족대표 33인을 중심으로 3·1 운동 준비가 진행됐다. 육당 최남선과 만해 한용운은 기미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태극기와 함께 인쇄했다. 장소는 탑골공원이었다. 이들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 학생들은 태극기와 기미독립선언서를 나눠주는 식으로 평화적 만세 시위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3월1일 당일이 되자 민족 대표들은 발길을 돌렸다. 탑골공원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자 자칫 폭력 투쟁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를 알 수 없던 학생들은 어른들을 기다리다 스스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게 됐다.

평화적인 만세 시위였지만 일본은 이들을 평화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헌병 경찰들은 칼과 총으로 무자비하게 시민들을 살상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중소도시에서 전국으로 퍼졌고 만주, 연해주 일본 미주 등 전세계적으로 뻗어 나갔다.

3·1 운동이 독립으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결실은 있었다. 폭력적이던 일제 통치 방식은 문화통치로 바뀌어 그나마 우리 민족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우리 민족은 독립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돼 국외내적으로 적극적인 독립 운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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