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불법 LPG 수송 트럭 활보하는 제주도…당국 고발에도 배짱영업

[르포]불법 LPG 수송 트럭 활보하는 제주도…당국 고발에도 배짱영업

제주=김성진 기자
2022.04.12 06:00

지난 6일 오후 3시50분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인근 제4부두. 화물선에 오르기 위해 길게 줄을 선 화물차들 뒤로 'LPG(액화석유가스)'가 크게 적힌 5.5톤 벌크로리(가스 수송차량)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익' 소리와 화물선과 100m 정도 거리에 멈춰서더니 운전석쪽 차문이 열렸다. 기자가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제주지역 LPG 판매업체 A사의 직원이 맞느냐고 묻자 "그렇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운전기사가 내린 벌크로리 후면에는 A사가 아닌 전남에 소재한 M사 마크가 적혀 있었다. 별도 허가 없이 다른 업체 벌크로리를 빌려 불법 LPG 운송사업을 하는 현장이었다.

화물차들 분주한 제주도 선착장...버젓이 주차된 미허가 LPG 차량
6일 오후 4시쯤 제주도의 한 선착장에서 LPG 가스 운송차량인 벌크로리가 2000톤 규모 화물선 앞을 지나고 있다. 제주도의 한 LPG 판매업체는 미허가 벌크로리로 LPG 운송 사업을 벌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6일 오후 4시쯤 제주도의 한 선착장에서 LPG 가스 운송차량인 벌크로리가 2000톤 규모 화물선 앞을 지나고 있다. 제주도의 한 LPG 판매업체는 미허가 벌크로리로 LPG 운송 사업을 벌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제주의 LPG(액화석유가스) 판매업체가 안전 점검도 받지 않고 무허가 가스 수송차량으로 LPG 운송 사업을 하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가 두달 째 진행되는데도 해당 업체는 여전히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제주 서부경찰서는 LPG 판매업체 A사를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액화석유가스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A사 관할 지자체인 제주시청이 타사 벌크로리 차량을 불법 임대해 운행, 충전행위 등을 한 혐의로 지난 2월 A사를 경찰에 고발한 데 따른 조치다.

LPG는 1998년 97명의 사상자를 낸 부천 LPG충전소 폭발사고의 사례로 알 수 있듯 대형 사고를 일으킬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안전기준도 그만큼 까다롭다. 액화석유가스법에 따르면 LPG충전사업, 집단공급사업을 하려는 자는 사업소마다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LPG 위탁운송사업을 하려는 자 역시 지자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또 LPG 위탁운송사업을 하려면 사업에 사용되는 모든 벌크로리를 대표자나 법인 명의로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에 가스안전공사는 업체가 △벌크로리 전용 주차공간을 확보됐는지 △학교 등 보호시설이 LPG 폭발 사고에도 피해를 입지 않을 만큼 충분히 떨어졌는지 등을 점검한다. 벌크로리를 추가 구매할 때도 안전검사가 필수다. 이때는 기존 확보한 벌크로리와 1m 간격을 띄우고 새 벌크로리를 주차할 공간이 확보됐는지 등을 검사한다.

문제는 일부 제주도 LPG 판매업체들이 이런 안전검사를 피해 벌크로리를 임대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가격 부담도 상당하고, 넓은 부지를 구비해야 하는 등 여러 제약 때문이다. 한 제주도 가스업계 관계자는 "벌크 한대당 가격은 1억~1억5000만원 수준"이라며 "가격 부담에 미허가 벌크를 쓰는 영세 판매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A사가 안전검사를 받고 법인 명의로 확보했던 벌크로리는 1대다. 지난해 7월부터는 다수의 벌크로리는 임대해 장거리 LPG 운송사업을 하고 있다. 전남 목포 와 무안 등 내륙에서 LPG를 벌크로리에 채워 화물선에 싣고 오면 A사 운전기사가 선착장에서 벌크로리를 픽업해 식당, 주택 등에 LPG를 충전해주는 식이다.

그나마 법인 명의로 소유했던 벌크로리 한대는 제주도의 한 가스 도매업체에 미수금을 지급하지 못해 민사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최근 압류당한 상황이다.

6일 오후 4시쯤 LPG 가스 운송차량인 벌크로리가 제주도의 한 선착장에서 2000톤 규모 화물선 앞에 주차돼 있다. 제주도의 한 LPG 판매업체 A사는 미허가 벌크로리로 LPG 운송 사업을 벌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6일 오후 4시쯤 LPG 가스 운송차량인 벌크로리가 제주도의 한 선착장에서 2000톤 규모 화물선 앞에 주차돼 있다. 제주도의 한 LPG 판매업체 A사는 미허가 벌크로리로 LPG 운송 사업을 벌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원칙상 대표자나 법인 명의 벌크로리로 운송사업을 해야 하는 만큼 위법 소지가 있다"며 "처벌권자인 지자체가 구체적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제주시청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조사를 거쳐 지난 2월 A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시청 관계자는 "특정 업체에 관해 진행 중인 사안을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허가받지 않은 벌크로리를 제3자가 운전하는 것은 위법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만간 고발인인 제주시청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 법률 검토를 진행한 후 정상 절차에 따라 A사 관계자도 조사할 것"이라 밝혔다.

A사는 경찰의 수사 착수에도 불법 운송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 선착장에서 만난 A사 운전기사는 이날 식당, 주거지 등에 LPG를 충전하고 5.5톤 벌크로리를 선착장에 주차한 상황이었다.

운전기사는 "A사 명의의 벌크로리는 현재 없다"며 "매일 아침 화물선이 내린 벌크를 끌고 제주도 소매업들에 LPG를 판 뒤 오후에 선착장에 돌려놓는다"고 말했다.

"충전소들 담합에 공급원 잃어" A사의 항변

A사는 제주도 내 LPG 도매상들이 담합을 해 LPG를 공급받을 수밖에 없었고, 불가피하게 벌크로리를 임대해 사용해 온 것이라 항변했다.

제주도 가스업계는 소수의 LPG 충전업체(도매상)가 다수의 판매업체(중간도매상)을 상대로 LPG를 공급하는 피라미드 구조로 돼 있다.

현재 충전업체들에 대해선 '거래처 나눠먹기' 담합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도매상들이 서로의 판매업체를 뺏지 않기로 입을 맞췄다는 것이다. 판매업체로선 도매상에 부당한 요구를 받아도 다른 도매상과 거래할 수 없어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 광주지방사무소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A사는 지난해 도매상 B사에게 가격 인상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이를 거부하자 제주도의 다른 도매상들과 거래도 불가능해져 LPG를 내륙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A사 관계자는 "충전업체들이 담합해 단가를 올리니 내륙에서 LPG 가스를 들여오는 것"이라며 "다른 회사 명의 벌크로리 4대를 사용 중"이라 밝혔다.

A사 관계자는 벌크로리를 임대한 게 아니라 LPG 운송사업 자체를 위탁한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지난 6일 선착장에서 만난 LPG 운송기사는 본인 소속이 A사라고 밝혔다.

취재진이 이 점을 질문하자 A사 관계자는 "회사 직원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답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정규직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회사 명의 벌크로리로 충전 사업을 한 것 자체가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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