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거래소 넘어가면 피해자 특정 어려워
경찰, 3년간 거래소 지갑 1050개·은행계좌 16만3000개 추적해 환급

# 인천에 사는 박모씨(46)는 지난해 4월 농협은행 직원을 사칭한 피싱범에게 "저금리 대출을 받으려면 기존 대출금을 지정한 계좌로 보내야 한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를 믿은 박씨는 적금과 대출로 마련한 4000만원을 피싱범에게 이체했다. 돈은 이후 가상자산 거래소와 연결된 은행 계좌로 흘러갔다.
박씨는 뒤늦게 사기를 알아채고 신고했지만 피해금 회수는 포기해야했다. 범죄계좌에 돈이 남아 있지 않아서였다. 이후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다가, 최근 경찰의 도움으로 피해금 2000만원을 돌려받았다. 박씨는 "돈을 돌려받아 조금이나마 자책감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동결돼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못했던 피싱 피해금 약 263억원이 경찰의 자금 추적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환급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수사대는 2023년 9월부터 최근까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동결돼 있던 피싱 피해금을 추적해 1137명에게 약 263억7000만원을 돌려줬다고 29일 밝혔다. 2017년 이후 피싱 범죄로 동결된 채 환급되지 못했던 피해금 대부분이 이번에 환급됐다.
경찰은 2023년 3월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와 피싱 범죄 대응 방안을 논의하던 중 거래가 정지된 가상자산 계정에 거액의 피해금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파악된 동결 피해금만 약 122억원이었다.
이후 경찰은 2023년 4월부터 최근까지 약 3년간 가상자산 거래소 전자지갑 1050개와 은행 계좌 약 16만3000개를 추적했다. 자금 추적을 통해 피해자를 특정한 뒤 거래소와 정보를 공유해 환급 절차를 진행했다.
경찰은 동결 기간이 끝난 뒤 피해금 30억4000만원을 임의로 처분한 계정 명의자 130명에 대해서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 등을 통해 피해금이 환급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그간 피싱 피해 회복이 어려웠던 배경에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피해금 환급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현행법상 은행 계좌로 입금된 보이스피싱 피해금은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계좌 지급정지와 은행 간 정보 공유를 거쳐 피해자에게 환급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금이 은행 계좌를 거쳐 가상자산 거래소로 넘어갈 경우, 거래소가 은행으로부터 피해자 정보를 공유받을 법적 근거가 없어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이에 거래소는 피싱 피해금이 입금된 사실을 통보받으면 해당 가상자산 계정을 동결하고 있지만 피해자에게 동결된 돈을 돌려주진 못했다. 피해자 역시 자신의 돈이 거래소로 넘어간 사실을 알지 못해 환급을 요청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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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계자는 "법률·제도적 문제로 환급되지 못했던 피싱 피해금을 약 3년에 걸친 추적 수사와 거래소와의 협력을 통해 환급했다"며 "가상자산으로 은닉된 범죄수익도 끝까지 추적해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