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이 엄마가 육아와 가사, 남편 뒷바라지까지 전담하는 모습을 두고 한 개그우먼이 내뱉은 말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독박육아'가 대세였을까.
27일 뉴시스에 따르면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날 조선 중기 문인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성재일기(惺齋日記)'를 통해 당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 만들어간 배움 일상을 소개했다.
'성재일기'는 금난수가 일상에서 보고 겪은 일을 날짜별로 기록한 개인 일기로, 네 아들의 독서와 과거 준비, 스승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여기서 아버지 금난수 역할은 단순한 보호자를 넘어선다. 그는 자녀 학업을 직접 챙기고 때로는 현장에 동행했다.
1580년 9월 금난수는 막내아들 금각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가 아이가 학질을 앓자 역참에 머물며 치료를 도왔다. 금각은 곧 '사략(史略)'을 하루 10장씩 외우기 시작했고, 며칠 만에 한 권을 마치고 다음 권으로 넘어갔다. 일상과 학업이 분리되지 않고 이어진 셈이다.
금난수가 직접 아들이 읽을 책을 마련하는 장면도 눈에 띈다.
1585년 금난수는 막내아들 금각이 읽을 '강목(綱目)'을 손수 베껴 쓰기 시작했다. 공무와 제사, 손님맞이로 바쁜 와중에도 매일 필사를 이어갔고 두 달여 동안 일곱 권에 이르는 책을 완성했다. 금각은 아버지가 쓴 책을 받아 하루 15장 이상 읽고 외우며 공부했다.
오늘날 교재를 사서 쓰는 것과 달리, 당시에는 학습 자료 자체를 가족이 직접 마련해야 했던 현실이 드러난다. 동시에 자녀 교육에 들인 시간과 정성의 밀도도 엿보인다.
스승을 찾아 보내는 일도 중요한 교육 방식이었다. 1586년 금난수는 금각을 학자 허전한(許典翰)에게 보내 공부하게 했다. 당시 허전한은 고향 성산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금각은 그곳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물며 수학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자녀에게 맞는 스승과 환경을 찾아주는 것 역시 아버지의 역할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기록은 조선시대 교육이 단순히 가정 내 훈육이나 서당 수업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책을 빌려 읽고, 시험을 준비하고, 필요하면 먼 길을 떠나 스승을 찾아가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자녀의 배움을 일상의 중요한 일로 받아들인 부모의 태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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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성재일기는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고 성장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라며 "어린이날을 맞아 전통사회에서도 자녀 교육이 중요한 삶의 일부였음을 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