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주의 PPL] "검사님, 클럽 안에선 마약이 넘쳐난다는데…"

[유동주의 PPL] "검사님, 클럽 안에선 마약이 넘쳐난다는데…"

유동주 기자
2019.03.18 04:38

[the L] 판검사에겐 더 필요한 건 '법공부'가 아니라 일반인 수준의 '상식'과 거리의 '경험'

[편집자주] People Politics Law…'국민'이 원하는 건 좋은 '정치'와 바른 '법'일 겁니다. 정치권·법조계에 'PPL'처럼 스며들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약투약 및 유통 의혹을 받는 버닝썬 클럽 이문호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로 출두하고 있다.  경찰은 이 대표에게 클럽 내에서 마약유통과 투여가 상습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에 대해 캐물을 예정이다. 2019.3.5/사진=뉴스1
마약투약 및 유통 의혹을 받는 버닝썬 클럽 이문호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로 출두하고 있다. 경찰은 이 대표에게 클럽 내에서 마약유통과 투여가 상습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에 대해 캐물을 예정이다. 2019.3.5/사진=뉴스1

“클럽에서의 마약문제가 심각하다는데 기획수사라도 해 볼 생각 없으신가요?"

수년 전 대검찰청에서 마약수사를 총괄하는 어느 검사와의 기자 간담회에서 했던 얘기다.

그즈음 우연히 지인의 생일파티 초대로 구경갔던 강남 어느 클럽의 모습은 ‘치외법권’지역이었다. 지하로 내려서자마자 자욱한 '담배연기'. 국민건강진흥법상 금연구역이여야 할 곳이 너구리굴보다 더한 흡연구역이었다.

몇 걸음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다 목격한 '성추행'. 그 지하세계는 ‘법’과는 무관한 곳이라는 걸 입구에서 들어가자마자 30초 내에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남의 엉덩이를 만지는 '추행’이 그곳에선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지상에선 경찰을 부르고 난리가 날 행동인데도 클럽 안에선 별 문제 아니라는 듯 가해자도 피해자도 무심할 정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일을 목격하고 놀라서 얘기하자 지인의 파티 분위기를 해치는 방해꾼으로 인식됐다. 결국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반강제 권유로 자진귀가를 택했다.

처음 본 클럽 내부 모습은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불법과 위법의 범벅이었다.

클럽 안에서의 ‘불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소위 '클러버'들을 취재해보니 ‘마약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걸 목격했다는 이들이 한 둘 나왔다. 유학생들이 모임을 갖는 서울 시내 어느 한강변 아파트에선 주말마다 환각파티가 열리고 직접 가본 적도 있다는 제보까지 들었다.

누구나 출입 가능한 공간인데도, 어둠의 지하세계 입구같은 클럽 출입문을 통과하면 그 안은 ‘금연구역 위반’이나 ‘성추행’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불법은 일상이었다. 더불어 '마약'이라는 중대한 범죄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할 수 있겠단 결론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만난 마약담당 검사에게 클럽에서의 마약문제를 화제로 꺼냈지만, '우스개 소리'로만 여겨졌다.

몇년 지나 '버닝썬 게이트'가 터진 뒤, 자연스럽게 ‘클럽 마약 기획수사’라는 말을 꺼냈던 몇년 전 간담회에서의 그 검사의 반응이 새삼 기억날 수 밖에 없었다.

서울 강남 어느 클럽 내부/ 머니투데이 DB
서울 강남 어느 클럽 내부/ 머니투데이 DB

“우선 클럽에 잠입해서 수사를 하려면 클럽 입장이 돼야 하는데 전 입구에서 걸러질 거 같네요. 모자를 쓰고 가야하나. 하하”

자신의 외모와 나이를 고려한 검사의 농담이었다.

어느 직업군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하다면 언젠간 그 외부 영향으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검사도 마찬가지다. 자기 일이 어떤 외부 변화나 빨리 바뀌는 트렌드에 영향을 받는 지에 대해 전혀 눈치도 못챈다면 유능하다고 볼 순 없다.

환각상태에서 사고를 쳐서 잡히는 마약사범이나 함정 수사로 주기적으로 잡아들이는 상습범으로만 만족해선 곤란하다. 겨우 그런 실적통계가 주는 성과에 만족한다면, 마약담당 검사로 제대로 일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전문가가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판검사는 '법전문지식'을 갖춘 스페셜리스트에 머물러선 안 된다. 업무적용에선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복잡한 사건을 다루고 이해하기 힘든 인간군상들이 벌인 사건을 다루기 위해선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행동을 이해할 정도의 최소한의 상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트렌드를 파악하고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식과 경험이 동반돼야 좋은 판결, 훌륭한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 판검사실 골방에 틀어박혀 법리 연구만 한다고 좋은 판검사가 된다고 볼 순 없다.

소위 ‘범생’ 출신의 한계와 복지부동의 ‘공직자 마인드’로만 일하는 판검사는 과거에나 통한다. 사법개혁이 의외로 별 게 아닐 수 있다. 고고한 천상계(天上界)의 법조인들이 내려와 일반 시민들의 옆에서 같이 호흡하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사법개혁일 수도 있다.

특허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어느 전 판사의 고백이다.

"특허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법대를 나와 전기·전자·화학에 대해선 무지한 내가 그런 분야에 대한 이해와 지식도 없이 판결을 내린다는 게 두려워서 노량진 자격증학원에 몰래 등록해 학생들 틈에 섞여 공부했다"

이런 노력을 하는 판검사는 찾기 쉽지 않다. 특허같은 특정 분야가 아니더라도 판검사의 판단은 가끔은 일반인의 ‘상식’에도 어긋날 수 있다. 간혹 판결과 수사가 잘못됐다는 '비법조인'의 지적을 받는 건 그들의 '법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상식'과 '경험'이 부족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검사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두 알고 경험할 순 없다. 다만 세상과 괴리된 법대(法臺)에 고고하게 앉아만 있는 판사에게선 좋은 판결문이 나오지 않음은 명백하다. 경찰이 송치한 서류, 검찰 수사관들이 올린 보고로만 세상과 범죄를 읽는다면 실제 범죄현장의 생리를 모르는 책상물림 검사밖엔 될 수 없다.

검찰 마약담당 총괄 검사가 클럽이란 곳을 전혀 모르고 관심이 없는 동안, 그 공간에선 마약이 대량으로 쓰이고 범법자가 양산되고 있었다.

유동주기자
유동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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