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적이 처음인데 일단 밀린 휴가를 한번 써보려고요."
중대범죄 사건을 주로 맡는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가 형사사법체계 개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한가해진 로펌의 분위기를 전한 말이다. 수사-기소 분리 개혁으로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했지만 인력과 시스템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본격적인 수사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찰 혹은 공소청에서 중수청으로 이첩된 사건 개수는 0건이다. 양 기관은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 이첩 절차를 협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신 중수청은 공소청으로부터 인지 및 미제 사건 목록 200여개를 전달받아 검토하고 있다. 사건 목록에는 새로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나 최대 90일간의 유예 기간 내 처리가 어려운 사건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청은 오는 12월30일까지 기존 인지 사건을 직접 수사할 수 있다. 기존 사건 중에서도 공소시효 임박 등 수사가 불가피한 사건에 한해 수사가 가능하다. 새로 수사 개시가 필요한 중대 사건은 중수청이 맡는다.
공소청이 넘긴 사건은 중수청이 연말까지 풀기 어려운 사건인데다 새로운 사건을 개시할 여건도 안된다. 사건을 이첩받더라도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기도 어렵다. 우선 수사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중수청은 총정원 2874명 중 66.1%인 1900명으로만 업무를 시작했다. 주요 사건을 책임질 과장급 보직도 다수 공석이다. 최대 조직인 서울중수청은 25개 중 11개 과장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도 일부 기능만 구현된 상태라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사건 접수, 배당 등 기본적인 기능은 가능하지만 송치, 사건 처리 등은 오는 12월 기능 보강을 통해 활용할 수 있다. 이에 중수청 수사관들은 각 공소청에 직접 방문해 종이 기록을 받아 갈 예정이다.
또 다른 대형로펌의 변호사는 "입사한 이래 처음으로 일이 한가하다고 느낀다"며 "중수청이 자리를 잡으면 사건 규모도 클 것이고 어떤 식으로 수사가 진행될지도 몰라서 폭풍전야 같기도 하다"고 밝혔다.
다만 초대 중수청장이 지난 15일 임명되면서 조만간 수사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 김지용 청장은 지난 16일 출근 첫날 주요 현안과 업무를 보고받았다. 특히 중수청의 조기 안착을 강조하며 '조기안착전담TF' 구성을 지시했다. 중수청은 "(김 청장이) 수사 착수 등 가시적인 성과를 조속히 거둘 수 있도록 속도감 있는 업무 추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