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경현씨(33), 생후 12개월에 근육 굳는 희귀병 진단, 오른손 검지만 움직여 80쪽짜리 논문 1년 만에 완성, 9년 만에 물리학 박사 학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코로나19 때도 하루도 안 빠지고 연구실로…아인슈타인도 못 이룬 꿈 '통일장이론' 연구 너무 재밌고 좋아"

태어난 지 8개월, 아기는 '뒤집기'를 멈췄다. 엄마는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에 갔다. 첫 병원에서 의사는 "아기가 말도 빨랐는데 괜찮다. 예민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집에 와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생후 12개월에 다른 대학병원에 갔다. 처음 듣는 병 이름을 들었고 또 진단 받았다.
'척수성근위축증'. 척수와 뇌간의 운동신경세포 손상으로 온몸의 근육이 점점 약해지고 굳어가는 병. 신생아 약 1만 명당 1명꼴로 생기는 희귀 유전 질환이라고 했다.
결국 숨을 잘 못 쉬어서 죽는다고 했다. 의사는 아이 엄마에게 말했다. "24개월을 못 살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더는 아기를 낳으시면 안 됩니다.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절망 속에서도 생각했다. 달나라도 갔다 오는 시대에, 못 고치는 병이 있단 건 믿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거라고. 가벼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고.
그리 생후 18개월엔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결과는 같아도 좀 더 친절했단다. 거기서 일주일에 두 번 물리치료를 받았다. 독일 치료법도 알아봤다. 일종의 기(氣) 치료였는데, 가장 왕성할 때 받으려 새벽 4시에 일어나 강남까지 갔다. 아이가 4살이 될 때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 아이는, 의사의 예언을 거슬러 숨질 거라던 생후 24개월을 지나왔다. 중학교 때 천문대에서 별을 본 뒤엔 과학을 좋아하게 됐다. 꿈이 생겼다. 대학에선 천문우주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그중 물리학으로 석사와 박사까지 도전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연구에 매진했다. 그렇게 쌓아나갔고 올해, 9년 만에 드디어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가 됐다. 이 병을 앓는 이들 가운데 이과 박사가 나온 건 처음이라고.
오랜 시간을 거쳐 그 '처음'을 이뤄낸 민경현씨(33)와 그의 어머니 정윤주씨(60)를 만나고 싶었다. 그가 지나온 길을 잘 기록해 등대 불빛처럼 밝혀두면,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 던져진 듯 지금을 살고 있을 누군가 그 빛에 기대어 따라와, 또 다른 길을 더 넓게 내어줄 거란 바람으로.

인터뷰 할 공간에 들어갔을 때, 경현씨와 어머니 윤주씨가 인사를 건넸다. 휠체어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민씨가 어머니에게 "고개를 똑바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말대로 어머니가 경현씨를 도와 앞을 보게 했을 때, 경현씨가 말과 말 사이에 자주 호흡을 두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할 때, 희귀하다던 그의 질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글을 읽듯 말에도 쉼표와 행간이 있어, 모처럼 이야기에 스며들기 좋게 느껴졌다.
병 이야기를 했다. 시작부터 생(生)과 사(死)를 자주 오갔다. 민씨가 신촌 세브란스를 다니던 때였다. 같은 병을 앓으며 치료 받던 아이들이, 어느 날 안 보이기도 했다. 밤을 지나며 호흡이 멈췄을 때, 그 아이 부모들은 자책을 했단다. '내가 왜 잤을까, 잠만 안 잤으면 그 아이를 살렸을 텐데'라고. 그리 다른 아이들도 많이 갔다. 민씨 주변 아이들은 많아야 여섯 살 정도까지 밖에 못 버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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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숨을 못 쉬어서 간단 게 너무 기가 찬 거죠. 애들이 하나둘씩 가니까 저도 두렵더라고요. 경현이 애기 땐 아이 머리에 아예 코를 박고 잤어요. 혹시라도 숨을 안 쉴까봐 늘 긴장 상태로 쪽잠을 잤지요."
평범한 통잠이 꿈이었을 어머니의 회상이었다. 밤새 아이 호흡이 끊어질까 싶어서였다.

그런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늘 운동장에서 기다리는 삶이었다. 같은 병을 가진 아이의 엄마들이, 운동장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말을 했다. 다 저리 뛰는데 왜 내 아이만 아플까, 그런 생각 말이다. 윤주씨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다. 내 아이는 내 아이로, 저는 만족을 했었다"고 했다. 건강한 아이처럼 바라봐줬고, 다만 아이가 아파 다른 아이들만큼 누리지 못하는 것만 가슴 아팠단다.
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불가능한 건 없다고. 초중고 모두, 첫 마디는 "받아줄 수 없다"였으나 그때마다 어머니는 말했다. "제가 다 합니다. 아무 것도 학교에 걱정 끼치지 않습니다."
그리 들어가면 또 다니게 됐다. 중학교 땐 학교에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줬다. 대학교 때 낡은 건물서 수업을 들으면, 휠체어를 들어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휠체어가 80㎏, 경현씨가 20㎏, 도합 100㎏. 윤주씨가 경현씨를 들고, 과 동기들이 휠체어를 들어 올려 수업을 듣게 했다. 어떻게 그걸 했을까, 속으로 되뇌었을 때 윤주씨가 말했다.
"우리가 생각할 땐 '아, 안 될 거야' 지레짐작하고 멈추잖아요. 모든 게 다 만들어진 상태에서만 하려 하면, 할 수 있는 게 제한돼 있지요. 그냥 무조건 도전하는 거지요. 할 수 없는 건 없어요."

윤주씨 말을 듣고 '안 될 거야'라며 스스로 묶어 뒀던 때가 생각나 부끄러웠다. 어머니 도전이 부드러운 불도저 같았다면, 경현씨는 몹시 성실하고 우직해, 그걸 하나하나 실현해내는 쪽이었다. 물리학 석사와 박사, 통합 과정을 9년이란 시간에 걸쳐 이룬 것도 그에 힘입은 거였다. 윤주씨가 그 꾸준함에 혀를 내둘렀다.
"경현이는 진짜 성실해요. 토요일, 일요일 빼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학교에 갔죠. 그렇게 8년을 다녔을 때인데 너무 지겨운 거예요. 경현이한테 그랬죠. '나 이제 그만 가고 싶다. 대충 박사 학위 수료하면 안 돼?'라고요. 그랬더니 경현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오늘 할 거 많아. 지금 가서 급히 할 거 있어' 라고요."
경현씨 체력으론 공부하는 게 아무래도 불리했다. 4시간을 앉아 있으면 한 번은 꼭 쉬어야 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단다.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누워 있는 시간엔 기본적인 단어 암기나, 간단한 수식을 외우며 공부했다"고 했다. 그 성실함으로 대학교에선 장학금까지 받으며, 통상 5년 걸리는 복수전공(천문우주학+물리학)을 4년 만에 졸업했다.
공부하는 게 지겹다거나 힘들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경현씨도 고비가 있었다. 기초물리학 연구가 워낙 시간도 오래 걸렸기에.
"대학원 8년차 때였어요. 공부하던 동기와 후배들도 8년차 정도면, 석·박사 통합으로 만기라 생각하고 졸업하거든요. 그런데 전 남아 있으니까 압박감도 있고 힘들었지요. 다른 걸 경험 못 해본 게 아쉽기도 했고요. 그때가 좀 힘들었어요."
그걸 뚫을 수 있었던 생각은 단순했다. 오늘 안 하면 내일 해야 하고, 내일 안 하면 모레 해야 하는데 점점 쌓인다고. 그럼 더 많이 해야 하고 감당할 수 없다고. 그만둘 게 아니면 어차피 해야 한다고. 그리 매일매일 하다 보니 학위를 얻었단다. 그를 좋게 봐주는 도우미 친구들도 동기부여가 됐단다. 경현씨는 "학교에 안 나가면 약간 실망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경현씨가 박사 학위를 받은 게 어떤 학문인지 궁금했다. 무척 어려울 테니 심호흡을 하고 설명해달라며 물었다. 경현씨가 그가 좋아하는 물리학을, 아주 쉽게 설명했다.
"기초 물리학은 이론 물리와 실용 물리로 나뉘어요. 저는 기초 물리에서 이론을 전공했고요. 세부 전공을 얘기하면 입자 물리이지요."(경현씨)
"어렵네요(웃음). 어떤 내용인 걸까요?"(기자)
"가장 쉽게 말하면, 100년 전까지만 해도 원자가 물질의 가장 기본 단위라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며 더 작은 친구들이 있단 걸 알게 된 거죠. 그게 어떻게 운동하는지 관심을 갖게 됐고요. 제가 연구하는 게, 그 작은 친구들의 성질이 어떤지, 어떻게 운동하는지 공부하는 거라 보시면 돼요."(경현씨)
17개의 입자들로 지구상 모든 물질을 설명할 수 있다고. 그 '아름다운 계층성'이 좀 멋있다고 생각해서, 물리학이 좋은 거라고 했다. 그리고 경현씨가 쓴 논문 주제는 이런 거였다. 그는 "우주로 나가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입자들이 있는데, 그걸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에 관한 논문이라고 했다(어렵지만 멋있다).
꼬박 1년이 걸렸다.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서. 컴퓨터 화면에 자판을 띄우고, 검지로 마우스를 움직여 80쪽에 달하는 걸 써야 했으니, 오래 걸렸을 터였다. 윤주씨는 "A4 한 장을 쓰는데 5~10분이면 될 게, 경현이는 1시간이 걸렸다"며 "이과쪽 공부라 도우미 학생도 도와주기 어려웠다"고 했다.
달을 보기 위해 천문대를 찾았고, 그로부터 꿈이 시작된 중학생이, 우주의 입자와 힘을 연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도 생애 못 이룬 '통일장 이론'을 하기 위해, 그의 전 단계 정도를 하는 거라고. 경현씨는 "계속 공부한단 마음으로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몸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어도, 움직일 수 있는 게 손가락뿐이었어도, 생각만큼은 우주가 좁을 만큼 넓게 유영하고 있었다.

에필로그(epilogue).
경현씨가 고1 때였다.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꼬박 4주나 입원해야 했다. 몸무게가 38㎏에서 18㎏까지 빠졌다. 의사 선생님도 거의 포기 상태로 "집에 못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어느 날엔 윤주씨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경현씨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 있으면 오라 하라고. 윤주씨는 이리 답했다. "선생님, 오늘 날이 흐려서 그래요. 내일 햇빛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중환자실에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삽관하고 온몸에 20개가 넘는 줄을 매달고 있어, 맘 편히 안아줄 수도 없었단다. 윤주씨는 처음으로 아이를 놓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궁금했다. 아이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을지. 늘 그의 입장만 생각했다고 여겼기에. 그래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물었다.
"경현아, 만에 하나 말이야. 만에 하나 경현이가 하늘 나라에 가게 되면, 우리 경현이를 어디에 묻어줘야 할까."
그랬더니 대답도 하기 힘든 경현씨가 어머니의 손바닥에 이응(ㅇ)이라고 썼다. 윤주씨는 속으로 짐작이 가질 않았다. 할아버지 옆에 묻어달라 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왜 이응을 쓸까 싶어서. 기다렸더니 경현씨가 이렇게 썼다.
"엄마 옆."
그걸 보는 순간 윤주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그렇지, 엄마 옆에 널 묻어줘야지, 그러니까 그 전엔 절대 죽으면 안 돼, 엄마가 죽은 다음에야 널 옆에 묻어줄 수 있으니까.'
널 살릴 사람은 너뿐이니 꼭 살겠단 의지를 가지라고 수없이 되뇌고 또 되뇌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