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 사건적체 만병통치약?…상고제 개편이 빠졌다

대법관 증원, 사건적체 만병통치약?…상고제 개편이 빠졌다

조준영 기자
2025.10.22 16:33
 /사진=김현정
/사진=김현정

여당이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한 사법개혁안을 내놨지만 상고심 사건적체를 해소하고 충실한 심리를 이끌어내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이 권리구제와 법령해석 통일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만큼 구조개혁 없이 인원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근본적 개선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의 상고심 본안사건 처리 건수는 4만1000여건에 달한다. 소부에 참여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1인당 평균 30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한 셈이다.

대법원이 많은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배경엔 1994년부터 활용하고 있는 심리불속행제도가 있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상고이유에 헌법·법률 위반이나 중대한 법령위반이 없는 경우 심리 없이 바로 상고를 기각할 수 있는 제도다.

매년 대법원에 올라오는 수만건을 처리하기 위해 불가피한 제도라는 이유로 30년 넘게 활용되고 있지만 전체 사건의 약 70% 가량이 실질적인 심리 없이 종결돼 국민의 권리구제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심리불속행 결정이 당사자를 설득하지 못해 사법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실상 3심제를 유명무실하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심리불속행 판결문에는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이유 없다. 상고를 기각한다'는 취지의 문구만 기재될 뿐 판결이유가 쓰이지 않는다. 이에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해 6월 심리불속행 판결문에 판결이유를 기재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지만 대법원은 "상고가 제한되지 않는 현 제도 하에서 판단요지를 기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상고심 재판의 엄청난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결국 사건적체를 '심리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는 셈이다.

대법원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여러 차례 제도개편을 시도했다. 고법 상고부제나 상고허가제 등으로 대법원에 올라갈 사건을 선별했지만 '재판받을 권리 침해' 논란 속에 폐지됐다. 양승태·김명수 대법원장이 각각 추진한 상고법원과 상고심사제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대법원은 모든 사건을 접수하면서도 상당수를 형식적으로 종결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여당의 대법관 증원안도 이런 현실을 개선하겠는 시도로 풀이된다. 대법관을 늘리면 1인당 담당 사건수가 줄어 심리가 충실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법관을 늘리면 오히려 상고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사자들이 "대법원에서 심리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해 하급심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 확정이 늦어지는데 이는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다른 기능을 더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일한 법조항을 재판부마다 다르게 해석하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흔들리는 만큼 대법원은 법령해석 기준을 제시하고 판례를 통일시켜 법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을 떠안은 채 사건처리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는 이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다는 것이다.

이에 사건적체 해결을 인력증원만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상고심 진입문턱을 조정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급심 심리 충실화로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 상고가능성을 낮추고 대법원은 법률심으로서 법령해석 통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 법령해석 기능을 키워야 하는데 대법관만 늘었을 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대법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마비돼 더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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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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