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4389명의 주요 친일 행각 기록한 '친일인명사전' 발간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 이를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저지하려는 세력들이 공공연하게 탄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감추고 싶고 지우고 싶어도, 덮어서도 잊어서도 안되는 것이 역사라는 사실. 이것이 인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2009년 11월8일 김병상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기념사 중)
2009년 11월8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선생 묘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가 열렸다. 보고대회는 당초 인근의 숙명아트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보수단체와의 충돌을 이유로 대관 계약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불가피하게 김구 선생 묘소 앞에서 열리게 됐다.
이날 갑작스런 장소 변경은 어쩌면 예견된 시련이었다.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 전쟁에 협력한 인물들을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은 발간 전 작업 준비단계부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외환위기 여파(1997년)로 민족문화연구소 후원 회원이 줄어 재정상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2003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일제단체인물연구' 예산 5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사전 발간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
국가는 외면했지만 제2의 독립군인 시민들이 나섰다. 당시 한 누리꾼은 인터넷 게시판에 "예산 부족으로 사전 발간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약 10일 만에 5억원의 성금이 모였고 총 7억여원에 가까운 편찬기금이 조성됐다. 여기에 연구소 회원 5000여명이 낸 월회비와 전국에서 보낸 일제시대 공문서·서적·유물 등은 사전 발간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사전 발간 직전에는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유족들의 이의 신청과 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 등이 이어지면서 발행이 연기됐다. 일부 유족들은 사전에서 이름을 빼달라며 로비를 벌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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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편찬 작업에 참여한 150여명의 각분야 교수와 학자, 180여명의 집필위원, 문헌자료 담당 연구자 80여명은 8년간 꿋꿋이 3000여종의 문헌 자료를 수집·분석했다.
2만5000여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심의 작업을 거친 결과, 총 3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4389명의 주요 친일 행각과 광복 이후 행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자발성과 적극성이 주요 평가 대상이었다.
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면 전 국무총리, 언론인 장지연,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 등이 포함됐다. 독립유공자로 지정됐던 인물 20명도 포함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일본군 장교를 육성하는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청원했다는 1930년대 신문자료를 토대로 사전에 수록됐다. 1939년 3월31일 '만주신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했지만 연령 초과로 1차 탈락했다. 하지만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충성 맹세와 혈서를 제출하고 입학, 졸업한 후 일본군 소위와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아버지 이름 게재와 사전 배포를 금지해달라며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장면 전 국무총리는 천주교 신자로 매월 첫째 주를 애국주일로 정해 무운장구기원미사제를 지냈고 미사 후에는 단체로 신사참배를 갖는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직을 맡았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14~1918년까지 조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700여 편의 글을 싣는 등의 친일행적이 드러났다.
무용가 최승희는 1937~1944년까지 무용공연 수익금 일부를 국방헌금·황군위문금 등으로 헌납한 것이 알려졌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1938년 일본 왕 즉위식 때 사용되던 일본의 관현악 에텐라쿠를 차용해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에텐라쿠'를 발표,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기념식에선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기념음악회를 지휘했다.
총 3권의 친일인명사전은 권당 10만원의 고가였지만 2014년 기준 7000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해외 친일 행각을 중심으로 연구 중이며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 개정판을 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