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쩐'의 전쟁④] 이혼의 시작과 끝 '돈'…빚 때문에 이혼 못하거나 일부러 이혼하기도

#주부 김모씨(55)는 10년간 이어진 남편의 폭언과 알코올 중독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집을 나왔다. 친척 집에 얹혀살며 이혼을 준비 중이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신용불량자였던 남편이 김씨 이름으로 빌린 빚 1억원 때문이다. 남편이 조금씩 갚고 있지만 이혼 후에는 김씨 혼자 부담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유일한 재산인 부부 명의의 집을 팔고 싶어도 이혼을 원치 않는 남편이 거부하고 있다. 이대로 이혼했다간 집도 없이 빚만 떠 앉게 될 상황이다.
#건설업을 하던 박모씨(45)와 부인 최모씨(43)는 지난해 9월 원치 않는 이혼을 했다. 박씨가 사업을 하면서 빚 4억5000만원을 진 탓에 전 재산이 압류될 위기에 처해서다. 박씨는 남은 재산을 모두 최씨 명의로 돌려놓고 이혼 도장을 찍은 후 파산신청을 했다. 부부는 위장이혼 의심을 막기 위해 실제로 따로 살아야 했다.
이혼과 돈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이혼을 원하지만 돈 때문에 못 하거나, 원치 않지만 돈 때문에 이혼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혼을 문의해오는 의뢰인 대부분이 재산분할 고민을 가장 먼저 꺼낸다고 말한다.
재산이 너무 적거나 빚이 많은 부부에게 이혼은 생계를 뒤흔드는 일이다. 이현곤 새올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이혼을 하면 가정이 둘로 나뉘는 만큼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든다"며 "분리된 가정이 모두 독립해서 살 만큼 형편이 안 되면 이혼 상담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재산분할은 부부의 △각 당사자 명의 재산 △각 당사자 재산 형성 기여도 △혼인지속기간 등에 따라 분할 비율이 결정된다. 재산과 빚을 합한 총 재산을 기여도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재산이 1억, 빚이 1억4000만원인 부부의 경우 총 자산은 빚(마이너스) 4000만원이다. 아내가 가정주부일 경우 기여도를 40%로 계산하면 이혼 후 아내 혼자 빚 1600만원을 책임져야 한다.
김씨처럼 배우자의 빚을 억울하게 부담했을 경우 빚을 지게 된 이유를 상세히 밝혀야 한다. 양나래 법무법인 라온 변호사는 "이혼 후 억울하게 혼자 빚을 갚지 않으려면 소송 과정에서 채무 발생 경위와 대출금 사용 내역 등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배경에도 '돈'이 있다. 노년기에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부부의 혼인지속기간이 길어서 재산분할 비율도 커진다. 배우자의 (장래) 퇴직금과 퇴직연금도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하다. 배우자가 근무하는 데 상대방 배우자의 기여가 인정된다면 부부쌍방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으로 인정된다.
재산이 너무 많아 이혼을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재산 대부분이 각 당사자가 물려받은 상속재산이라면 재산분할을 많이 받을 수 없어서다. 조혜정 조혜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상속재산은 20년차 부부가 이혼해도 3분의 1 이상 못 받는다"며 "이혼하려다가도 재산이 아까워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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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아끼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는 이들도 있다. 양도소득세 30억여원을 내지 않은 A씨는 이혼 후 전 부인에게 재산을 나눠준 탓에 세금 낼 돈이 없다며 버텨왔다. 하지만 이혼 뒤에도 부인과 함께 생활하다가 국세청에 덜미를 잡혀 집에 숨겨둔 현금 4억3000만원과 골드바 3개 등 총 4억5000만원을 압류당했다.
재산 압류을 피하거나 파산신청을 위한 위장이혼 사례도 흔하다. 한 사람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고 이혼한 뒤 파산신청을 하는 식이다.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은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을 때 이런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며 "하지만 위장이혼했다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제로 헤어지는 경우가 70~80%"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경제적 요인이 부부 관계에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며 "경제적 이유로 원치 않는 이혼을 했다 해도 부부간 친밀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다시 좋은 관계로 합쳐지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