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복여행가 이예나씨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4380원짜리.
그는 4년전 자신을 그렇게 여겼다. 알바 시급이었다. 친구와 밥 사먹을 때도 '아,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일하면 4380원 벌 수 있는데' 했다. 악착같이 벌어 쌓이는 건 '돈'이 아니라 '미래'라고 생각했다. '한복여행가'로 알려진 이예나씨(27) 얘기다.
이씨가 한복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5년 동안 사물놀이 배우며 한복 입을 기회가 많았다. 한복과 가깝게 지냈지만 평상복으로 입을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알바 인생' 한복여행자 되기까지
대학 3년은 '알바 인생'이었다. 전단지 돌리기, 여론조사, 제품 판매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았지만 발전은커녕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7학기 마치고 2013년 8월,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미 대학생 취업연수 프로그램(WEST)에 참가한 것이다.
"어느 날 미국인 친구와 대화하던 도중 한복 얘기가 나왔어요. 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별한 날이나 명절에만 한복을 입는다'고 하자 친구가 묻더라고요. '예나, 너 한복 좋아한다며? 그럼 네가 입으면 되잖아'. 그 말에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었어요."
2015년 2월, 1년반 취업연수 프로그램을 마치고 남미 여행을 떠났다. '한복'을 동반자 삼아 떠난 남미 여행에서 예나씨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단다.
'굳이 왜 한복 입고 남미여행을?'이라는 질문에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기도 했고, 내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은 거죠"라며 "한국에서와 다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라고 답했다.

◇"알바하며 여행경비 충당했죠"
여행을 떠나기전에 검정·회색·흰색 옷만 고수했던 '무채색 여대생'이 알록달록 저고리와 치마를 각각 세 벌씩 챙겼다. 저고리 소매 품 확 줄이고 치마 길이도 발목 위로 오도록 수선했다. 남미 여행길서 만난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환상적이다" "나도 입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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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비는 가는 곳마다 알바를 하며 충당했다. "남미 7개국을 여행하며 한번씩 다 일했어요.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선 여행사 마케팅 알바를 했고, 브라질 아마존에서는 팔찌 만들어 팔았어요. 볼리비아의 한 도매시장에선 과자도 팔았죠." 그런 경험 때문일까. 예나씨는 이제 언제,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먹고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남미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예전에 저는 귀걸이 하나 살 때도 남의 말이 기준이었어요. 여행 덕분에 '내 인생의 중심이 나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깨달음이 제게 굉장히 크게 다가와요."
지난해 4월 귀국한 예나씨는 어느새 여행가로 변신해 있었다. 앞으로 여행이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여행이라는 계기가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길을 나서는 게 꿈이다. 취업문제 등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 떠나는 여행도 좋단다.
오는 2월 3일 대전에서 여행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예나씨. "여행이 별 볼일 없던 20대 청춘을 어떻게 바꿨는지 제 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제 얘기가 누군가의 깊은 곳을 툭 하고 건드릴 수 있다면 정말 짜릿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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