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국민의 생명]④"가해자에겐 처벌을 피해자에겐 보상을"

[법+국민의 생명]④"가해자에겐 처벌을 피해자에겐 보상을"

박보희 기자
2016.07.06 09:39

[the L리포트]징벌적 손해보상제도 "법 위반 억제…처벌과 예방 효과"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회원 등이 소비자집단소송법과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회원 등이 소비자집단소송법과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옥시레킷벤키저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피해를 본 한국 소비자들은 영국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에서 소송을 해 이기더라도 납득할 만한 보상을 받고 기업에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존슨앤존슨사가 자사 제품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에게 약 627억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영국과 미국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 포괄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유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포괄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왜 우리는 아직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지 못했을까.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과 국회 입법조사처는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국민의 생명·신체 보호 적정화를 위한 민사적 해결 방안의 개선' 심포지엄을 열었다.

"법위반 억제 효과…손해액 10배까지 징벌 기준 높여야"

이번 심포지엄의 제4주제인 '제조물 책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방안'에 대한 발제를 맡은 김차동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법 위반 행위를 억제할 수 있고 소비자의 피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라며 "중대한 과실로 심대한 결과를 초래한 사건에 적절한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로 손해를 배상할 때 일정한 가중 사유가 있는 경우 피해자에게 피해자가 입은 실제 손해보다 더 많이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가해자 처벌 효과 △법위반 비용을 높여 위법 행위 억지 효과 △가중 사유가 있는 경우 피해자에게 충분한 피해 보상을 해주고 소액·다수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소송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효과 등을 목적으로 한다.

이정임 동아대 로스쿨 교수는 "현행 손해배상제도가 피해 구제도 못하고 악의적인 불법행위도 구제하지 못하고 있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민형사상 책임과 이중처벌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으나 이는 다 해결이 됐다"며 "남은 문제는 개별 입법으로 도입할 지, 민법에 일반 규정을 둘 것인지 여부인데 민법상 불법행위법의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시도할 때"라고 주장했다.

현재 '하도급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은 3배 이내의 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종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해당한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개별적으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법을 만들다보니 짜깁기 식으로 만들어져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고 있다"며 "내용도 제각각이고 옥시 가습기 같이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불법행위를 억제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또 사업자 뿐 아니라 경영진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3배 내에서 법원이 재량으로 배상액을 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익이 크면 불법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며 "영리 추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법을 위반한 경우 손해액의 3배 이상에서 10배까지 배상액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당이득은 232억원 벌금은 7억원?…'예방법' 고민해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논의에서 '피해의 보상'도 중요하지만 '예방'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지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어떻게 제대로 배상을 받을까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야 다시는 (기업이 불법을 저질러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공익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소비자들은 소송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강하다"며 "법정 공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간사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개인정보유출 관련 소비자 집단 소송을 시작했지만, 아직 진행 중이다.

박 간사는 "해당 기업의 경우 2008년, 2012년에도 고객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있었고 처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안을 강화하고 안전장치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부족했다"며 "하지만 법정에서는 고의성은 없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제도를 도입할 때 알고도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한정할 것인지, 중대 과실에 따른 피해도 포함해서 피해자들이 정당하게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까지 도입하면 과잉 규제와 이중처벌의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주장인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박 간사는 "홈플러스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관계자들은 소비자 동의도 없이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팔았음에도 과징금이 4억원에 형사 무죄 판결을 받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얻은 부당 이득은 232억원인데 현재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서 위자료가 1인당 10만원 정도에 그치고 소송을 제기한 인원이 3000여명이 불과하다"며 "기업이 부당 이득의 4%도 안되는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불법행위를 멈추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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