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년 전인 1991년 1월 29일 밤 11시쯤 이형호군(당시 9세)의 집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서울 말씨를 쓰는 수화기 너머 남자는 "내가 형호를 데리고 있다"며 "이틀 뒤 다시 전화할 테니 7000만원과 카폰이 달린 자동차를 준비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이후 유괴범은 서울 곳곳의 공중전화를 옮겨 다니며 이군 부모에게 60회 이상 연락해 협박했다. 경찰은 28만장에 달하는 전단과 1000여개의 음성 테이프를 뿌리며 공개수사에 나섰지만, 끝내 유괴범을 붙잡는 데 실패했다.
이군은 같은 해 3월 서울 송파구 한 배수구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형호군 유괴 사건은 △개구리 소년 사건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해결)과 함께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으로 분류됐다. 2007년에는 이 사건을 다룬 영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군의 유괴 당일, 그날 저녁까지만 해도 평범한 하루였다. 겨울 방학이었던 터라 이군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6시쯤 이군이 사라졌고, 늦은 밤 유괴범의 전화가 걸려 왔다.
유괴범은 매우 치밀했다. 돈과 함께 요구한 '카폰이 달린 자동차'는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었다. 유괴범은 카폰을 통해 돈을 건네받을 장소를 수시로 바꾸며 이군 부모와 경찰들을 흔들었다. 스마트폰과 같은 이동통신 장비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카폰을 구하기도 어려웠는데 범인은 이를 적극 악용했다.
범인은 이군 부모가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라 예상, 첫 전화 직후 형사인 척 전화해 이군 부모를 떠볼 정도로 조심성이 많았다. 그는 경찰의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도 4분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약속 장소를 반복적으로 변경하며 혹시나 미행이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기도 했다.

범인을 체포할 절호의 순간도 있었다. 유괴 3일째였던 1991년 2월 1일, 범인은 이군 부모가 준비한 돈가방을 가지러 가는 중 잠복하고 있던 경찰을 보고 달아났다. 경찰이 머뭇거리면서 검거에 실패했는데, 이후 범인은 이군 부모에게 전화해 "형호가 죽길 바라냐"며 화를 냈다.
돈가방이 놓인 장소에는 범인이 남긴 메모지가 있었다. 메모지에는 "양화대교 남단 올림픽대로 첫 번째 교각 철제 배전반 위에 돈가방을 놓고 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쉽게도 메모지에서 지문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후 이군 아버지는 현금 10만원과 신문지를 섞은 돈뭉치를 가방에 넣어 범인이 요구한 장소에 전달했다.
현장에 경찰들이 잠복하고 있었으나 또다시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 이후 범인은 "가방 안에 가짜 돈이 잔뜩 섞여 있더라"며 "형호를 되찾을 마음이 없는 것으로 알겠다"고 말한 뒤 연락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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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과의 마지막 통화 후 한 달여가 지난 1991년 3월 이군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이 사망 추정 시간을 분석한 결과, 이군은 유괴 당일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은 유괴 당일 이군을 살해했음에도, 부모에게 연락해 돈을 주면 아들을 보내줄 것처럼 협박했던 것이었다.
이형호군 유괴 사건은 2006년 1월 29일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이에 해당 사건은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현재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이 생겼으나 이 사건은 해당 법을 적용받지 못했다.
2019년 9월 미제 사건이었던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이 해결되자, 경찰은 이형호군 유괴 사건에 대해서도 재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단서가 약 30년 전 범인의 목소리 등 단편적 정보밖에 없었던 탓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