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노모 두고 돌아선 '노숙인 대부'…"어머니, 저는 가야합니다"

아흔 노모 두고 돌아선 '노숙인 대부'…"어머니, 저는 가야합니다"

남형도 기자
2026.09.2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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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서 한국 온 지 36년째 '노숙인 무료 급식 봉사'…"어머니와 헤어질 때 눈물, 하지만 다른 이 도와야 해"

추석 연휴 전 고향 이탈리아를 찾은 뒤 모처럼 가족들과 휴가를 보낸 김하종 신부. 36년째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헤어지기 전 어머니를 안아주는 모습./사진=김하종 신부
추석 연휴 전 고향 이탈리아를 찾은 뒤 모처럼 가족들과 휴가를 보낸 김하종 신부. 36년째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헤어지기 전 어머니를 안아주는 모습./사진=김하종 신부

지난 2일. 김하종 신부(68)가 무거운 여행 가방을 내려놓았다. 추석을 앞두고 휴가차 찾은 고향 이탈리아. 눈앞에는 아흔이 넘은 노모가 있었다. 모처럼 머물며 김 신부는 가족들과 집안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며 해돋이를 보고, 저녁엔 벽난로 앞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는 어머니와 헤어질 시간이었다.

김 신부는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다시 여행 가방을 들고 현관을 지나 문턱을 넘었다. 집 계단을 내려가며 김 신부는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문 뒤에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지요. 심장 수술을 해 건강도 좋지 않으시고요. 저는 장남입니다. 어머니 곁에서 부양해야 할 사람이지요."

김하종 신부(안나의 집 대표)와 그의 어머니가 벽난로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사진=김하종 신부
김하종 신부(안나의 집 대표)와 그의 어머니가 벽난로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사진=김하종 신부

그런데도 작별해야 했다. 1998년부터 그가 설립해 운영해 온 '안나의 집'. 그해 IMF가 터졌을 때 길 위의 사람들이 늘었다. 실직자와 노숙인이 넘쳤다. 김 신부는 이들을 위해 밥을 지어 주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져 인근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다 닫았을 때도, 36년째 한결같이 그 자릴 지키고 있다.

하루 한 끼를 세 끼로 나누며 굶주림을 채우는, 500명이 넘는 이들이 그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김 신부는 집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뒤엉킨 생각과 솟구치는 감정이 그를 압도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하지만 가야 한다고, 예수께서 나를 부르신다고, 다른 이들을 맞이하고 도와주고 사랑하도록 책임을 맡기셨다고.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파란 눈의 산타, 김하종 신부님은 식사 전 기다리는 노숙인들을 향해 그리 외쳤다. /사진=남형도 기자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파란 눈의 산타, 김하종 신부님은 식사 전 기다리는 노숙인들을 향해 그리 외쳤다. /사진=남형도 기자

김 신부는 "평생 한국의 가난한 이웃들, 독거 어르신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내 어머니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고 말했다.

푸른 눈의 산타, 노숙인의 대부인 그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다시 앞치마를 멨다. 오늘도 굶으며 그를 기다린 노숙인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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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시작하던 마음 잊지 않고 좋은 글 쓰겠습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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