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야구가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여정을 마무리했다. 탈락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론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혹평과 함께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범인 찾기'에 분주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세계 야구의 벽은 단순히 우리 내부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높고 견고했다. 상대 팀들이 이번 대회에 쏟아부은 '진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WBC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 초기 시기에 거둔 호성적이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류지현(55)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도미니카 공화국과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서 0-10, 7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이로써 한국은 4강 진출이 무산되며 이번 대회를 8강이라는 성적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도미니카의 화력은 예상보다 강력했고, 한국 타선은 상대 선발의 구위에 눌려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이날 8강전에서 한국 타선을 5이닝 8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히 봉쇄한 도미니카 공화국 선발 투수이자 '2025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 크리스토퍼 산체스(30·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이번 대회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랐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의 마인드셋은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승부하는 것이었다"며 "나라를 대표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며, 이 유니폼을 입을 기회가 올 때마다 언제든 뛸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2026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한국전 직후 필라델피아로 돌아갈 것이라는 추측에 대해 산체스는 단호하게 "나는 떠나지 않는다. 계속 팀에 남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산체스의 최고 구속은 1회초 이정후(28·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하면서 던진 시속 96.6마일(약 155km)이었다. 더구나 볼 움직임도 더러웠기에 포심 패스트볼(죽)이 아닌 싱커로 표기됐다.
도미니카를 이끄는 '전설' 알버트 푸홀스 감독의 리더십 또한 빈틈이 없었다. 경기를 마친 푸홀스 감독은 "한국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밝혔다. 상대가 누구든 존중하며, 1이닝마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들의 태도는 이번 대회가 결코 이벤트성 대회가 아님을 증명했다.
또한 그는 "우리 라인업은 방망이뿐만 아니라 주루에서도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며 "투수가 지치기 시작했을 때 우리 같은 라인업을 상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히 한국의 실책이 아니라, 객관적인 전력과 전략의 차이가 승부를 갈랐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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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현 국가대표팀 감독 역시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양적으로 좀 더 많은 투수들이 더 많은 기회를 받고 어떤 역할들을 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국제대회에서 한국 투수들의 구속이 타국에 비해 열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부분들을 조금 더 생각하고, 학생 야구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 경쟁력 있는 대표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사실 도미니카를 비롯해 일본, 미국 등은 이번 WBC를 앞두고 리쿠르팅, 국가대표 로스터 구성에 더욱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도미니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본 역시 오타니 쇼헤이(32)의 투수 등판 불가 조건을 수용하면서까지 데려왔다. 야마모토 요시노부(28·이상 LA 다저스)까지 15일 열리는 베네수엘라와 8강전을 마치고 소속팀으로 돌아간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는 비난의 화살을 내부로 돌려 '범인'을 세우는 소모적인 논쟁을 멈춰야 한다. 우리 선수들을 비난하는 것보다 세계 최정상의 '진심'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한국 야구의 재건은 시작되어야 한다. 2006 WBC 4강, 2009 WBC 준우승이라는 옛 영광을 재현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도래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범인 찾기가 아니라, 세계 야구의 흐름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자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