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먹통 느림보' 사법서비스]⑤코로나19 때 '전산망' 대책없이 재택근무

최근 법원의 '전산 시스템 마비'가 법조계의 질타를 받으면서 몇 해 전 법원 직원들의 재택근무 때문에 문의나 서류 제출에 불편이 발생했던 사례가 다시 거론된다. 소송 관련 서류는 '불변기간' 안에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전산망 마비는 심각한 권리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소송 당사자에게 서류 제출 기한을 늘려주는 예외 조항을 만드는 등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일 전국 법원이 사용하는 전산망이 마비됐다. 앞서 법원은 최근 문을 연 수원회생법원·부산회생법원에 사건 관련 데이터 등을 수월하게 옮기기 위해 전산망 가동을 잠시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시스템이 멈춘 뒤 복구가 늦어졌다.
이를테면 피고인 등 소송 당사자가 재판 진행 상황 등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나의사건검색' 시스템이 종일 '먹통'이 됐다. 민사소송 관련 서류는 대부분 전자 형태로 제출되는데, 전산망 마비로 재판 당사자들이 기록을 내거나 보는 데 큰 불편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가 사용하는 내부 업무시스템 등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법조계 사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코로나19(COVID-19)가 유행하던 2021년 법원 직원들의 '재택근무' 때문에 소송 관련 문의나 전자 문서 제출 업무 등에 차질이 생긴 일을 떠올린다. 법원이 전산망 접속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시행한 게 문제였다. 전산망은 보안 유지 때문에 외부 인터넷망으로는 접속할 수 없다.
일부 변호사들은 당시 법원에 문의차 전화를 걸자 '담당자가 부재중이므로 다음에 다시 연락 달라'는 안내음만 들려왔다고 한다. 연결돼도 '재택 중이어서 전산망 접속이 불가능하다'라거나 '담당자가 재택근무여서 내일 전화하라'는 등의 답이 왔다는 말도 나왔다.
당시 변호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등의 성토 글이 올라왔다. 이윤우 변호사는 "판결문 등 민감한 정보가 유출되면 안 되니까 외부 접속은 차단한 것"이라며 "그러니 미리 대책을 마련해놨어야 했다"고 했다.
두 사고의 원인은 달라도 사건 관계인이 받는 영향은 같다.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큰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들이다. 사법행정 업무는 관련 서류의 제출 기간이 정해져 있어 '전산 먹통'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를테면 민사 사건 항소는 판결서가 송달된 날로부터 2주 안에 제기해야 한다. 이는 '불변기간'으로 못 지키면 억울한 부분을 다시 다툴 수 없다. 강제조정·화해권고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서 제출도 정해진 기간 안에 제출해야 함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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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 의사 관련 서류는 많은 고민과 준비 끝에 제출된다. 기간 막바지에 내는 경우가 잦다. 항소장을 내려던 날 갑자기 전산망이 먹통이 되면 눈 뜨고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물론 직접 법원을 찾아 문서를 내도 된다. 그러나 부산이나 제주 등에서 재판받는 경우 서울 사람이 급히 내려가기는 힘들다.
내년 10월20일부터 '형사절차 전자문서법'이 시행되는 상황을 앞두고 전산망을 철저히 점검·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이 시행되면 형사 절차 관련 서류도 전자 문서로 제출하게 된다. 이 법은 판사 등 직원이 근무 법원 외 여러 법원에 설치된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난 정부에서 정부 입법이 이뤄졌다.
법이 시행되면 피의자 구속기간 연장신청서도 전자 서류로 제출된다. 원격 제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갑자기 전산망이 정지되면, 제때 신청서를 못 내 피의자를 풀어줘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연장신청 없이 계속 구속하는 인권침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김기윤 변호사는 "고장·해킹·천재지변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전산망이 망가졌을 때 항소장 제출 기간을 늘린다거나 하는 예외 규정이 없는데 꼭 필요하다"며 "항소장 등을 못 내는 것은 피고인에게 굉장히 치명적인 것이다. 법원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