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악 대법관이 퇴임식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노 대법관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사법의 결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어느 한쪽의 비난과 공격을 피해 나가기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 가운데서도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야 한다. 법관에게 용기라는 덕목이 점점 더 크게 요구되는 이유"라며 "제도가 불신받고 권위가 상처받는 시대에서 상식과 원칙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노 대법관은 이날 사법부의 과제로 독립과 신뢰를 꼽았다. 그는 "사법부의 디딤돌은 사법권의 독립과 국민의 신뢰 두 가지"라며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법관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나 혜택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직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보장해 법치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고 국민의 법적 평화와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전환과 AI 발전에 대해서는 "머지않아 인공 일반 지능이 등장하고 특이점을 넘는 지점에서 인류는 인공지능과 동반자적인 관계를 새로 설정해야 할지 모른다"며 "이러한 발전과 급격한 사회변화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법의 중심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법관의 통찰력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노 대법관은 특히 국제상거래 분쟁을 거론하며 "다양하고 복잡한 국제상사거래 분쟁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이제 대한민국 법원은 그와 연계되는 중재나 조정 등 대체적 분쟁해결기구와 함께 다양한 분쟁 해결 방법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사법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사건 기록에는 당사자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이 담겨 있었고 기록의 행간에서 법리와 사실이라는 엄중한 기준을 놓지 않으며 최선의 정의를 찾고자 노력했다"며 "제가 다루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말했다. 이어 "때로는 '좋은 결론'과 '맞는 판결' 사이에서 고민했고 그 차이와 간극을 느낄 때면 당혹스러움과 고민으로 밤잠을 설칠 때도 없지 않았다"고 했다.
경남 창녕 출생인 노 대법관은 대구 계성고와 한양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사법연수원 16기)한 뒤 1990년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로 임용돼 30여년간 법관의 길을 걸었다. 법원에서는 소통 능력이 뛰어나고 성격이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5월 선관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선거 관리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