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본도 한때는 소비대국

[기고]일본도 한때는 소비대국

김철중
2002.04.24 16:04

[기고]일본도 한때는 소비대국

[편집자주]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이사

자만심이 가장 큰 적일 수 있다. 정책 당국자 측면에서는 불균형인줄 알면서도 적절한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고 일정 기간 과실만 향유하려 한다면 세대를 넘어서는 과오를 저지를 지도 모를 일이다.

어마어마한 경제규모를 가진 미국이 과잉투자로 헤메던 작년에도 한국은 견조한 소비활동과 정부지출로 국민총생산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랜 기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한국의 자랑거리였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과 비교하여 더 잘했다고 하는게 뭔가 꺼림칙해서 감히 A등급의 국가이자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일본과 비교하면서 한국의 역동성을 뽐내곤 하였다. 경제의 펀더멘탈을 가장 많이 주시한다는 자본시장에서도 이런 자랑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거나 한쪽면만 바라본다면 이것은 매우 비생산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일본도 자산시장이 꿈같은 시절을 향유하던 때는 소비활동이나 가계대출이 왕성했었을 것 아닌가라는 소박한 질문을 마음속으로 갖고 있다가 일본에 있는 이코노미스트에게 자료를 요청해본 결과 나의 의심이 현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도 한때는 왕성한 소비국이었던 것이다. 일본도 90년까지는 민간소비 증가율이 5~6%대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률이 고공행진을 지속 했었다. 가계대출증가율이 무려 60%대에 이르렀고 주택금융도 두자리수의 증가율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그 후유증으로 성장다운 성장을 못한 채 계속 정체돼 있다. 민간소비증가율은 1%를 넘지 않고 있고, 가계대출도 거의 정체상태에 있다.

지금 대다수 일본인들이 소비하지 않고 있고 은행도 가계대출을 늘리지 않고 있는 것을 심리적인 이유로 설명하려는 주장들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일본인들의 고유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기 보다는 경제구조적 원인이 오늘의 일본을 초래했을 것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이 많이 나가고 소비활동이 왕성한 것이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에 일정기간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경제가 건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성적인 자금부족 부문이었던 기업이 돈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부실채권을 공공부문으로 넘겨 금융기관들의 대차대조표가 깨끗해진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이 소비자대출쪽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비자대출이 크게 늘어나 경제에 큰 불균형이 생겨나도 정책당국은 가계대출이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여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이제 가계대출 증가가 자산가치 버블로 연결되지 않고 선순환될 수 있도록 구조조정과 균형찾기를 도모해야할 시점이다. 그리고 그것에 수반될 수 있는 고통을 감내하고, 이를 설득하려는 정책당국의 자세가 절실히 요청된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상당수의 외국투자자들이 "2년후, 5년후의 그림은 필요없다. 그냥 올해는 어떠냐고 말해달라"는 투의 이야기들이다. 지금은 빛이 안나도, 다음 세대를 위한 경제적 토양을 마련하는 미래지향적 정책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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