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리랑, 세계를 품다](상)

광화문에서 다시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21일 오후 8시. 서울 도심의 상징적 공간에 울린 이 익숙한 가락은 같은 시각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0개국 3억명이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K팝 그룹인 BTS(방탄소년단)는 이를 동시대의 언어와 음악으로 다시 풀어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축적해 온 상징적 공간인 광화문 광장이 가장 현대적이면서 인종도, 국적도 가리지 않는 세계인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세기의 컴백'으로 평가받는 이번 BTS 공연은 초대형 K팝 무대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서울 한복판에 대규모 인파가 모였고, 공연은 디지털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 BTS를 매개로 한국의 말과 노래, 공간과 역사는 글로벌 콘텐츠로 전환됐다. K팝이 더 이상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한국 문화는 이제 음악과 영상에 그치지 않고 도시 공간, 관광, 소비, 국가 이미지까지 함께 움직이는 소프트파워로 작동하고 있다. BTS 리더 RM은 "이제 모두가 K가 어디인지 안다(Everybody know now where the K is')"고 노래했다.

이번 무대는 K콘텐츠의 '진화'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그동안 K팝은 한류의 대표 장르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콘텐츠로, 다시 관광과 문화를 연결하는 창구로 외연을 넓혀왔다. 이번 공연은 이 같은 흐름이 한 단계 더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한국적 요소를 장식처럼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팝이 한국적인 요소를 덧붙이는 단계를 넘어 한국적 뿌리 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며 "한국적인 서사(로컬)가 전 세계 주류 시장으로 바로 편입되고, 나아가 주류 흐름 그 자체가 되는 역사적인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는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현재화라고 봤다. 신 교수는 "광화문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마련된 무대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 로컬과 글로벌을 한 장면 안에 중첩되면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냈다"며 "한국 문화가 어디까지 확장됐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 일본 도쿄 시부야와 결이 다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상징이 놓인 조선의 중심지이자, 근현대의 민주 시위와 월드컵 거리응원, 촛불집회의 기억이 축적된 공간이다. 그런 장소에서 펼쳐진 이번 공연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한국 사회가 이제 '문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산업재를 수출하는 나라로, 다시 문화를 수출하며 세계와 연결되는 나라로 변화해 온 흐름이 이날 광화문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컴백을 기념해 'BTS 컴백 라이브 : 아리랑'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빅히트 뮤직/넷플릭스 제공) 2026.03.21.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3/2026032222242758514_3.jpg)
산업화와 민주화로 선진 부국의 초석을 놓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문화강국이자 소프트파워로 우뚝 섰다. 6·25 전쟁의 폐허 속 원조로 생존하던 나라가 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 체제 안착을 거쳐 김구 선생이 꿈꾸던 '문화의 근원이자 모범이 되는 나라'로 세번째 성공신화를 이룩한 것이다.
지난 21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콘서트에는 전세계 각국에서 모인 아미(Army·BTS 팬) 약 10만4000명(주최측 추산)이 운집했다. BTS가 전한 희망과 존엄, 연대의 메시지와 뜨거운 현장 열기 속에서 광화문을 배경으로 울려퍼진 아리랑은 글로벌 구독자 수 3억2500만명의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다.
슈가는 오프닝 무대 후 "한국의 역사적 장소인 광화문에서 무대를 할 수 있게 돼 정말 영광"이라며 "우리 정체성을 담고 싶어 앨범을 '아리랑'으로 정했고, 그 마음을 담아 광화문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독자들의 PICK!
BTS가 상징하는 케이팝(K-POP)은 글로벌 신드롬이자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주제가상을 받아 2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재명 대통령은 "김구 선생께서 꿈꾸셨던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는 나라'가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케데헌 연출자인 매기 강 감독은 "저처럼 생긴 이들에게, 이런 영화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미안하다. 다음 세대는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이 상을 한국과 전세계 한국인에게 바치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K-컬처는 서구 중심 문화예술의 견고한 진입장벽을 기어코 허물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2020년 비(非)영어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최고 권위의 작품상을 받는 등 4관왕을 차지했다. 2022년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에미상 6관왕을 달성했고, 한강 작가는 2024년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영국 브랜드파이낸스가 발표한 '2026 글로벌 소프트 파워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1위다. '12·3 불법 비상계엄'으로 한국의 거버넌스 순위는 25위로 전년보다 5단계 하락했으나 예술·엔터테인먼트와 '영향력 있는 미디어' 부문에서 각각 전세계 7위로 떠오르며 하락폭을 상쇄했다.
브랜드파이낸스는 "문화적 영향력은 이제 하나의 '방어적 자산'으로 국가의 평판이 일시 하락해도 대중적 인지도와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며 "(한국의 순위는) K-팝·K-드라마·K-뷰티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콘텐츠 산업의 성과 덕분"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국제사회로부터 약 127억 달러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받았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는 당시 정부 예산 절반 규모에 달했다. 1960~70년대에는 우리 경제도 성장했지만 ODA가 여전히 정부 예산의 20%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불과 50년 만인 1995년 한국은 세계은행(WB)의 수원국 명단에서 제외됐다. 2009년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DAC 가입은 원조를 공여하는 선진국 33개(당시 24번째)의 일원이 됐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원조 받던 최빈국이 원조하는 선진국이 된 유일한 사례다.
이 과정에선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거대한 기적이 있었다. 우리 국민은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연착륙시켰다. 독재로부터 평화적인 정권 교체의 길을 열며 정치적 성숙도 이뤘다. 자원 부족이라는 결정적 약점은 기술·교육에 집중 투자해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안정적인 경제와 민주적·평화적 가치에서 자란 우리 문화의 씨앗은 BTS가 상징하는 문화수출강국으로 마침내 꽃을 피웠다. BTS와 케데헌 등 K-POP이 전하는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는 한국적 가치가 전세계에 통한다는 방증이 됐다. 케데헌 '헌트릭스'의 노래를 부른 레이 아미는 최근 아카데미 레드카펫에서 "케이팝은 한국인만을 위한 것도, 아시아 공동체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음악"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공연을 즐기고 있다. 2026.03.21. xconfind@newsis.com /사진=조성우](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3/2026032222242758514_6.jpg)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BTS(방탄소년단) 공연은 단순한 컴백 무대를 넘어 K문화 산업의 위상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으로 평가된다. 광장을 메운 대규모 인파와 190개국 생중계는 한국 문화가 국내 소비를 넘어 국가 브랜드와 산업 구조를 움직이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드러냈다. 역사적인 상징 공간인 광화문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는 무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세계에 인식되는 방식이 한층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거 한국이 전자제품과 자동차 같은 제조업 상품으로 먼저 설명하고 기억되는 나라였다면, 이제는 음악·드라마·영화·예능을 통해 먼저 경험되는 나라가 됐다는 분석이다. K문화 콘텐츠를 통해 한국을 접한 뒤 관광과 소비, 라이프스타일로 관심이 확장되는 흐름도 이번 공연을 통해 더 선명해졌다. '생산국가'에서 '경험국가'로 전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K콘텐츠 산업의 전략적 가치가 한층 더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은 157조4000억원, 수출은 140억8000만달러(약 21조원), 무역수지 흑자는 131억6000만달러(약 20조원)를 기록했다. 종사자 수도 68만8000명에 달했다. 콘텐츠가 더 이상 일부 장르의 흥행 산업에 머물지 않고, 고용과 수출, 흑자를 만들어내는 대형 산업 생태계로 성장했다. 국내 콘텐츠 수출에서 게임이 60.4%를 차지하는 만큼 음악·영상 등 대중문화 분야의 확장 여력도 여전히 큰 상황이다.
국가 기간산업이 K콘텐츠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일본은 2023년 기준 콘텐츠 해외매출이 5조8000억엔(약 54조원)으로, 반도체 수출 5조7000억엔(약 53조원)을 웃돌았다. 콘텐츠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이상 주변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송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장은 "일반 산업보다 콘텐츠 수출이 증가할수록 국가브랜드 가치가 더 크게 동반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특히 서울의 역사·정치 중심지에서 열린 공연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동시에 소비된 경험은 앞으로 K문화 경제가 확산되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소비시장이 형성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망을 통해 해외 시장을 넓히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콘텐츠가 먼저 팬덤을 만들고 그 팬덤이 소비와 관광, 플랫폼 이용, 굿즈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다. 음악·영상·공연·관광·유통이 개별 산업으로 움직이기보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통합형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이번 공연처럼 대규모 인파가 실제로 움직인 사례는 향후 관광 수요가 더 빠르게 현실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K문화 콘텐츠는 관광과 소비를 동시에 자극하는 핵심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테일러 스위프트·콜드플레이 등 대형 스타의 공연을 계기로 숙박·식음·교통·쇼핑 수요가 급증하면서 콘텐츠가 지역 경제까지 자극하는 구조는 세계경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K문화 콘텐츠는 국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 조사에서 외국인의 82.3%가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K팝·드라마·영화 등 문화콘텐츠를 가장 많이 꼽았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BTS와 같은 글로벌 콘텐츠는 팬덤을 기반으로 국가 이미지와 소비를 동시에 확장하는 구조를 만든다"며 "이번 공연은 콘텐츠 중심의 국가 브랜드 형성 방식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콘텐츠가 만들어낸 기대가 실제 관광과 소비 경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시장 관리 역량이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BTS(방탄소년단) 팬들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공연을 즐기고 있다. 2026.03.21. xconfind@newsis.com](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3/2026032222242758514_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