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리포트][대체분쟁해결제도, 중재]② 국제중재 유치…"인프라·마케팅·사법신뢰 필요"

소송 이외의 분쟁해결 수단으로 중재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재산업의 추가도약을 위한 모습은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다. 중재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내용의 법률은 당국간 입장차이로 심의가 지연되고 있다. 실제 중재를 주로 활용하는 주체인 기업에서도 국내중재에 대한 다소 의구심이 남아있는 모습이다.
중재는 소송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데다 국제협약으로 인한 집행강제력이 보장되고 비밀유지 가능성도 높다는 점으로 인해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중재가 단순히 분쟁해결 수단으로서의 의미만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난해 8월 법무부가 서울국제중재센터를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중재사건 1건당 경제효과는 중재센터 이용료, 중재인보수, 사건관계자의 교통·숙박·식사 등 지출 등으로 2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부는 현재 대한상사중재원의 연간 국제중재 유치건수가 70건 정도인데 이를 싱가포르 수준(약 230건)으로만 끌어올려도 5750억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 정보교류를 통한 간접적 산업발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중재유치 증가의 효과로 기대된다.
이같은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당국이 관련법을 내놨으나 당국간 입장차이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다. 17일 국회 등에 따르면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26일 1차 법안심사소위에서 법무부가 제출한 '중재산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중재산업진흥법) 제정안에 대한 심사를 벌였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회의를 중단했다.
지난해 11월 법무부가 제출한 총 10개 조항의 중재산업 진흥법 제정안은 법무부가 5년마다 중재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토록 하고 분쟁해결시설의 설치, 중재전문인력 양성 및 양성기관 감독 등을 법무부 주관으로 추진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법무부가 중재기관 업무감독을 하는 것이 객관성 확보 측면에서 적절치 않다"는 법원의 반대의견 제기로 불거졌다. 국가가 당사자로 나서는 여러 분쟁에서 당사자로 나서는 법무부가 중재기구 육성과 운영·감독을 맡는 것이 중재의 중립성 측면에서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진정한 중재선진화와 국내 중재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 육성을 해야 한다는 기본방침, 대원칙에는 찬성하나 법무부가 주관부처로서 감독하는 듯한 외관은 제거해야 된다"고 밝혔다.
법무부 측에서는 이창재 차관이 "적극 지원하고 육성하려는 의사가 있을 뿐 지휘·감독·개입할 의사는 전혀 없다"며 "민법상 사단법인에 대해 항상 허가를 받도록 일반적인 게 있고 소관 유관기관이 법무부라고 해서 법무부가 지배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국민사법학회, 형사법학회 등을 법무부가 허가하고 있으나 지배하는 게 아니라는 게 법무부 측의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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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임 차장은 "민법상 조문과 법무부 규칙에는 법무부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감독에 관한 규칙이 있다"며 "법인의 설립허가, 취소, 정관허가, 법인 활동 및 재산상황에 대한 검사·감독, 임원 승인신청, 차기년도 사업계획 및 수입·지출예산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며 법무부가 중재기구의 관할시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재차 반박했다.
또 "법무부가 이 법안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대한상사재원을 이관받겠다는 것"이라며 "잠재적으로 중재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법무부가 당사자로서 중재기구를 감독한다는 외관은 불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법원과 법무부간의 이간은 입장차이는 대한상사중재원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가져갈 것이냐를 둔 다툼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한상사중재원은 형식상 산업부 산하기관으로 돼 있으나 상사중재원의 국내중재규칙, 국제중재규칙은 대법원이 승인하도록 돼 있다. 법무부가 중재산업 주무기관이 될 경우 법원의 통제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결과 중재산업진흥법은 19대 국회에서 만료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중재대상 사안의 범위를 확대해 중재의 활용도를 높이고 △중재판정 승인·집행을 판결절차에서 (필요적 변론을 요하지 않는) 결정절차로 변경해 중재판정의 신속성을 확보하는 등 내용을 담은 중재법 개정안은 지난달 법사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중재법 개정안은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일괄처리 방식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규정제정에 앞서 실제 얼마나 많은 국내외 기업이 국내 중재기관을 활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상사거래 등 국내외 계약관계에서 계약서 작성당시부터 분쟁발생시 관할기관을 정해두곤 한다. 이 경우 협상력이 우월한 입장에 있는 당사자가 자국의 법원이나 자국내 중재기관을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협상력이 비등한 경우에는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3국 소재의 법원·중재기관을 분쟁해결기관으로 지정하기도 한다. 해운, 조선 등 해당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분쟁해결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업종의 경우에는 해당전문기관을 중재기관으로 주로 택한다.
문제는 이같은 전문성이나 협상력 차이가 관건이 아닌 사안이더라도 국내기관이 분쟁해결기관으로 선택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사중재원 측은 △해당업종이나 개별기업의 기존 표준계약서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당사자 명의만 바꿔쓰는 과정에서 3국의 중재기관이 선택되는 경우 △국내기업간 거래라더라도 해외에서 거래나 영업이 진행될 때 해당지역의 판단을 구해야 할 경우 △대한상사중재원의 상대적 인지도 부족 등을 이유로 꼽는다.
대한상사중재원은 이미 올해 상하이, 두바이, 아부다비 등에서 현지기업이나 한국기업의 현지지사 등을 대상으로 중재유치 설명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일본 도쿄, 베트남 하노이·호치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지에서 잇따라 설명회를 연다는 방침이다. 또 해외 유명 중재인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풀(Pool)에 포함시키고 국제중재 트렌드에 맞도록 규칙을 업데이트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최근 중재법 개정안의 법사위 통과로 제도적 측면에서 발전적 중재법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다"면서도 "그런데도 우리가 국제중재 유치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결국은 홍보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외국에서는 싱가포르의 사법시스템이 투명하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데 비해 한국은 후진국 수준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법원도 중재에 대해 친화적이고 중재절차를 존중해주는 등 입법이 잘 돼 있음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국내 사법시스템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제도 측면에서 한국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음에도 굳이 국내법인 당사자들이 외국을 택하는 경우는 바깥에 나가야 학연·지연 등 인맥요소로 인한 판정 중립성 훼손가능성이 적을 것이라는 인식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불합리한 요인이 중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불신이 국내기관을 떠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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