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의 아이콘', '천재 사업가'
글로벌 IT기업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가 2011년 10월 5일 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56세.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아 7년간 투병하다 숨을 거뒀다.
잡스는 2011년 8월24일 CEO직에서 물러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등졌다. 애플은 성명을 통해 "한 명의 비전과 창의성을 함께 지녔던 천재를 잃었다"며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애플 이사회는 "스티브의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는 우리 세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끝없는 혁신의 근원이었다. 세계는 스티브 덕분에 진보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혁신가 중 한 명을 잃었다"고 추도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스티브와 나는 30년 넘게 동료이자 경쟁자, 친구였다"고 말했다.
1955년 2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잡스. 시리아계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잡스의 생모는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부모의 반대로 결혼도 어려웠다. 결국 입양을 선택한 것. 양부는 실리콘밸리의 기술자였다. 잡스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 차고에서 부품을 모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잡스는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자제품 제조회사인 휴렛팩커드 인턴으로 일했다. 여기서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게 된다. 잡스는 워즈니악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5살 동생이었다. 잡스는 인턴, 워즈니악은 직원이었고 이렇게 인연이 끝나는 듯 했지만 2년 뒤 다시 만난다.
진로를 정하지 못한 잡스는 대학에 갔다가 중퇴를 했고, 게임 회사에 취직했지만 금방 그만둔다. 그러던 중 컴퓨터 동호회에 나간 잡스는 워즈니악과 다시 만난다. 이후 1976년 잡스의 집에서 애플을 창업한다. 과수원에 다녀온 잡스가 '유해하지 않은' 느낌의 이름을 사명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애플의 첫 개인용 컴퓨터 애플1·2는 성공적이었다. 애플1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애플2가 소위 대박이 났다. 컴퓨터 한 대 가격이 1298달러로 당시 한국돈으로 60만원이 넘는 고가였다. 대략 중고차 한 대 값 정도. 이후 1984년 처음으로 마우스 등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적용한 매킨토시를 선보이면서 인기를 이어간다.
이후 잡스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개인용 컴퓨터가 잘 팔리던 시기. 잡스는 1985년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굴욕을 겪는다. 당시 잡스는 사내 팀 간 경쟁을 부추기고 주 90시간 근무를 강요하는 등 독선적인 경영으로 인망을 잃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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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컴퓨터 제조업체 넥스트(NeXT)를 설립해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했지만 참패했다. 하지만 1986년 인수한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의 '토이 스토리'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차세대 테크 리더로 다시 주목을 받는다.
한편 잡스가 없던 애플은 1997년 1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며 이른바 '썩은 사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애플은 결국 넥스트를 인수하고 잡스를 경영 고문으로 복귀시켰다. 복귀한 잡스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1년 만에 3억 달러 흑자를 달성했다. 2000년 잡스는 마침내 애플의 CEO로 복귀했다.
이후에도 잡스의 혁신은 계속됐다. 2001년 출시한 아이팟(iPod)은 MP3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했다. 편의성을 중시한 애플 스토어는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로 신음하던 음악계에 새로운 활로를 제시했다.
2004년 8월 잡스에게 췌장암이란 시련이 찾아온다. 수술로 치료 가능한 희귀한 섬세포암이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세요"라며 "항상 갈망하며, 항상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란 명언을 남겼다.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에 이어 모바일 시대까지 열었다. 2007년 6월 잡스는 아이폰(iPhone)을 내놨고, 기존 휴대전화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후 2010년에는 9.7인치 태블릿 아이패드(iPad)를 출시했다. 화면 큰 아이폰이란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 같은 성공으로 애플은 지난해 기준 시가 총액이 4조 달러(한화 약 540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잡스는 까다로운 업무 처리로 유명했다. 직원들에게 엄격했고,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 없이 화를 냈다. 통보나 퇴직금 없이 대량 해고를 단행하기도 했다.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만 입는 독특한 패션으로도 유명했다.
사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잡스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도 6개월간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몸에 칼 대는 것을 거부하며 식이요법, 침술, 수행으로 치료하려 했다. 부인의 설득으로 겨우 수술을 받아들였지만, 그 사이 췌장 5%만 퍼져 있던 암은 췌장 전체로 퍼졌다. 잡스가 걸린 췌장암은 5년 생존률이 50%에 달해 치료 가능성이 높았다. 치료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들어 병세가 급속히 악화됐다. 잡스는 당시 아이패드2 출시 행사장에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다. 그해 8월 CEO직을 사임하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불교식으로 가족과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간소하게 치러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